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09 23:11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소속 (김형국 목사)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소속  (나들목교회 김형국 목사)


1. 서론

누구나 오순도순 살아가는 가정에 대한 소박하고 아름다운 소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가정의 현실은 행복하지 않다. 인간은 언어로 소통이 가능한 존재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힘에 의한 폭력을 행사할 때가 있다. 그 결과는 가해나자 피해자나 모두 인간이하의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가정에 관한 숨겨진 진실은 가정의 그 닫혀진 문 뒤로 이와 같은 폭력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가정 내에서 신체적 폭력이 1년에 1회 이상 발생하는 경우는 15.7% 이다. 이는 미국과 거의 비슷한 수치이고, 일본이 약간 더 높은 편이다. 더욱 심각한 언어적, 정신적, 성적 폭력이 발생하는 경우는 44.6%이다. 따라서 5/10의 가정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폭력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가 없다. 

위와 같은 가정의 폭력상황으로 인해 말미암게 되는 현상이 바로 청소년 문제이다. 한국사회에서 폭력의 위험에 노출된 청소년은 930,000명으로 13.7%에 해당한다. 깨어진 가정과 폭력이 중대한 요인이다. 

사랑이 아니라 증오의 관계만 남은 가정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자료이다.

위와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가정에 관하여 중요한 이슈 세 가지가 있다.

(1) 관계는 희생을 먹고 자란다?

가정이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가정의 건강함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누군가의 희생에 의한 것이다. 

그와 같이 가정의 누군가가 희생을 하는 경우는 '자발적 희생' (가정이 깨어질까봐 떠나지 않거나)이나 '강요된 희생' (떠날 수 없거나)에 해당한다. 

그러나 오늘날 세대는 전통적 가치와 희생을 거부한다. 희생하는 자가 없기 때문에 오늘날 가정은 더욱 깨어지기 쉽다.


(2) 문제는 사실, 과거 저편으로부터 온다

우리는 '가해자'이전에 '피해자'이다. 수잔 포워드의 '이런 사람이 미자격부모다'라는 책은 부모가 어떻게 자녀에게 독성을 전달하는 지를 보여준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 부모가 상처를 가하는 것이 본의가 아니라고 해도 상처가 남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함부로 말하는 어른들이 있다. 말의 학대를 얕봐서는 안된다. 육체적 상처 못지않게 정신 깊은 곳에 상처를 남긴다. 육체적 학대도 발생하고, 심지어 가정 내에서 성적 학대까지도 발생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우리 아버지의 문제는 할아버지의 문제였고, 할아버지의 문제는 증조 할아버지의 문제였다.


(3)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반드시 돌아온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대물림된다.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는 이전의 아버지가 폭력을 행사하던 모습으로 인하여 받게 된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아들은 아버지같이 행동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을 하지만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 한 자신 속에서 그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나라와 같이 대화가 부족한 문화가 속에서는 사람들이 자녀와 대화를 나누거나 감정을 나누는 것에 미숙하다. 이러한 문화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나'라고 생각하는 자기학대, 결혼포기, 결혼 중 부적절한 관계의 문제가 발생한다.



2. 아픈 현실의 근본적인 원인은?


(1) 통계상 원인은 술, 성격차이, 경제적 문제, 불신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인들은 표피적인 원인일 뿐이다.

(2) 진정한 원인은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원래의 뜻과 계획을 살펴봄으로써 분별할 수 있다. 

창세기 1:26~31에 따르면, 삼위의 하나님께서는 삼위가 서로 사랑하시는 본질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지으셨다. 그래서 인간은 사랑을 필요로 하고 사랑이 없으면 인간은 살지 못한다. 병들어 죽는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지으시고나서 "남자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창세기 2:18)고 하시며 하와를 지으셨고, 이와 같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나서야 '보기 좋았노라'라고 결론 지으셨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담이 하와를 보고 사랑의 시를 짓는다.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창 2:23). 이는 깊은 친밀감과 하나된 관계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인간을 공동체로 만드셨다. 가정이 공동체의 단위이며, 가정의 기초는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범한 후에 자신이 사랑의 고백을 했던 하와에게 죄의 책임을 전가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죄의 문제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 하와의 책임이요 하와를 지으신 하나님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창 3:12).

죄의 결과로 남녀간의 사랑의 관계는 권력투쟁(power stuggle)의 관계로 전락하고 만다 (창3:16).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난 후에 더 두려운 권위가 존재하지 않게되었다. 인간은 서로 굴복시키고 통제(control)하려고 하게 되었다.

