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27 20:11

신앙적 타성에 대한 출구전략

'신앙적 타성'에 빠지는 시기는 항상 꾸준히 찾아오는 편이다. 나의 경우, 신앙적 타성의 증상은 주로 QT에 대한 집중력 약화 및 게으름과 나태함에서 관찰된다. 그리고 이는 일상생활 속에서의 집중력 약화 및 영성의 탄력적 균형의 약화로 이어진다.


'신앙적 타성'에 붙들릴 때에, 기존의 대응책에는 몇 가지가 있었다. 

(1) 자기 책망을 통해서 마음을 다잡고자 노력하거나;

(2) QT의 방식을 변경시킨다. 혼자만의 말씀 묵상에서 '새벽설교'의 말씀을 듣는 방법으로 혹은 그 역으로 방법을 취함으로써 주의력을 환기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책은 효과적이지 못하였고, 사실, 그러한 대응책은 급조된 방안으로서 '하나님-나'의 관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이 될 수는 없었다. 다만, '속수무책'에 대한 임시방편적 대안이었을 뿐이었다.


신앙적 타성의 문제에 대한 원인 진단은 조금 더 추론과 분석의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다만,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잠정적으로 한 가지 원인을 진단하자면, 현재의 상황에 대한 안정감으로 인한 현실안주 의식 또는 만족감으로 인해 심신이 지나치게 이완되거나, 영적인 긴장감과 영민함이 이완되어서 지속적인 신앙적 순종을 이어가는 믿음 또는 겸손이 무뎌진 결과로 신앙적 타성이 발생하게 된다고 본다. 


이러한 진단에 기초할 때, 한 가지 대응방안을 그 원인의 출발점으로부터 추출해낼 수 있다. 그것은 현재의 상황에 대한 막연한 안정감, 현실안주 의식 또는 만족감이 심리적으로 잦아든다는 판단이 성립될 때, 현재의 상황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사항을 정리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안정적인 또는 만족할 수 있는 현재의 조건과 상태와 관련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이다. 안정감 또는 만족감은 나름 긍정적인 생활 요소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이완된 마음 상태 가운데, 그 현실적인 상황과 조건을 허락하신 주체가 되시며, 평강을 은혜로 부어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망각된다면, 이는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부재 가운데 형해화된 신앙만이 남게 될 수 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영광의 기도'는 그와 같은 신앙적 타성의 위기 상황 가운데에서 겸손의 태도를 견고하게 지켜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롭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출구로 나아가는 방안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안은 '하나님-나'의 관계를 깊이있게 진단함으로써 근본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는 대책이 된다. 또한 현재의 상태에 대한 안정감 또는 만족감은 실제로는 자기착각에서 비롯된 것이고, 한편으로는 위기의 순간이 접근하고 있는 것이 예상치 못한 현실의 실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의 기도를 올려드리는 것은 그러한 가능한 위기의 순간에 대해서도 방어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지혜로운 대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 당면한 나의 신앙적 타성의 문제에 대응하여 몇 가지 감사의 기도제목을 나누며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여러가지 삶의 기회들을 열어주신 것을 감사드린다.

진로, 배우자, 나의 인격적인 연약함, 지성과 영성의 연단과 같은 이러한 고민과 문제점들을 차근차근 현실의 삶 속에서 여러 도전에 대응하면서 해결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연단의 과정을 밟아가면서 이제는 하나님께서 진로와 배우자에 관한 기회를 열어주셨다. 내 마음의 어느 한 구석에서도 하나님께서 오직 은혜로 허락하신 이 귀한 기회와 선물을 겸손히 받지 못하거나 진실된 감사가 빈약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겸손과 감사의 마음이 항상 진실되게 충만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의 중심을 붙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 나의 아버지의 건강과 평안을 지켜주셔서 감사드린다. 

나의 육신의 아버지께 나는 여러가지로 많이 부족한 아들이다. 군인이셨던 아버지의 직업 특성상 아버지-아들의 관계가 오랜 기간동안 가족 공동체 울타리 안에서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는 관계였고, 학자의 길을 걷는 인생의 선택으로 인해 다시 한 번 그와 같은 기회를 넉넉하게 누리지 못하는 가족의 삶이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자율과 책임 정신을 강조해주셨던 가르침을 항상 기억하며 현실의 문제에 침착하고 지혜롭게 대응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들에게 중대한 귀감이 되었다. 아버지의 정신과 태도를 마음 속 깊이 존경한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나의 육신의 아비의 마음과 육신을 보호해주시고, 은혜로 감싸안아주시기를 기도한다.


