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26 16:36

Unbroken

"자기경영"이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자신의 꿈과 소망, 비전을 구상하는 것, 자신의 내면을 살펴 약함을 버려내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동기, 열정을 끊임없이 채워가는 것. 하루 하루의 삶과 그 수많은 순간들 속에서 자신의 태도와 행동을 지혜롭게 선택하고 결단하는 것. 이와 같은 자기경영은 진정으로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인생을 살며, 그것으로부터 기쁨과 즐거움을 취하는 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 요건이다. 


나아가, 지속적이고 한결같은 사랑, 헌신, 그리고 희생을 위한 요건이기도 하다. 물론, 동정, 연민, 공감 등의 동기로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뿐이다. 깊은 진정성, 그 아름다움과 고귀함, 그리고 그 의미가 오래도록 지속되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랑은 “자기경영의 확장”에 의하여 가능한 것이다. 사랑은 단지 동기와 감정의 차원에 머무는 것인가? 실제의 행함을 통해 드러나는, 사랑도 결국 능력이다. 


이러한 자기경영의 실천에 유용한 동영상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이 동영상은 자칫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 내용은  노만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le)이나 나폴레옹 힐(Napoleon Hill), 지그 지글러(Zig Ziglar)와 같은 분들의 ‘적극적 사고방식’(positive thinking)류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조엘 오스틴(Joel Osteen)목사를 이쪽 그룹으로 분류하는 건 큰 오해라고 생각한다) 다만, 상식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지혜롭고 보람이 있는 인생을 위한 인간의 정신과 태도에 관한 기본 원칙을 잘 정리하고 있다.


핵심 키워드는 꿈과 소망, 일에 대한 사랑, 인간의 정신의 위대함, 진정한 인생의 고난과 도전, 용기의 가치와 의미, 두려움의 문제, 미루기, 훈련과 절제 (감정의 통제), 도전, 결단, 열정, 태도, 자기 책임, 불굴의 인내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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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8 03:40

[Review] 아직도 가야할 길 (M. Scott Peck)

M. Scott Peck의 '아직도 가야할 길'이라는 책은 나의 인간관과 인생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책이다. 이 책을 계기로, '과거의 이재영'이라는 껍질을 제대로 깨고 나올 수 있었고, 이 책은 또한 인생에서 끊임없는 성장에 대한 열정에 매우 귀중한 동기부여를 제공했다. 반디앤루니스 서점에서 우연히 접하게 되어 구입했으며, 후에는 사랑의교회의 '사랑플러스' 서점에서도 이 저자의 section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던 것을 목격했다.


최근에 고민하고 있는 한 가지 이슈는 '현대사회 속의 나약한 인간'이다. 대한민국을 (개인적인 관점에서) '나약한 사회'로 진단하고 있는데,  그러한 문제의 원인은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사회 속에서 사회적 가치관을 보유하는, 인격적인 존재로서 살아가는 한 사람(인간)의 나약함으로 귀속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집단적 또는 공동체적인 메커니즘 속에서도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인 차원에서는 '가치적인 존재'이며 '인격적인 존재'인 인간에 대한 고찰이 그러한 문제점 진단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M. Scott Peck의 '아직도 가야할 길'은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로서 기록된 적이 있는데, 이 책의 키워드는 '현실 속의 고통'과 '사랑'으로서, 인간에 대한 고찰을 위한 매우 귀한 통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 책의 제1부[훈련]과 제2부[사랑]에 대해서 Christian Mind에 요약하는 글을 정리했던 적이 있는데, 이 내용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고 정리해보고 싶다.


 아직도 가야할 길 (M. 스캇 Peck) 소개


1. '고통'에 대하여


현실의 삶 속에서는 다양한 문제와 갈등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한 문제/갈등에 직면할 때, 어떠한 대응태도를 취하는 것이 옳은가? 저자는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옳지못한 대응태도로서 '현실회피' 또는 '문제무시'를 들고 있다. 이러한 대응태도는 결과적으로 더 큰 문제를 낳게 된다고 한다.


