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22 19:15

김지철 목사 고린도후서 강해 (9) ~ (11)

 

6 Thu. 고린도후서 강해 (9)

 

 

고린도후서 4

 

1 그러므로 우리가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중에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되신 것과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바울이 씨름하는 가지 문제: 하나님과의 관계, 받은 사명을 증거하면서, 고린도교회와의 관계를 운용하는 . 인간관계는 항상 유동적이다. 좋을 때가 있고, 좋지 않을 때가 있다. 부부관계, 친구관계도 마찬가지다. 삶을 인간관계로만 규정하고자 하면, 삶의 기초가 제대로 서지 않는다. 다른 사람 뿐만 아니라, 자신도 유동적이며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 사도 바울은 우선적으로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워가는 문제에 집중.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실존을 바로 세운다. 사람들과의 관계성이 새롭게 열린다. 사랑하고, 담대하며, 주의하며 사람들을 만난다.

하나님께 받은 것이 무엇인가를 항상 마음에 품고 산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르심과 맡겨주신 직분과 사명을 인식. 사명을 깨닫게 되면, 인생을 포기하지 않게 된다. 생명을 받은 이유, 사는 이유, 생의 목표가 있으면 인생이 다이나믹하게 변화하게 된다. 고난을 극복할 있게 된다.

 

(4:1) ’낙심하지 아니한다’: 속에는 낙심하는 마음이 생겨지고 있는 . ‘기뻐하겠다라는 결심 이면에 기쁨을 상실하고 있는 상황이 발생 . 바울의 결단이 내포되어 있다. 직분과 사명을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것은 은혜(mercy). 사명과 직분을 감당하다가 고난을 받고, 낙심이 임하게 되더라도 하나님의 긍휼을 기억하며 좌절하지 않겠다는 결단.

(4:2) 사람들의 비난: 과거의 부끄러움(바울이 과거에 제자들을 핍박),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욕망과 자신만의 생각을 섞어서 혼잡하게 한다. 이에 대한 바울의 항변. 이러한 사람들의 오해와 비난에 대하여 아픈 마음이 있었으나 좌절하지 않았다.

(4:3) ‘망하는 자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다. 구원받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 복음의 효력: 구원의 효력 + 심판의 효력 - 사람들이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꺼려한다. 소크라테스, 공자, 석가는 사람들이 꺼려하지 않는다. 복음은 결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도전을 받게 된다. 수용하던지 거부해야 하는 결단을 요구받는다. 실존 전체를 복음에 투여하게 밖에 없다.

(4:4) ‘세상의 ’: 사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굳게 닫혀있게 한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적으로 임재하실 때에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광, 형상이자 본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묵상으로 깨닫게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으로 다가오셨을 . 성령의 역사에 감동을 받게 . 하나님의 번의 창조: ( 1) + 개별적인 성도들에게 창조의 역사를 부어주신다 + 하늘과 땅을 통한 온전한 역사 ( 21)

(4:6) 번째의 창조: 빛의 창조의 역사와 같이, 우리의 마음이 어둠 속에 잠겨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볼 ,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 지혜의 빛이 마음에 하나님께서 비춰주셨다. 창조의 빛이 임하시는 .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오늘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는 삶이 하나님의 창조의 삶이다. 

(4:5) 예수님만을 전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땅에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종의 모습으로 겸손하게 섬겼던 바울. 직분과 사명을 받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살리며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 그러한 사명을 위해 믿는 자의 삶이 쓰임을 받는 .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모습이다.

 

 

7 Fri. 고린도후서 강해 (10)

 

 

고린도후서 4

 

7 우리가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13 기록한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14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인생의 고난과 슬픔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는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박해를 당하며, 거꾸러 뜨림을 당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다시 일어설 힘으로 일어나게 것이다. ‘오뚜기 다시 일어설 있는 이유는 무게 중심이 가장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중심의 위치에 따라 일어설 수도 있고, 무너질 수도 있다. 인생에서 무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 나의 마음의 중심을 예수의 생명에 두고 있는가? 죽음과 고난, 고통, 낙심과 실수가 넘어 뜨리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이 다시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 있다.

 

신앙이란, 변증법적 이해다. 신앙이란, 역설적인 삶이다.

i.      예수님께서도 마음이 깊이 아프고 당혹스러울 때가 있었다. 우겨쌈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거꾸러 뜨림을 당하면서 심연의 구렁텅이에 빠질 때가 있었지만, 굴하지 않을 있었던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이 내면에 임재했기 때문이다.

ii.     심장의 생명력이 온전하면 연약한 부분은 극복될 있다.

iii.   살아있는 복음이 생명의 중심에 있다.

