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18 00:00

회심 [2] (짐 월리스) - 4. 불의 5. 위험

회심 (2) 


4. 불의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8~10)

(1) 경제적 양극화 p.73

워싱턴 D.C. 지역의 도시 빈민의 문제: 경제적 착취와 정치적 유기의 복합의 문제. '도시 귀환 운동' 또는 '고급 주택화'를 통해 고소득 거주자들이 옛 도심지로 돌아오게 되면, 이들은 퇴거당하는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p.75

디트로이트에서는 1967년에 소요 사태 발생. 도시 빈민의 분노와 좌절의 폭발. p.76


(2) 경제적 양극화를 구축하는 경제 질서 p.79

전체 경제 질서 속에서 벌어지는 부자들에 의한 가난한 자들에 대한 약탈은 세계 경제 체제 속에서 합법화되고 합리화되었다. 도시 최하층은 경제적인 소모품으로 만들어져 왔다. 그 실업과 피폐함은 체제 유지를 위한 용납할 만한 대가로 여겨져 왔다. 

오늘날의 제국주의는 더이상 영토의 점유에 근거하지 않고 자원의 통제에 근거하는 제국주의 p.84

불의에 기초한 번영의 결과는 불안이다. 의기소침, 냉소, 절망, 향락주의는 모두 부유한 나라들의 문화를 특징짓는 근본적인 불안의 열매이다.


(3) 소유의 노예
오늘날 풍요롭게 사는 자는 자신이 소유자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소유물에 불과하다. 자신의 재산에 노예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 돈의 주인이 아니라 종이다 p.90


(4) 해결방안
① 사회적 무시를 깨드려라 p.94. 삶의 경로를 바꾸어 가난한 자와 구체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 p.92.
② 복음주의적 관점: 가난한 자와 동일시 하시는 하나님. 영국과 미국의 복음주의 운동의 성과 (노예제 폐지, 경제 정의, 여권 신장을 위한 투쟁)


(5) 20세기의 왜곡된 복음주의 p.98-99
미국 20세기 복음주의는 부요와 권력에 대한 주류 사회의 가치관과 완전히 동일시되기 시작했다. 복음주의자들은 가난한 자들의 친구이기보다 성공한 자들과 번영한 자들에 대한 분명한 선호를 나타냈다.


(6) 부에 대한 성경적 관점의 회복 p.100~
① 나눔(희년의 재분배 p.102)은 정상적인 신앙의 결과, 주기적 행사가 아니라 일상적 생활 방식
② 빈곤은 우연이나 자연적 영향이 아니라 불의에서 비롯된 문제
③ 예수님의 산상수훈


(7) 부와 예배와 신뢰 p.104

염려와 안정 p.105: 물질적 필요에 대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제자도

친교에 대한 성경적 비전 p.123 : 삶의 경제적인 측면, 곧 우리의 돈과 소유를 서로서로 그리고 가난한 자들과 나누는 것을 포함한다.

(8) 성령에 의한 새로운 경제질서 창조 p.114

① 성령의 임재로 말미암은 영적인 하나됨은 경제적 평등과 불가결한 관계가 된다. p.115 대부분의 사람이 가난에 처해있는 세계 속에서 부를 축적하며 풍요를 누리는 부유한 교회는 죄의 증거이며 우상 숭배의 증거이다.

세상은 마침내 극심한 빈곤을 종식할 수 있는 지식, 정보, 기술 자원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부족한 일은 그렇게 하고자 하는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의지이다. p.124

②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균등'을 요구하는 새로운 규범에 넘치는 기쁨을 만끽하며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다. p.116

③ 자기 이익을 무너뜨린다. p.117

(9) 노예제도 폐지운동 p.120

① 회심의 열매. 미국 남북전쟁에 이르기까지의 부흥, 복음주의 신앙이 강력하게 발현된 '대각성'(Great Awakening)이 붙들었던 핵심적인 사안.