네가 문제해결에 참여하지 않으면 네가 문제의 일부가 되고 말 것이다


이 인용구은 '미해결된 문제'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문제해결 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기회 뿐만 아니라 (따라서 이후에 닥쳐오는 문제들에 대해서 준비되지 못하고), 문제해결을 통해서 더 정확하고 확고하게 현실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과 관점(관점의 교정, "진실에의 헌신")을 갖출 수 있는데, 이러한 관점도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무능력한 자신'은 계속적인 인생의 흐름 속에서 (새롭게 도전이 되거나, 이전보다 더 큰 문제상황에 직면하게 될 때) 스스로에게 부담하게 되는 '자기부채'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올바르지 못한 대응태도로서 '현실회피' 또는 '문제무시'의 태도를 취하게 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인간에게는 문제상황이 안겨주는 고통을 회피하고 싶은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고통에 대한 회피심리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러한 마음의 관점은 교정될 수 있다. '작은 문제' 또는 '작은 고통'에 대하여 마음의 관점을 조정하는 '훈련'을 함으로써, '큰 문제와 고통'에 대비해 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성장하는 과정이다. 


생과 성장을 선택하라. 그것은 변화와 죽음의 가능성을 함께 선택한 것이다. 우리가 죽음을 피해서 떠나가면 또 항상 변화하는 삶의 본질을 외면해 버린다면, 우리는 불가피하게 삶으로부터 피해가게 되는 것이다.


2. 사랑


'사랑'은 단순하게 '감정'만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감정'은 '사랑'에 관한 매우 실제적이고 가시적으로 표출되는 요소에 해당한다. 문제는 그러한 감정적 요소는 사랑 뿐만 아니라, '정신병 또는 관련된 질환'에도 존재하는 것이기에, 본질적이고 참된 의미의 사랑과 '정신질환'을 구별하기 위하여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요소가 되지 못한 점에 있다. 저자에 따르면, 사랑에 있어서, 그 본질을 결정하는 요소는 '독립의식', '책임', 그리고 '사랑의 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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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로 정리하고, 다음 기회에 다시 M. Scott Peck의 다른 저서들을 나누고 싶다. 오늘 네이버에서 '사회적 가치'라는 검색어를 통해서 우연히 얻게 된 재미있는 검색결과물이 있다. 칸트의 '가치'라는 글과 김용신 교수님의 '보수와 진보의 정신분석'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잠시 읽게 된 부분은 '사회적 가치의 다양화와 동시성적 자아의 문제'이다. 이 두 글은 다음 기회에 다시 읽고 관련 주제에 대해서 탐색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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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9 02:40

성경적 의미의 사랑에 실패하는 이유

성경적 의미의 사랑에 실패하는 이유


[들어가면서]

성경적으로 사랑은 가장 최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며,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자이다. 무엇보다도 바로 하나님이 사랑이시다.

 

로마서 13:10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요한일서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따라서 사랑의 실패는 필연적으로 율법에의 순종에 실패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함께 일치하는 삶을 살아내는 데에 실패하는 것이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사랑에 실패하고 있다. 가장 큰 비극은 정작 그러한 실패의 때에, 자신의 인식과 판단의 한계로 인하여 그러한 진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사랑의 실천에 실패하는 단순한 예를 한 가지 들어보자.


공동체에서 또는 가족 관계 속에서 내가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 상대방에 대한 나의 분노와 공격을 합리화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상대방의 아픔에 대하여 마음의 눈을 닫아버리고 있다면, 그러한 상황은 사실 궁극적으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때인 것이다.


단순히 그 특정 상대방에 대한 사랑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을 저버림으로써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며, 분노와 증오의 감정 속에서 자기 자신을 죄 속으로 더욱 몰아넣어 자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데에도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완벽하게 하나님과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성취할 수 있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불완전하더라도 신실하게 순종하기 위하여 믿음의 실천에 박차를 가하는 자는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다.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나와 이웃과의 관계'를 짚어보면서 어떠한 경로로 그리스도 신앙인이 사랑의 실천에 실패하게 되는 지를 아래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1.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과 마음: 자존감의 문제

 

인간의 자존감에는 항상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충만함의 결여) 이 있다. 이는 곧 존재론적 허무감이다. 이러한 충만함의 결여가 자신에 대한 불만족, 열등감, 불안의 근본적 원인이 된다.