 

질그릇’: 영원한 세계와 현재 실존의 연약함, 그러나 실존은 영원한 생명과 연결되어 있다.

i.      속성이 흙으로 만든 . 그릇의 형태로 되어 있는데, ‘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인생 속의 무능함을 상징. 스쳐도 아픈 존재. ‘감기같은 사소한 질병으로도 고통을 크게 받는다.

ii.     그러나 질그릇 안에 자랑스러운 예수가 계신다. 예수가 계시지 않으면, 질그릇을 포장하기 시작한다. 금도금 또는 은도금을 함으로써, 금으로 위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기가 오면 약한 질그릇은 깨어지고 만다. 깨어지면서,  안에 숨겨진 탐욕, 정욕, 이기심, 모든 부끄러운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예수 믿는 자들은 질그릇임을 인정. 외모로 정체성을 삼지 않고, 소유한 돈으로 정체성을 삼지 않으며, 세상에서 나가는 직분으로 정체성을 삼지 않는다. 세상에서 되거나, 되지 않거나, 정체성의 근거를 내면에 존재하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에 둔다.

 

인간의 자부심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i.      외모? 얼짱과 몸짱? 자부심이 있기는 있다. 외양은 가꾸는 것에 있기는 있으나,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소유하고 있는 돈과 지식, 인생의 경륜에도 자부심을 가질 있다. 그러나 진정한 자부심은 어디에? 나가던 사람, 돈과 인기에 자부심의 근거를 두면, 유한한 속성을 가진 그러한 근거들이 사라지는 순간에, 삶이 무의미 해지고, 죽음을 향대 달려갈 있는 .

ii.     바울도 외적인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자부심은 내면의 보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생명에 있었다. 질그릇이나 내면에 금이 존재.

iii.   외적인 자부심으로부터 내면의 자부심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도 성숙하지 못한다. 성숙이라는 것은 내면의 세계에 풍성함이 채워져야 한다. 내면의 예수 그리스도가 자부심이요 정체성이 되기 때문에, 세상을 이길 있었다. 지식을 지식으로, 돈을 돈으로, 권력을 권력으로 대항하면 이길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승리의 결정 요인.

iv.   (7) 능력이 하나님께 있기에, 질그릇의 자부심이 하나님께 있어야.

v.     (8-9) 바울의 생애.

vi.   (10) 예수님과 같이 고난에 동참.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다. 죽음을 경험하면서 생명을 경험한다. 바울의 신앙의 변증법이다. 무너지는 해도 무너지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하나님께서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시는 ,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 길이 없는 듯해도 하나님의 평안으로 힘을 얻어 탈출할 있는 . 그의 신앙의 변증법으로 인하여 담대해질 있었다. 이겨낼 있는 힘을 얻게 했다. ‘질그릇이라는 존재성을 인정했기에 겸손할 있었다.

vii.  (11-12) ‘받은 고난이 여러분을 살리는 축복이 것이다’. 그런 고난을 경험한 사람을 통해 공동체가 회복된다. 축복받은 가정에는 반드시 기도하고 헌신하는 분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어머니. 누군가의 아픔과 고난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

viii.(14-15)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비결. 감사할 아는 . 10, 20년이 넘게 신앙생활을 해도, 감사할 모르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없다. 질그릇 안에 담겨진 귀한 보화를 감사하라. 자부심과 정체성의 근거다.

 

 

 

8 Sat. 고린도후서 강해 (11)

 

 

고린도후서 4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4장에서 낙심하지 아니한다라는 말을 반복. 4:1, 8, 16.

 

낙심: 정신적인 고난.

i.      이사야 53: 앞으로 오실 메시아는 연약한 고난의 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의 슬픔과 절망의 질고를 대신 짊어지시기 위하여 당신이 슬퍼하시고 아파하셨다.  인간의 죄악의 질고를 대신 짊어지시기 위하여 인간의 모든 죄악으로 인한 고난을 대신 짊어지셨다.

ii.     예수님의 생애: (1) 병든 자를 궁휼히 여기시고, 분들을 생각하고, 만나고, 고쳐주셨다. (2) 죄에 억눌려 있었던 사람들을 위하여, 정죄의 능력을 파하시고, 죄에 대한 용서의 은총을 내려주셨다. (3)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절망 속에 빠져서 꿈과 비전을 상실했을 ,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 여성들,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자긍심과 자존심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찾아오셔서, ‘너는 하나님의 자녀’, ‘소중한 존재’, ‘엑스트라가 아니라,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셔서 인간에게 낙심을 쇄파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자긍심과 자존심을 회복시켜주셨다. 인간의 연약함과 열등감, 마음의 부스러기, 찌꺼기 등을 속아내어주셨다. 자존감의 훼손은 문제. 자존감의 연원은 내면으로부터 말미암는다.

 

낙심하지 아니한다’: 현장의 상태 뿐만 아니라, 결심/결단을 의미한다.

i.      문제 상황과 환난 속에 들어와 있으나, 환경과 여건을 인식하며서도 그것들을 뛰어넘을 있는 새로운 힘이 내면에 있다.

ii.     결단의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 질그릇 같은 존재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역사가 임하고 있다. 겉사람은 낡아지만, 속사람은 새로워 진다.

iii.   낡아지는 겉사람은 생명의 종말을 암시하지만, 새로워 지는 속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 정신, 믿음은 계속 새로워진다.

iv.   바울이 당한 고난과 낙심, 심연의 구렁텅이에 빠져도 낙심하지 않을 있는 이유. 정신 세계는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기독교: 자유, 진리, 새로움, 생명, 영원한 등의 귀한 가치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붙들고 있다.