(3) 내게 사랑하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 민족,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알게된 여러 지체들을 향하여 열린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나눔과 교제의 소망을 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러한 나눔과 교제가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항상 꾸준한 마음으로 중보하며 소망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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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6 17:10

크리스찬이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크리스찬이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최근에 성경 말씀을 붙들고 묵상하고 있는 하나님은 ‘나의 음성에 항상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 그리고 ‘나의 기도에 언제나 응답하시는 하나님'이다.

시편 5:1~:3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이 말씀은 다윗의 고백과 기도이다. 하나님의 충성된 종, 다윗은 어린 나이에 골리앗을 단숨에 물리친 영웅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왕권을 넘보는 아들에게까지도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쫓겨다니는 고난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러한 고난 중에서도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를 주님께 다 맡기고 제사와 기도로 하나님께 겸손히 무릎꿇고 나아가는 충성된 종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이것이 하나님이 그를 선택하신 이유이다.

마가복음 5:25~29, 34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 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의 믿음은 상당히 독특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와 구원의 선포가 이루어지기 이전에 스스로의 행함을 통해 치유를 받았다. 이 여인의 믿음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마가복음 11:23~2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이 말씀을 통해 생각해볼 점은 다음과 같다. 기도하는 자의 믿음은 어떠해야 하는가? 헛된 기도가 아니라 응답받는 기도는 어떠한 차별된 기도인가?

 

리즈에서의 1년. 많은 고민들과 다양한 상황을 경험하면서 겸손히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얻었다. 나의 기도에 반응하시며 ‘새 일을 행하시는, 능치못할 일이 없으시며, 기적에 능하신 하나님’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기도할 때의 나의 생각과 기대보다 더 큰 일을 앞서서 성취하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새롭게 되었다.


신년 예배 때에 받은 말씀이 다윗의 고백이었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 39:7)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겸손히 하나님만을 바라며 구하는 이 다윗의 기도, 그러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의 높고, 깊음, 그리고 그 부요함이 기도하는 자의 기대와 예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다시금 느낀다.

 

크리스찬이 기도하는 이유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인생에는 반드시 기도만을 붙들어야 하는 순간이 닥쳐온다

자신의 소유 (지식, 지혜, 경제적 부, 인맥 등), 가장 자신있게 내세울 수 있는 것, 그리고 평소에 습관적으로 또는 익숙하게 의지해왔던 것들. 인생에는 이러한 모든 것들이 문제 해결에 전혀 소용이 되지 못하는 고난의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그러한 고난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서 지식과 정보를 취할 능력이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준비되지도 않고, 예상치도 못한 상황'으로 찾아오게 마련인 것이다. (‘현재'라는 시간을 지배할 수는 있어도, 동시에 ‘미래'를 지배할 수는 없으며, ‘이 곳'이라는 공간적 제한 속에 존재하는 인간이 동시적으로 ‘저 곳'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취하는 데에는 반드시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한 고난의 순간에 취할 수 있는 가장 귀한 지혜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물론 심리적인 성급함으로 인해 자신이 가진 자원과 시간을 활용해서 문제를 해결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시간적인 여유는 별로 남아있지 않고, 선택의 여지도 좁아져 간다.


그런데, 그 순간 두 가지 질문만 한 번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나는 하나님을 왜 믿는가? 과연 이 순간 나의 인생의 참된 주권자이시며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나에게 있어서 ‘살아 계시는 하나님’인가? 그러한 고난의 때에 하나님이 나의 삶에 아무런 의미가 있는 존재가 아니라면,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자신의 답은 ‘아니오’가 될 수 밖에 없다. 자신의 믿음이 재확인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도 못하고, 그 하나님이 ‘살아있는 하나님’으로서의 의미가 없다는 신앙의 현실이.


그 고난과 위기의 순간, “하나님은 나에게 어떠한 존재인가?”라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필요가 있다.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따라 출애굽하여 홍해 앞에 이르게 된다. 뒤에서는 애굽의 군대가 쫓아오고 있는데, 바로 앞은 홍해가 막고 있다. 피할 곳이 없는 위기의 순간, 하나님은 그 이스라엘 백성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어주셨다. 모세를 통해 홍해를 열어주신 것이다.