    자존감 - 나 자신의 가치에 관하여 스스로 느끼는 의식, 생각과 감정


    존재론적 허무감 또는 공허함은 죄로 인한 하나님과의 분리 (관계의 깨어짐)이 원인이다. 이를 김형국 목사님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 김경수 목사님은 "충만함의 원천으로부터의 분리"로 설명하신다.

 

자존감을 충족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자기 중심적 방법과 하나님 중심적 방법이다.


자기 중심적 방법, 즉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주관적인 만족감을 충족을 지향하는 방법을 선택하면, 반드시 그리고 결과적으로 자존감의 충족에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자존감의 공허감 (또는 허무감)의 궁극적 원인은 하나님(신)으로부터의 분리에 있기 때문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하나님 중심적인 방법이다.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통하여 생명과 은혜를 나누며 공급받는 방법만이 유일한 방안이다.


자존감 또는 자기 정체감은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의 문제인데, 죄로 인하여 상함을 받고 왜곡된 자존감의 치유는 하나님의 자녀됨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립함으로써 성취될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됨이란 하나님과 율법적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는 반드시 피해야 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은혜의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과 은혜의 관계를 맺는 데에 있어서 매우 주의해야 할 점은 하나님과의 은혜의 관계는 나의 노력과 성실로써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앙생활의 열심이 그러한 관계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은혜의 관계, 결국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는 오직 "믿음"으로써 성취될 수 있다.


요한일서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2.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각과 마음

 

상대방에 대한 가치 평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특정 사람에 대한 주관적인 가치평가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각자의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에 따라 상대적으로 높거나 낮을 수 있고, 또한 상대방에 대한 가치평가 기준이 되는 잣대의 개별적 차이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상대방을 평가하는 가치기준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평가하는 가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의 경제력, 외모을 기초로 하여 평가를 하는 사람의 경우, 그러한 가치 기준을 기초로 해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이미 내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내적으로 이미 체화된,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다른 사람은 내가 나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이 된다. 상대방과의 상호작용(대화 및 교제)을 통해서 느끼게 되는 감정들 (예를 들어, 동질감, 유대감, 또는 열등감)은 상대방이 내게 미치는 영향력의 산물이 아니라, 상대방과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때에 자기가 스스로를 판단하는 가치판단을 기초로 하여 발생하게 되는 감정이다. 이러한 감정은 근본적으로 인간관계의 형성과정 및 운용에 큰 영향을 미친다.


결국, 인간관계의 운용에 있어서 문제에 관한 일차적이며 근본적인 원인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짚어보자면 인간관계가 잘 운용될 수 있는 지의 여부를 일차적으로 결정하는 요인은 바로 자존감 또는 자기 정체감인 것이다.


자존감 또는 자기 정체감이 왜곡되어 있거나 그 충족에 있어서 실패하는 경우와 인간관계를 통해서 심령에 누적된 상처와 기억이 치유되지 못하여 미움, 분노, 거절감이 자기 정체감을 더욱 훼손시키는 모든 상황은 결국 인간의 죄성을 더욱 악화시키고 만다.


 

3.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에 대한 이해: 그 높이와 깊이, 넓이와 길이를 아는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은 어느 정도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인가?


기독교인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명제를 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자들이 실제의 삶 속에서 드러낼 수 있는 사랑의 능력에는 각자 차이가 있다. 어떤 기독교인의 경우에는 삶 속에서 실제로 실천하는 사랑의 능력과 깊이가 매우 실망스러운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왜 이러한 실망스러운 현실을 목격해야 하는가?


가장 우선적인 이유는 각자가 "내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랑의 능력에 대한 이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적으로 체험하고 있는 사랑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능력에 대한 차이로부터 실제적 행함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다.