가부장적 권위주의 사회에서는 여자가 망가졌다. 남자도 망가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자녀도 망가졌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는 그러한 권위주의는 붕괴되었기에 심각한 권력다툼이 표면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혼이 증가하게 되었다.

죄의 결과, 하나님의 권위가 무너지고 나자 인간은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몸을 섞는 것'이라고 사랑의 의미를 오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도 상실하게 되었다. 사랑하고 싶어도 힘이 없다. 다만, 사랑에 대한 갈구가 '나'와 '다른 사람'을 파괴한다.


3. 다시 아름답게 할 하나님의 계획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다스림'이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중심주의에 빠지는 것으로부터 하나님 나라의 백성됨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러한 백성됨의 배지(badge)가 바로 사랑의 회복이다. 사랑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방식이다. 하나님 사랑과 하나님 사랑에 기초한 이웃 사랑이 사실 기독교의 전부나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가정의 최고의 권위로 세워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다. 바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가정이다. 

상처받은 배우자들이 만나면 문제가 증폭되므로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새로운 사랑의 훈련장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이다. 교회는 가정을 위한 백업 시스템(backup system)이다. 교회는 서로 다르고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서로를 용납하고 나에게 잘못하는 사람을 용서하는 법, 지혜, 힘을 배우는 곳이다.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소망의 두 축이 바로 '가정'과 '교회'이다. (엡 5:22~25, 31) 교회와 가정은 선순환 효과를 가져온다. 건강한 교회가 가정을 회복시키고, 회복된 가정으로부터 모인 사람들이 더욱 건강한 교회를 회복한다.

'하나님의 공동체인 교회'와 '하나님의 공동체인 가정'은 모두 회복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두 공동체는 인간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신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엡 5:32)

배우자들이 각자의 방식 위에 하나님의 권위를 세워 결단하여 순종하면 가정이 회복된다.


4. 구체적 방법

(1) 아프지만 감사하라

나를 이 꼴로 만든 것이 그 가정이지만, 나의 존재를 가능케한 것이 바로 그 가정이다. 감사하라.

① 이 땅에서의 나의 존재는 내가 치유되어 고통의 악순환을 끊으면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 가해자들도 피해자였다. 그들도 학대받고 버림받은 자들이었음을 잊지 말자.

② 하나님의 두 번째 계획 (God's Second Plan)을 감사하라.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과 지혜를 받아 그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하나님의 이러한 계획에 감사하라. 이것은 회복된 내가 가지는 사명이다. 

우리를 사랑의 일꾼이요 치유자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감사할 때 소망이 보인다.


(2) 아프지만 배우라

사랑의 근본이 하나님이심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의 지혜와 능력을 배우라. 도망가지 마라. 아픈 현장에서 배워라. 사랑의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의 진리와 진실을 배워라.

교회는 이 세상의 유일한 훈련장이다. 그 곳에서 나와 다른 사람이 함께 걷는 방법과 지혜를 배워라. 또한 가정과 교회의 선순환이 이 사회를 치유할 것이다. 


(3) 아프지만 꿈꾸라

하나님이 다스리는 교회와 가정을 꿈꾸라. 아프지만 사랑의 실체가 아름다움을 기억하라. '사랑'이라는 유산을 남길 수만 있다면 하나님을 닮은 가장 아름다운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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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9 23:06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계 (김형국 목사)

<아프고도아름다운 그것> 말씀 시리즈     설교_김형국 목사

05월 17일_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소속
06월 07일_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계
06월 14일_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부르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계

 

 

서론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나와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 상처를 주게 됩니다. 저는 제가 잘 아는 분이 교회에 와 계셔서 친절하게 인사하러 다가갈 때, 상대분이 시큰둥하게 대하면 상처를 받게 됩니다. 또한 대표 목사인 제가 형제나 자매들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면 또 상처를 받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가정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닮은 사랑을 주고 받는 법을 배우고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시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100 가정 중에 5% 정도는 배우자간의 호환성이 뛰어나서 거의 싸우지 않습니다. 너무 행복한 가정입니다. 제 친구 중에 그러한 가정을 꾸리는 사람이 있는데, 그 친구의 아들은 어느 날 부모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들려주었습니다. ‘나는 엄마 같은 여자를 고를 수 있는 아버지 같은 남자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정의 현실은 그와 같이 못합니다. ‘나는 엄마처럼 또는 아빠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인간은 친밀한 관계를 소망합니다. 친밀한 관계란 편하고 자연스럽게 방어기제 없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을 뜻합니다.