② 당위적인 교회의 비중립성 p.122
부흥과 노예 폐지론의 연관성
교회의 침묵은 노예 제도를 죄로 인정하지 않는 것. "교회는 위증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성령이 교회를 떠난다"
교회가 노예 제도를 지지할 때, 교회의 영적 생명과 온전성을 크게 훼손하게 될 것.
노예 제도의 용인은 인간 생명과 가치를 특별히 위협하는 것이고 사랑의 하나님의 의를 침해하는 것이다. 빈곤의 문제도 마찬가지.

(10) 하나님의 회심으로의 부르심 p.125
하나님은 우리의 문화 속에서 활동하신다. 화가와 음악가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젊은이들로 구성된 새로운 세대가 이 대의에 헌신한다. 

하나님의 회심으로의 부르심은 '신앙으로의 부르심' 뿐만 아니라 '대의에 대한 헌신으로의 부르심'이다. p.126



5. 위험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여 시기하여도 능희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약 4:1~2)

Preemptive Strike on Iran is Illegal (Jae Young Lee, Ohmynews International)


(1) 전쟁과 평화에 관한 교회의 도덕적 위기 p.128

예수의 제자가 되라는 부르심의 중심에는 평화를 만드는 자가 되라는 부르심이 있다 (마 5:9) 그러나 현재 교회는 논의자체를 하지 않는다. 

사탄은 사람들로 하여금 가장 중요한 문제로부터 관심을 돌이켜 명목적으로 선한 대의에 집중하게 하는 전략을 가장 선호한다. 우리는 이러한 전략에 말려들어 전쟁과 폭력 문제에 눈먼 채 있는 것이 아닌가. p.130

(2) 기독교 전통에 의한 세 가지 선택과 오늘날의 요청

① 철저한 평화주의: 모든 형태의 폭력과 심지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되는 강압조차도 거부.
② 십자군 성향: '이교도'를 쳐부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치루고, 필요에 따라 무력을 사용해서 기독교를 세운다.
③ 정당한 전쟁: 전쟁이 정당화 되기 위해서는 엄격한 기준이 충족되어야 하고 오직 최후의 수단으로서만 수행될 수 있다. 또한 적법한 당국에 의하여 정당한 이유와 의도를 지녀야 하고 성공할 합리적인 승산이 있어야 하며 성취될 선과 비례하는 것이어야 하며, 전투원과 민간인을 구별하여 행해져야 한다.
④ 오늘날의 요청: 정당한 평화주의
: 실제적으로 분쟁을 해결하고, 정의를 성취하며, 평화의 가능성을 더욱 높이는 '변화시키는 주도권'을 추구한다.


(3) 해결방안

① 완악한 마음을 버려라 p.136-137
완악한 마음은 고의적으로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과 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상실한 상태에 가깝다.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나 듣지 못한다. 이성은 안개로 뒤덮이고 마음은 닫힌다. 완악한 마음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냉담하다.

분쟁과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닫는다. 양심에 아무런 느낌도 없고, 단지 '전쟁이라는 실제'에 대한 두려움, 혼란, 체념 뿐이다. 

평화를 위한 행동을 취함으로써 마음을 부드럽게 할 수 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다시 경험해야 한다.

② 응보의 원리를 사랑의 실천 원리로 대체하라 p.140
내가 당한 만큼 가해자에게 돌려주는 응보의 원리를 따르지 말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화해를 추구하는 것이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화해의 일은 우리의 소명이다.

③ 정당한 평화 만들기 운동을 하자 p.147
비폭력 직접 행동을 후원하라/ 위협을 감소하기 위한 독립적 주도권을 취하라/ 협동적인 갈등 해결책을 사용하라/ 분쟁과 불의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참회와 용서를 추구하라/ 민주주의, 인권, 종교적 자유를 증진하라/ 정당하고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을 육성하라/ 국제적 체계 속에 발흥하는 협력 세력들과 함께 일하라/ 상호 협력과 인권을 위한 국제적인 노력과 국제 연합을 강화하라/ 공격 무기와 무기 거래를 감축하라/ 풀뿌리 평화 만들기 모임과 자발적인 단체들을 격려하라

④ 기도하라 p.152
에베소서 6장에서 바울은 우리가 정사와 권세에 대항하는 영적전쟁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기도는 영적전쟁을 위한 무기이다.

