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27 20:11

추천하는 신앙서적

제가 많은 신앙서적을 읽는 편은 아니지만, 그동안 읽었던 몇 권의 신앙서들은 저의 신앙의 성장을 위해 매우 귀한 책들로 기억됩니다. 성경 말씀은 신앙의 기초요 기본인데, 이러한 신앙서들은 그 말씀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돕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무릎꿇는 그리스도인 (앨버트 리차드슨, Albert Richardson)



이 책의 제목은 원래 ‘무명의 무릎꿇은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저자가 밝혀지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신앙인들에게 깊은 감명과 지혜를 제공한 책으로서, 특히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은혜로운 교제에 관하여 깊이있는 마음의 시야를 열어준 책입니다. 차후에 저자가 밝혀졌습니다.

이 책은 제가 기도를 통해서 응답받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군에 입대하기 전에 신앙서적을 하나 구입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신앙을 위한 좋은 책을 하나 잘 고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는 내용으로 기도를 드리고, 강변역 두란노 서점에 잠시 들렸습니다. (지금도 이 서점이 있는 지 모르겠네요) 우연히 이 책을 집어들었다가, 그 내용을 잠시 훑어보고 금방 반해버렸습니다. 한 줄, 한 줄의 내용이 너무나도 귀하게 느껴져서 밑줄을 치면서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책은 제가 크리스찬이 된 이후, 성경 다음으로 읽었던 신앙서로서 저의 신앙의 기초를 다져준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습니다. 네이버 블로그 서평 하나 (링크)




내려놓음 (이용규 선교사)



하버드 출신의 몽골 선교사로서 알려지신 이용규 선교사님은 ‘내려놓음'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경적이고, 올바른 방법을 제시합니다. ‘내려놓음'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첫걸음’이나 ‘하나님께 마음을 열어 나아가는 것'의 의미는 매우 막연하게 느껴지고,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명확하게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라고는 믿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일상의 삶 가운데, 어떻게 하나님을 느끼고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는 지를 알지 못하는 크리스찬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이용규 선교사님의 선교사역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내려놓음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말씀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용규 선교사님의 ‘내려놓음'은 우리의 마음의 눈을 두드리고 계시며, 우리와 ‘더불어 먹는’ 친밀한 교제를 소망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어떻게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맞이할 수 있는지, 그러한 신앙의 기본에 관하여 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책입니다.


 

고맙습니다, 성령님 (손기철 장로)




‘성령’은 삼위 하나님의 한 분으로서, 하나님의 영이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고난 후에 승천하실 때에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우리에게 부어주신 보혜사(Counselor) 입니다. 성령의 역할에 관한 예를 들면, 성령은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을 때에, 문자로서의 말씀의 내용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의 분별과 깨달음, 인도하심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가 일상의 삶 가운데, 가장 가깝게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성령에 대하여 성경의 말씀에 기초하여 이해하기 쉽도록 돕는 책으로, 손기철 장로님의 ‘고맙습니다, 성령님'을 들 수 있습니다.


손기철 장로님은 현재 건국대학교 생명공학부 부총장이시며 온누리 교회의 장로님이십니다. 저는 손기철 장로님의 저서를 5권 정도를 읽었고, 말씀집회에도 후배와 여동생과 함께 참석했던 적이 있는데요, 말씀의 이해에 관한 통찰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특히 말씀 집회에서는 ‘말씀의 어루만지심’을 신앙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손기철 장로님의 설교말씀은 갓피플 (http://tv.godpeople.com/)에서 그 동영상을 접할 수 있고, 갓피플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동영상을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김우현 감독)



김우현 감독은 어느 날 우연히 지하철에서 만나게 된, ