2014.10.06 06:24

소망교회 주일예배 10월 5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요 8:26-30)

5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요 8:26~30



26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되

27 그들은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28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30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2003년 10월 첫 주일에 소망교회 담임목사로 부임. 12년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여기까지 온 것 감사. 장로신학대학교에서의 교수로 섬김, 소망교회 목회자로의 부르받음이 큰 축복이고, 더할나위없는 행복. 사랑의 빚, 기도의 빚, 섬김의 빚을 지금까지 졌다. 때로는 가슴이 아프고 슬펐던 시간이 있었지만, 성도들의 기도와 사랑으로 잘 견뎌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한 가지 마음, 어떻게 하면 주님의 몸된 교회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교회가 될 것인가. 담임목사로서 이 일에 충성할 따름. 옛날에 쓴 글, 2003년 1월 13일 오전 6시, 새벽기도를 마치고 쓴 글. 동사목사로 있을 때, 소망교회를 생각하며 올려드린 기도, 첫째, 소망교회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혼쾌하게 해드리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 둘째, 이 땅 위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교회. 주님이 주시는 자유와 해방을 마음껏 선포하는 교회. 셋째, 자기가 가진 것을 자랑하지 않게 하소서. 가진 것을 한국 교회와 이웃을 바르게 섬기게 하소서. 첫 번째 기도가 가장 마음에 새겨졌던 것. 둘째와 셋째 기도는 첫 번째 기도가 응답되면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소망교회에 부임해서 처음 드렸던 기도.  


(29)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예수님의 소원이었고, 항상 이 땅위에 하나님의 역사를 감당하셨다는 고백. 


신약에서 가장 멋진 모습: 하나님-예수님 관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하나님은 예수님을, 예수님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기뻐하시는가!

i. 아버지-아들이 서로를 진정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는가? 어린 시절 뿐만 아니라,  아들이 청소년기, 대학, 청년 장년이 되어서도 그러할 수 있다면 복받은 가정. 결코 쉽지 않다. 

ii.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왜 예수님을 그렇게 기뻐하고 좋아하셨을까? 가능한 대답은 ‘아들이니까’. 그러나 ‘아들’이라고 다 기뻐하는 것은 아니다. 

iii.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는 예수님의 모습은 과연 무엇인가? 아들과 딸이 재롱을 부리던 것. 중고등학교 시절에 사춘기를 잘 견뎌낸 것. 청년이 되어서는 좋은 짝을 만나서 결혼하는 것이 반가웠고, 딸이 의사가 되어 자기 길을 가는 것, 아들이 아버지를 따라 목사가 된 것이 마음에 기뻤다. 그러나 더 진정한 이유는?

iv. 생일과 아내의 생일, 결혼 기념일에 자녀들이 편지를 써준다. 내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들과 딸로서, 아버지와 어머니로 말미암아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마음이 전달되면, 그것을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v. 하나님-예수님 관계도 마찬가지. 예수님은 하나님을 늘 인정했다. 당신의 존재가 하늘로부터 연원된 것을 끊임없이 고백했고,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 고백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신의 정체성의 기초이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다. 

vi. (요 8:14)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하나님께로 간다. (요 8:23) 예수님은 당신의 근거가 하늘임을 가르치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도 확인했다. 주기도문을 가르치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고백하게 하심.

vii. ‘나의 나됨’에 대한 질문. 나를 규정할 수 있는 정체성의 근거,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에 관한 실존적 고민.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그 마음이 우울했고 슬펐는데,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고 부를 때, 억압되었던 마음이 해방되었다. 하나님 아버지의 부름의 축복에 감사할 수 있었다. 


정체성의 근거: 누구의 남편, 아내, 아들, 딸이라는 것 중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것.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내 사랑하는 아들, 딸이라고 부르는 근본적 정체성. 하나님이 나에 관하여 기뻐하시는 것: 내 말과 행동, 업적보다, 나 자신이다. ‘

i. 나’는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아버지로 고백하는 ‘나’.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선언하고 고백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ii. 예수님은 당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당신도 묻고 계셨고, 확인하셨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파송의식. 일종의 사명의식. 그 곳에서 일하는 위임을 주신 마음의 확인. 

iii.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정체성에 관한 말씀 - 요 8:18, 8:26, 8:29

iv. 파송의식: 사명이다. 하나님께서 왜 이 땅에 사는지, 그 가정을 주셨는지, 그 직장을, 이 대한민국에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깨달음. 대한민국의 이 시대의 이 장소에 보내셨다는 것. 

v. 예수님의 파송의식과 확신을 우리에게 부어주시기 위하여 보내주신 분이 성령이다. 예수님의 탄생이 성령의 탄생,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광야에서 40일동안 사탄의 시험을 받을 때에도 성령이 동행하셨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도 성령의 역사. 

vi.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시면서 가르치시고자 하는 것 - 요 14:26 예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을 다시 기억나게 하신다. 이것은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에도 해당된다.



교회가 참된 교회가 되기 위한 두 가지 표지: 


1.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복음. 


i. 교회는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말씀의 피조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성도들이 함께 모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함께 세워가는 것. 

ii. 십자가는 하나님이 아들까지 포기할 정도로 우리는 사랑하신다는 그 사랑의 내용이며 사건인 것.  십자가에 교회의 기초, 출처, 시작이 있다. 

iii.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어떤 교회도 목사의 교회가 아니다. 목회자는 주님의 종이다. 집사, 권사, 장로, 목사의 직은 교회를 위해 충성하도록 맡겨진 하나님의 선물. 


2. 주님의 몸된 교회에 성령이 함께 하시는가


i.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초대교회의 제자들이 성령을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 충만한 성령을 부어주셨고, 그 때부터 제자들은 용기, 담대함을 얻기 시작했다. ‘예수님이 우리 주님’,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하나님이 이 백성을 사랑하신다’라며 증거하며 교회 공동체가 생겨났다. 

ii. 교회는 성령의 피조물이기도 하다. 성령만이 예수님이 우리 주님이심을 선포하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고전 12:3 

iii. 종교개혁자들의 모토: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 하나님의 주권을 존중하라. 교회 성직자들이 교회의 영광을 가로채지 말라. 교황이 하나님을 대신하지 말라. 하나님만이 우리가 영광 돌릴 분인 것을 선포하며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것. 예수님을 주인대접하라. 우리는 예수님의 종일 뿐이다. 예수님이 주인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우리 속에 있다. 그것이 한국 교회의 위기이다. 

iv. 한국 교회가 부딪히고 있는 결정적인 문제: 물량주의도 한 가지, 명예와 권력욕에 빠진 지도자들이 증가. 다음 세대들이 부모님의 신앙으로부터 떨어져나가는 것. 그러나 그런 위기는 현상 뿐이다. 본질적 위기가 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교회의 거룩성이 깨지고, 하나님을 불러도 두려움이나 설레임이 나타나지 않는다. 인간의 욕망이 교회 공동체 속에 남아있으면, 그것은 교회가 아닌 것이다. 건물, 예배당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드리며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와 믿음의 고백을 하는 성도들이 교회다. 그 고백 속에 성령께서 임재하시고 새로운 용기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부어주시는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i. 다시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고백. 하나님이 나의 아바 아버지이심을, 내가 갖고 있는 것과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잠시 맡겨주신 선물이신 것을 고백. 그리하면 내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변화되는 것. 

ii. 예수님이 나의 주님,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iii. 내 언어, 행위, 업적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나 자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인정하는 나 자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신 것을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나의 모든 것을 내어놓는 그 모습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그 안에서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될 것. 

iv. 한국 교회가 흔들리고 있다. 하나님 앞에 겸허하게 서야 한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면서도 내 욕심이 내 인생의 주인이었음을 고백하고 회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딸인 것을 기뻐하며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종하겠습니다라는 고백을 드릴 때,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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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1 16:24

소망교회 주일예배 2014.9.21 영적 호기심을 지닌 사람 : 빌립 (요한복음 14:8 - 12)

영적 호기심을 지닌 사람 : 빌립 - 예수님의 제자들 9 -

 

요한복음 14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나는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것이요 또한 그보다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예수님의 제자들

i.      세상에서 쉽게 만날 있는 보통 사람들. 흔한 사람들.

ii.    20대를 약간 넘은 청년들. 가장 어렸던 요한 ~ 처자식이 있던 베드로

iii.  지식수준은 유대 율법을 알았지만, 전문가는 아니었고, 평범한 수준.

iv.   직업과 배경도 다양

v.     대부분이 갈릴리 바다에서 생업을 이어가던 어부들. 야고보와 요한, 베드로, 빌립.

vi.   새로운 시대를 기다리던, ‘기다림의 사람들’. 삶을 변화시킬 소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 예수님을 만났을 , 그들의 삶의 현장을 떠날 있었고, 가슴에 열정을 품고 예수님을 따를 있었다.

 

빌립

i.      영적인 호기심이 가득한 인물

ii.    호기심: 삶에서 소중한 . 미지의 세계를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관심이요 욕망. 동물의 세계에도 존재하지만, 동물의 세계의 호기심은 먹는 관한 . 인간의 호기심은 육체적 ~ 정신적, 영적인 호기심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진리에 대한 호기심. 생명과 자연에 대한 호기심. 인간을 복되게 만드신 모습.

iii.  호기심의 증거: 마음 속에 질문이 있다는 . 자연 현상에 대한 질문 (과학자), 재물에 관하여는 금융가와 사업가, 근로자. 생명에 관하여는 의료종사자. 법과 인문학에 관하여는 법학자. 그림, 조각과 소리에 관하여는 예술가. 영적인 진리에 관하여는 구도자 (인생의 목표, 인생의 자유는 누릴 있는가 묻는 호기심

iv.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 영적인 질문을 하고, 영적인 호기심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복이 있는 사람이다. 인생의 목표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있다.

v.     6화원칙에 따른 질문 중에 마지막 질문은 Why. 질문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완결되지 않은 질문. 완결되지 않은 삶의 목표와 모습. 공허감이 남게 된다. 질문의 종착역.

vi.   사도행전의 빌립과는 다른 인물. 7집사 중의 빌립.

 

복음서에 등장하는 빌립이라는 인물

i.      예수께서 나를 따르라 처음으로 청하신 제자.

ii.    예수님은 그의 호기심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호기심을 질문으로 바꿀 있고, 질문에 대하여 대답을 구할 있는가, 대답을 찾으면 결단할 있는가, 결단을 하면 자신의 삶의 전부를 걸고 행동하고 헌신할 있는가?

iii.  호기심이 다음 단계로 계속해서 진행되어야, 인간을 성숙하게 하고, 진리에 접근하게 한다.

iv.   6:6 - 빌립의 영적인 상태를 알고 싶어서 빌립을 시험하셨다. 시험: 유혹(temptation) 시험(test) 중에 test 의미한다. 시험이  공부했고, 준비했고, 훈련을 받았다. 세상의 시험이라는 것은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 대부분. 예수님의 시험은 넘어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시험하시는 . 현재의 상태를 돌아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 그대로 것인가? 그대로 만족해도 괜찮은가? 성장하고 성숙해야 이유가 없겠는가? 예수님께서 내가 걸음 나아가기를 원하시는 뜻이 있는 .

 

 

- 3가지 시험 -

 

번째 시험 - 용기와 담대함

i.      네가 가지고 있는 호기심이 결단과 행동으로 승화될 있는가? 좋은 호기심을 가지려면 용기가 있어야 한다. 나쁜 호기심은 관심만 가지고 거기서 멈춘다. 생명, 자유, 진리에 대한 호기심은 삶을 걸어도 괜찮다는 담대함이 요청되는 것이다.

ii.    1 - ‘나를 따르라라는 말씀에 대하여 빌립은 과감하게 따라나섰다. 그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예수의 메시아됨을 깨닫고, 세상에 나갔을 때에 처음 행한 일은 나다나엘에게 전도를 것이다. 메시아 예수를 전함. 나다나엘,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는가.

iii.  예수 믿는 것이 좋은 것을 믿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가지 변명: 나만 믿으면 되는데, 굳이 남까지 믿게 이유가 있는가/ 믿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스스로 깊이 묵상하고 깨달아야 신앙을 갖는 것이므로 저들로 하여금 깨달을 시간을 허락하는 것이다. 그러나, 증거없이 깨달음이 있을 있고, 예수님을 확이할 있겠는가?/ 예수님과 비교하면, 나는 너무 미흡하다. 예수님은 전하고 싶으나, 아는 지인이 예수 아는 것이 정도 밖에 안되느냐라는 지적을 받을까봐, 부끄럽다. 그러나,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를 통해서이지, ‘나를 봐서예수를 믿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빌립은 나다나엘로 하여금 직접 예수를 경험하기를 권함.

 

번째 시험 - 요한복음 6 오병이어의 사건

i.      핵심구절은 6:5.

ii.    빌립은 호기심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현실주의자였다. 보이는 , 만지는 것에 민감하다. 숫자에 강하다. 이백 데나리온이 필요함을 순식간에 계산해냈다. 명백한 분석과 정확한 답을 예수님께 내놓음. ‘나도 없습니다만, 선생님도 없을 것입니다라는 생각. 문제 제기는 있으나, 해답이 없다. 날카로운 분석력은 뛰어나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적극적인 응답은 결여되어 있다. 어려운 현실은 직시할 있으나, 다음은 기약할 없다.

iii.  빌립과 대비되는 안드레: 여기 저기 찾아다녔다. 어린 아이의 물고기 마리, 다섯 덩어리를 예수님께 가져와 맡김.

iv.   예수님께서 시험하고 계시는 . 네가 가진 믿음이 현실적인 상황을 뛰어넘을 있는가? 분명 현실은 어렵다. 현실은 안되는 것이 많다. 현실은 막혀있지만, 믿음으로 그것을 뚫을 있는, 그런 마음이 네게 있느냐를 묻고 계시는 . ‘ 현실이 어떠하냐, 힘들지 않느냐? 장벽이 너무 높지 않느냐? 네가 현실의 상황 속에서 좌절하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지 않느냐? 어떻게 하겠느냐?’ 이렇게 묻고 계시는 것이다. 현실적인 계산으로는 해결할 없는 .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그것을 넘어갈 필요가 있지 않느냐. 지레 짐작하고 당황하지 말고,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안드레가 했던 것처럼 해보지 않겠느냐, 네가 있는 가장 작은 것부터 추진해보라라고 격려하고 독려하고 계시는 것이다.

 

번째 시험 - 요한복음 14

i.      도마의 질문에 이어 빌립의 요청. ‘보이는 있어야 만족하고 불안하지 않을 있는 빌립. 빌립도 유대인이기에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는 , 하나님을 직접 만나게 되면, 거룩함 앞에서 인간은 자리에서 멸망당하고 죽을 밖에 없다는 사실 알고 있었지만,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말미암은 요청. 시각적인 감각을 통해서 하나님께 접근하려는 행태.

ii.    예수님의 답변 ( 14:9) -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을 항상 뛰어넘는다. 믿음을 눈에 보이는 것에 제한시키지 말라. ‘백문이 불여일견’ - 사물과 자연만물을 보는 경우에는 맞는 . 그러나 인격을 깨달아 나아가는 경우에는 듣고, 믿고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정, 부부관계 - 보는 것보다 듣는 것이 중요하다. 들어야 인간적 신뢰를 감당하면서 우리의 삶이 확대될 있는 것이다.

iii.  하나님 나라의 비유 - ‘겨자씨. 너희가 겨자씨만 보느냐? 너희 믿음이 겨자씨 같으면 겨자씨가 자라, 잎이 무성한 나무가 될 것이다. 보이는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가르치고 계시는 . 가장 초보적인 신앙은 내가 보면 믿겠다는 ’. 하나님의 인격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말씀을 통해 듣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함으로써 인생의 믿음이 확장되는 .

iv.   예수님 안에 거대한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말씀하고 계신다. “너희가 나를 믿으면 나보다 일을 있다”. 세상을 향한 꿈과 비전을 허락하시는 말씀. 우리의 현실이 높다면, 믿음으로 이것을 뚫고 나가는 실행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가장 작은 것으부터 시작하라. 반드시 넘어갈 있다.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신 것처럼, 내게 보이는 시각과 감각으로 인해 편견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 계산에 자신을 묶어두지 말라.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다라는 생각, 그러한 잘못된 생각을 자신의 감옥으로 묶어두면 안된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하는 일보다 일을 있을 것이다.” ’보이는 속에서 보이지 않는 창조주 있는 믿음으로 내게 있는 것으로 주님을 사랑하면서 신뢰하고 달려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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