 

 

1.     우리의 갈망과 악순환의 고리

 

가)   우리의 갈망: 친밀함



소속감 

+      소통 

 =          친밀감 

 단체에 대한 소속은 자신의 정체감에 영향을 줍니다

나의 말이 전달되고 서로 '들려지는 관계' 

 

 

 

나)   우리의 현실

 

소속감이 깊고 소통이 잘 되면 친밀감이 높아지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소속감도 낮고, 소통도 잘 되지 않아서 친밀감도 경험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마음에 분노가 쌓이게 됩니다. 이 분노가 마음에 쌓인 사람,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을 가치 없다고 비하할 뿐 아니라 힘없는 아이 또는 아내에게 분노를 터뜨립니다.

 

내가 있는 그대로 편하게 받아들여지는 친밀한 관계를 갈망하면서도 이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따뜻한 관계에 대한 갈망은 있지만, 감추고 부인하며 상처받는 것을 피하고 싶어서 마음에 벽을 세우고 그 뒤에 숨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느 한 남편의 고백이 있습니다. 항상 아내에게 잘 해주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을 때에, TV만 보고 있는 아내를 보면 마음에 벽이 생긴다고 합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는데라는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많은 아내와 아이들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아이들도 자신이 기독교인으로서 부모님을 공경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막상 엄마의 잔소리에 상처받고 원하지 않는 말을 하게 되고 문닫고 방에 들어가버립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됩니다. 나들목 교회의 경우도 이 교회가 건강하고 좋은 교회라고 생각하고 와서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상처받는 분들도 계십니다. 완전함을 추구하는 나들목교회가 완전하다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다들 겉으로는 정상 같지만 내면에 다들 문제가 있는 분들이 모여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다)   악순환의 고리

 

위와 같이 친밀함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소통하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속감도 갖기 힘들며 그 결과로 다시 친밀감은 더 낮아지고 마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2.     채워지지 않는 갈망, 악순환의 이유

 

가)   일차적인 이유


어릴 때의 경험이 커서 인간관계를 맺고 정서적으로 느끼는 영역에 모두 영향을 끼치는 것이 맞습니다. 어린 시절에 신체적 또는 정서적으로 친밀감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관계를 맺는 법을 잘 모릅니다. 따라서 어렸을 적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관계 속에서 내가 다른 사람을 수용하는 경험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미안하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한 자매의 문제는 잘못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면 약자이고 매를 맞았던 경험 때문에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익히지 못했던 것입니다.

나)   근원적인 이유  3:10~18

 

이 구절은 샌드위치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시작은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11) 이고 끝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18)입니다. 이것은 문제의 원인을 강조하고자 하는 시적 표현인데,‘죄성을 의미합니다 자기중심주의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을 밀어내고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또는 나의 필요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원하는 바를 취하는 죄성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을 때에, 독한 말과 독한 행동 (13, 14)이 나오게 되고 그것은 폭력으로 이어지며 (15, 16) 그 결과로 평화가 실종됩니다 (17)

 

다)   하나님의 근원적 해결방법

 

• 하나님의 사랑 (요일 3:16)

이 구절에 따르면 사랑을 알게 된 계기가 바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이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뇌의 화학작용입니까? 그것은 사랑의 느낌일 뿐입니다. 사랑의 원형은 하나님입니다.

• 하나님의 자기부인 ( 2:5~8)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부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단순하게 목사로 또는 갈릴리 촌구석에 내려오신 정도로 낮아지신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불의한 재판으로 죽기까지 낮아지셨던 것입니다. 자기부인은 마땅히 자신이 주장할만한 것을 포기하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바로 자기부인 없이 하나님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기대 ( 13:34)

하나님은 사랑의 모델로서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기대는 바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8:34) 예수를 따르는 것은 결국 사랑하겠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 대전제는 자기부인이요 자기포기입니다.

 

 

3.     다시 아름다워지는 관계를 향하여

 

가)   사랑의 점화를 경험하라

 

이것은 고통스러운 주문일 수도 있습니다만,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기근으로 시달려 마른 아이에게는 좋은 음식은 소화하지 못해서 소용이 없습니다. 죽과 미네랄을 섞어 먹게 해서 소화할 수 있는 기초체력을 길러줘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참된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 고아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았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나)   사랑의 영성을 키우라: 그 본질은 자기 부인의 영성

 

사랑하고 싶어서 하는 사랑은 초보적인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기 힘들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지만 결단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하고 싶지 않은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위선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기본능을 거부하는 것이 바로 사랑의 본질입니다.