모든 수단의 유용성이 의심되는 위기의 때에, 신속하게 하나님께 무릎꿇지 않는 크리스찬은 궁극적으로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인생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문제로부터, 그리고 조급함 또는 성급함에 붙들려 자포자기 하고, 위기 상황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맞서야 하는 문제로부터. 크리스찬 신앙인이기에 이미 자신의 구원자에 대한 개념적인 지식은 있지만, 위기의 상황 가운데 그 지식이 실제적인 차원에서 믿음과 신앙의 기초가 되지 못한 결과이다.

 

2. 크리스찬의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본적인 방법이다

“Sin”(죄)의 어원의 의미는 ‘과녁을 벗어남’이다. 다시 말해서, ‘죄’란 하나님이라는 중심에서 벗어난 모든 것을 의미한다. “주변화된 내적인 상황과 외적인 현실”을 바로잡는 방법은 죄인이 스스로 구할 수 없다. 물에 빠져 허우적 대며 구원을 필요로 하는 자가 스스로의 머리채를 붙들어 구원해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해답은 오직 중심의 회복에 있다.


보혜사 성령은 인간의 내면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으로 거하신다. 기도는 육신의 모든 시야를 닫고, 내면의 중심에 오직 하나님 만을 모심으로써 시작된다. 기도의 의지와 뜻, 정성을 비롯하여 ‘기도’ 는 죄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지와 믿음을 담지하며, 하나님 중심의 회복을 통해 죄의 문제로부터의 해방을 성취하는 길이다. ("주변화된 외적인 현실"에 대해서는 아래 3.에서 구체적으로 다룬다.)


기도는 나아가 하나님의 (영적인) 생명을 내면에 심는 방법이다. “자기 자신의 부인”, “옛 사람을 벗는 것”, “기름에 담겨진 심지가 되는 것”, 그리고 “날마다 죽는 것”을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조건으로서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받아야 한다. 구원을 받은 피조물의 생명은 포도나무에 접붙임을 받은 가지로서 누리는 생명으로 비유될 수 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에 뿌리박아 심겨진 나무로서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되는 것이다.

시편 1: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중심에 모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을 충만하게 누리는 것. 바로 이것이 날마다의 삶 가운데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본적인 모습이다. 크리스찬으로서 누리는 생명력 넘치는 “생명의 삶”이다.


기도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인간의 교제와 나눔은 하나님이 갈망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경말씀의 묵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내면에 임재하시는 것 뿐만 아니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 뜻, 그리고 사랑을 충만히 채우고 깊은 교제를 이루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시는 그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이다.

요한복음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3. 언제나 미리 기도할 필요가 있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을 수 있겠으나, 기도의 능력과 그 응답에 대한 신뢰와 의지가 일상의 삶 속에서 훈련과 습관으로 다져지지 않았다면, 위기의 순간 또는 고난의 상황에 직면하여 기도로 대응하는 태도를 쉽게 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크리스찬은 위기와 고난의 때가 닥치기 전에 미리 훈련과 습관을 따라 기도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자원과 시간을 활용하되, 하나님의 뜻과 시기를 앞서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데, 문제해결을 위한 대응을 기도로 시작하는, 그러한 기도의 훈련과 습관을 위해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방법론적 우선순위).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중심의 회복을 외적인 현실속에서 실천하는 기본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는 미래에 대한 염려에 붙들린 비관주의인가? 아니다. 겸손히 무릎꿇은 기도의 크리스찬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겸허히 수용하며 그 생명의 능력을 갖춤으로써 닥쳐오는 어떠한 상황에 대해서도 이미 준비되고 더욱 담대해질 수 있다. 준비되지 않은 크리스찬에게는 인생을 뒤엎어 버릴 만한 폭풍우 같은 험한 위기와 고난으로 닥쳐오는 그러한 상황에 대해서, 기도로 준비된 크리스찬은 이를 감당해 낼 수 있는 영적인 역량을 갖춘 하나님의 사람으로 굳건히 설 수 있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4:7~10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4. 글을 마치며

하나님은 나에게 있어서 진정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신가? 이 질문에 대한 ‘예’라는 대답은 자신의 책임에 달려있다. 항상 나의 소리를 듣고 계시며, 나의 기도에 쉬지 않고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기도로써 나아가는 삶을 선택하고 있는지, 그러한 선택과 결단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삶의 순간들과 고난과 위기의 상황은 기도의 계기가 된다. 깨어있지 않으면, 기도의 기회를 놓치며, 하나님의 뜻을 놓치고 만다. 깨어 기도하되, 습관과 훈련을 통해 미리 기도하라.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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