권세가 제공하는 안전에 대한 저항자가 되기 위해서는 공포, 소유물, 돈, 권력, 사상, 대의의 영적인 노예 상태로부터 자유롭게 되어야 하고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안전을 구해야 한다. 오직 기도만이 이것을 가능케한다. p.154

기도는 마음을 부드럽게 해서 적개심을 약화시키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적을 마음에 품게 되고 그들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변화된다. 그들의 관점에서, 곧 그들의 감정, 두려움, 고통, 분투, 기쁨, 소망으로 사물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적이 더이상 적이 아니요 이웃으로 변화된다. 

토머스 머튼(트라피스트회 수도사) "전쟁의 뿌리는 두려움" -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적을 비인간화하는 것이다. 비인간화를 통해 적들은 정상적인 인간적 감정과 가치관을 소유할 수 없는 자들이기에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우리의 생활 방식을 위협한다. 경제적 양극화 사회에서 가난한 자들과 얼굴을 맞대어야 하는 것과 같이 폭력과 보복적 폭력의 세대에서 회심은 수많은 희생자의 인간적 실제성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p.158

⑤ 평화를 만드는 자가 되라 p.160-161
평화를 만드는 자는 그에 따르는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평화만들기는 결과적으로 커다란 갈등을 낳을 것이다. 평화주의 옹호자들은 평화라는 대의를 위해 감수해야 하는 고난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에 '정당한 전쟁' 옹호자들은 너무 많은 전쟁을 용납한다.

평화를 만들기 위한 최선의 활동은 더 많은 대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상황을 낳는 종류의 활동이다.

⑥ 폭력에 직면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기억하라 p.163
역사 속에서 그 승리는 보장되어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승리의 빛 속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전쟁의 기반이 두려움이고, 결국 더 많은 두려움으로는 전쟁을 압도하지 못할 것이다. 대신에 폭력은 소망으로 극복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그리스도의 승리가 폭력의 권세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우리가 승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주님의 날에 주님이 승리하리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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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7 23:55

회심 [1] (짐 월리스) - 1. 서문 2.부르심 3.배반

회심 (1)

 

1. 서문


(1) 역사 속의 회심 (Conversion in History) p.24

교회가 현재의 역사적 실제와 관련이 없었다는 것은 문제예를 들어인종차별 문제의 본질은 깨어진 관계' p.25 였는데이를 단순히 사회적 논쟁거리로 처리

(2) 
회심의 과정 p.26

성경으로 돌아가 예수를 새롭게 만났다 
à 개인적 신앙과 사회적 실천간의 분열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하게 되었다 à 실제 문제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3) 
전도는 복음의 정수를 전하는 것 p.28 

(4)  복음주의자와 자유주의자에 대한 문제의식 p.29

시대를 향한 회심의 의미를 오해역사적으로 적실한 제자도에 대한 이해없이 허둥댄다.

 

 

2. 부르심 

(1) 관련 성경말씀
"
회개하라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4:16~17) +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3:3~7) + “너희는 그의 소유요 거룩한 백성이니” ( 2:9

(2) 
본향으로의 부르심거듭남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자가 되어야 한다.

거듭남은 내면의 질서체계를 회복하는 경험이기심어둠우상습관속박 è 하나님 나라의 경험이다

내 안에서 경험한 하나님나라와 사회질서간의 모순에 대한 문제의식


(3) 자기애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목적이 기준과 척도가 되는 삶

(4)    이데올로기적 처방의 한계 p.52

 

 

3. 배반


(1) 자기중심적 문화의 영향과 그 결과자기중심적 종교정체성 상실악한 사회제도에 적극적 가담 또는 방임

(2) 거짓 예배 –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문화적 우상 숭배를 겸한다. 

(3) 
복음의 사유화 p.68

사회현상유지를 지지하는 개인주의적 신앙하나님나라를 억누른다복음의 공적인 의미는 상실됨.

(4) 
죄와 구원의 사회적 의미 p.69
"
세상의 죄"의 공범임을 자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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