 

새로움’, ‘ 대한 소망이 있다.

i.      브랜드, 물건 등에 대해서도 있듯이.

ii.     전도서 1: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아래에서는 새로운 것이 없나니’ (일장춘몽). 아래는 것이 없으나, 위에는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삶이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순간 새로워지는 순간이다. ‘사랑 있어야 새로워진다.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는 가정, 교회, 국가, 자녀, 이웃이 있다. 사랑이 우리를 새롭게 하는데, 영원한 사랑이 존재한다.

iii.   (17) 영원한 영광의 길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셨다. ‘잠깐이요, 그리고 가벼운 ’: 임시적이고 감당할 만한 것이다.

iv.   (18) 주목해서 보려고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 환경과 요동치는 속에서, 그것들을 넘어서서 영원한 생명에 다가설 있다.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보이지 않는 것은 믿음으로 붙드는 .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온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으로부터. 하나님의 약속을 인생의 축복과 진리로 받게 되는 .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약속의 복을 주신다’. 환경을 뛰어넘는 시각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의 임재를 깨달으면서 인생의 새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시간과 공간, 사람들 모두 새롭다. 오뚜기 같은 신앙.

v.     낙심하지 아니한다’: 우리의 결단이 되어야 한다. 육체의 질병, 암이 나쁜 이유는 육체의 질서를 무시하기 때문. 치매: ‘내가 누구인지 대한 기억을 상실. 정신적인 질병은 낙심하고 절망하는 . 키에르케고르, ‘죽음에 이르는 질병이 바로 절망’.

vi.   바울: 절망 속에 들어가 있으나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는 결단.

vii.  우리의 삶이 흔들리고, 낙심할 밖에 없는 상황들이 에워싸고 있으나,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서 계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다시 일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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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8 22:02

소망교회 청년부 비전수련회 2014 여름




1. 신학카페 (김지철 담임목사): 주제 - 팔복



마태복음 5: 3 - 10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어떠한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장수하지도 못했고, 재물이 부요하지도 않았으며, 또한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지도 못했다. 이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복을 누리지 못했다. 


'가난'과 '가난한 자'는 다르다. 성경적인 의미에서 이는 구분해야 하며, '복'의 의미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행복'은 무엇인가?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행복의 원천은 사랑하는 마음이다. 독서, 자기 자신만의 직업 등과 같이 자신이 사랑하는 일들이 있다. 그러한 마음이 일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어떠한 결핍이 있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한, 근본적인 행복이 깨어지지는 않는다. 내적으로 사랑이 결핍되었을 때에 불행의식이 양산되는 것이다. 


Q. '온유한 자'는 현실 속에서 결국 손해보는 자 아닌가? 


'온유'는 단순히 착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무조건 참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착한사람 컴플렉스'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온유'의 특성은 확고한 가치관, 자기 통제력, 자기 자부심, 중심적이고 본질적인 것은 양보하지 않는 신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기초로 하는 견고한 자기 중심성, 여기에 넒은 포용력에 있다. 온유한 자가 받게 되는 '땅'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회와 섬김의 땅을 믿음으로 받는 복을 의미한다. 


"청년성"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실존에 있다. 



▶ "팔복"과 관련하여 추천하는 동영상을 올려드립니다. '팔복 최춘선'(김우현)과 '예수는 나의 힘이요'(김도현)입니다. 









2. '복음에 대한 충성, 세상을 향한 소망'



다니엘 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를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다니엘의 고난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진정한 뜻이 고통과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께 충성하고 애통해하며 부르심의 그 자리를 순종하며 지켜내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성공'이 반드시 수반되는 것은 아니다. 


'왕의 진미'는 이방신의 제사에 바쳤던 음식으로서 세상의 부요함과 편함을 의미한다. '뜻을 정하여'의 의미는 다니엘이 거대한 제국의 힘, 세상의 풍요와 안락의 유혹으로부터 절연할 것을 과단성있게 결단하여 야훼 하나님을 중심에 지키고자 하는 뜻을 정립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금지시키지 않은 '포도주'를 금하기로 한 것은 더욱 결연한 결정을 뜻한다. 


다니엘서 묵시의 핵심은 믿는 자에게 고난이 닥쳐온다는 것이다. 성공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전부가 아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는 박해와 고난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며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순교자의 충성와 의지는 거부할 것을 거부하고, 지켜야 할 것을 지켜내는 데에 있는 것이다. 


무엇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거룩함을 지켜서 세상을 위한 소망과 축복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많은 일을 해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얼마나 큰 사랑과 마음으로 지금의 부르심의 자리에서 충성하고 있는가?


지금 먼저 뜻을 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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