사랑의 능력에 대한 이해는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충족되고 있는 사랑의 실제적 체험으로부터 비롯된다. 하나님만이 사랑의 본체이신데, 죄로 인하여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이 깨어진 인간이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에서 사랑의 본질적 능력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성립될 수 없는 명제이다. 다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에 (죄의 상태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인간은 사랑을 불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사랑의 능력으로 사랑하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을 나누며 사랑을 누리는 자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실제를 정확하게 깨닫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나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희생시키셨던 그 크신 사랑을, 십자가의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어야 한다.


둘째, 내 안에서 나의 능력과 의지에 따라 사랑하는 죄성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를 "내려놓음"(이용규 선교사) 또는 "비움" (손기철 장로)라 한다. 하나님이 나의 속사람에 대하여 완전한 주권과 통치를 행사하시도록 나의 능력을 내려놓아야 하며,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으로 채워지기 위해서 나 자신을 먼저 비워내야 하는 것이다.


 

4. 죄성의 충족과 착각


다시 죄의 문제로 돌아간다. 인간은 배움과 지식을 통해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이러한 지적 능력도 하나님의 창조를 통해서 받은 것임은 기억하자), 죄에 대하여 육신의 눈으로 발견하여 깨달을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성령의 조명(Illumination), 즉 하나님의 영의 빛을 통해서만 어둠 속의 죄가 드러날 수 있다.


심령이 여전히 죄의 어둠 속에 묻혀있는 자는 자신의 죄를 밝히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범하기 쉬운 큰 실수는 자신의 공허함, 열등감, 상처 또는 마음의 쓴뿌리와 같이 자기 정체감을 괴롭히는 요인들로부터 벗어나고자 [자기 중심적인 방법]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한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가인이 아벨에게 취했던 것과 같이 자기 정체감에 큰 실망을 경험하게 하는 계기를 야기한 인간관계의 상대방을 해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죄성으로 인하여 발생하게 된 자기 정체감의 상함에 대한 원인을 자기 자신의 내면 속에서 파악하는 데에 실패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다른 사람에게 원인을 귀속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자기 정체감이 회복된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한 착각이다.


그러한 행위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은 상대방을 해함으로써 만족되는 죄성이 더욱 악화된 인격일 뿐이다. 내면에 숨겨진 수치심은 잠시 어둠 속에 가려지지만, 여전히 자기 정체감 또는 자존감의 문제와 인간관계에서의 부자유 (불화합)은 더욱 악화된 문제로 남을 뿐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자기 중심적인 방법을 통해서 자기 정체감이 회복된 듯한 착각에 빠지지만, 그 실상은 내면의 죄성과 자기 정체감이더욱 악화되고 마는 것이다.


 

5. 결론

 

자존감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는 죄인된 인간이 평생동안 씨름하며 겨루어야 하는 과제이다. 인간은 평생을 자신의 존재론적 충만함 (또는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인격적 폭력을 행사하거나 소비(돈, 소유욕 및 기타 욕심의 충족), 성공과 명예(헛된 자존감 충족수단)를 좇아 살며 인생을 헛되게 보내기 쉽다.


그러나 그와 같은 육신적 욕심 충족은 근본적으로 영적차원의 생명의 회복과 충족과는 별개의 것이고, 게다가 인간의 죄성을 악화시키는 것으로서, 전자의 충족을 후자의 충족으로 착각하는 만족감을 일시적으로 누릴 수 있을 뿐이다. 결국 그러한 착각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더욱 깊은 허무감으로 드러나고 만다.


위에서 살펴본 자존감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가 안고있는 공통된 요인이 있다. 그것은 모든 생각, 판단과 행동이 [자기 중심적]이라는 것이다.


죄의 기본적 속성이 바로 [자기 중심적]이다. 이러한 죄성을 [자기 중심적]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겠는가? 물에 빠진자가 스스로 자신의 머리를 끌어당기면 구출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최소한 알아야 한다. 위와 같은 과제를 스스로 짊어지면 반드시 쓰러진다. 그 모든 문제에 묶여서 인생의 자유함이 상실되고 말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가야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길을 열어주실 것이요, 인생의 헛된 고민과 생각 가운데에서 참된 진리를 알게 하실 것이며, 인간의 존재론적 허무감을 온전하게 충족시키는 참 생명을 나누어 주실 것이다.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올 자가 아무도 없느니라


마태복음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의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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