 

결혼의 적절한 시기도, 로맨틱한 사랑에 빠져있을 때에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문제점과 한계를 이해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겠다고 결단할 때에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것이고, 이러한 때가 바로 결혼할 때인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부인을 위한 올바른 태도는 바로 자기 착오(오류)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갈등이 존재하는 이유는 내가 맞다고 생각해서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정죄하려고 하기 때문이고, 이 때에는 상대방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정의로운 하나님께서 내가 옳지 않다고 하면 어떡하나라는 생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그러한 태도이고, 그러면 상대방의 주장이 더 잘 들립니다. 희생하며 섬기는 때에도 자기부인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부인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존재가 훼손되지 않는 정도까지만 자기부인을 원하십니다. 가정폭력이 결혼 후 3개월 정도에 발생하기 시작하는데 이를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것은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를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자기 부인은 자신의 존재가 훼손되지 않는 한도에서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나쁜 행동하는 상대방을 방치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   사랑의 원천에 연결되라

 

자기부인으로 인해 메말라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힘만으로는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 세상이 존재하기 전에 이미 존재해왔고 바로 하나님이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사랑의 본질, 힘과 능력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사랑의 근원되신 하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의 사랑의 힘과 능력이 우리에게 부어져 그 사랑에 감격하여 사랑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살 소망이 생깁니다. 하나님께로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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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2 22:35

한국 교회의 복음의 능력에 대한 의문 | 김회권 교수

한국 교회에 복음의 능력은 존재하나요? (뉴스앤조이, 김회권 교수 인터뷰)



1. 사회적 비난의 대상, 교회


한국 기독교가 사회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는 원인은 회개의 통과의례를 성취하지 않은 사회적 유력자들에게 종교적 권력이 배분되어 이들이 기독교를 대표하는 데에 있다.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개신교의 교회 정치와 존립 구조의 문제이다. 개신교의 교역자는 교회 건물 소유, 금융 해결, 전도 및 상담 등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데, 이러한 개 교회의 존립 과정에서 선한 목자가 타락을 하게 된다. 교회에 금전적인 기여능력을 갖춘 사람이 교회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2. 빛과 소금의 역할


사회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요청되는 교회는 '소금'으로서 한 사회를 하나님 앞에서 계속해서 존재할만한 가치가 있게 만들어야 하며, '빛'으로서 사회 구성원과 사회 전체에게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제시하는 길라잡이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3.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 v. 성경의 진리 - "의심을 통과한 확실성만이 양심의 승인을 받을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듬은 의심의 해석을 기반으로 모든 것을 해체하고 상대화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의 진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의심은 사유의 가장 심원한 작용이다. 하나님은 의심의 공격을 이겨낼 수 있는 진리를 주신 것이다. 전도서, 욥기, 시편 등의 저자들은 의심과 싸운다. 하나님은 인간의 의심을 인간 사유작용의 가장 격조 높은 한 양식으로 보신다. 김교신은 '51%의 확신과 49%의 의혹과 싸우는 것이 신앙이다'.라고 했다. 기독교는 의심을 통한 철학적 사유, 왕성한 사유를 지지하고 옹호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기독교 세계관의 범기독교 세계관에 전체주의적인 전일적 지배보다는, 기독교 진리의 파편적, 국지적 실험을 강조한다. 기독교는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을 받아 들여야 한다. 기독교가 귀납적이고, 파편적이고 국지적인 현상에서 진리임을 입증해서, 그것들을 총체적으로 구성하여 기독교의 진리성을 귀납적으로 재검증해야 하는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의 연역적 엄호"를 의지하여 태만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추구한다면, 이는 하나님이 주신 사유의 복잡한 층위를 상실하는 것이다. 



4. 교회는 성경의 진리성을 수호할 능력이 있는가?


본래 교회는 성경의 절대적 진리성을 수호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거룩성과 사도적 일치성, 사도적 보편성과 정통성을 상실한 '현재의 한국 교회'는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보이는 한국 교회는 진리수호에 역부족이지만, 보이지 않는 한국 교회(invisible Korean church)는 진리를 수호할 수 있고, 현재 수호하고 있다. 특정 교회에서도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가 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교회, 진리를 수호하고 진리를 순종하는, 성령의 통치 아래 있는 교회를 중심으로 교회를 보신다.



5. 초대교회의 생명력


초대교회는 명실(名實)이 일치한 교회였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신앙고백과 삶의 행동이 완전히 일치했다. 서구철학의 진리관 중에서 역동적 상황의 진리관이 있다. 명제와 사실이 일치할 때 진리라고 한다. 말과 행동이 일치할 때 진리라고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진다면 그리스도인다운 행동을 하기 때문에 그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것인데, 지금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신앙고백, 예수가 우리의 주라는 고백을 하면서도 예수의 주권을 묵살하고 무시하고 배척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은 자기배반이요 그리스도인임을 자기부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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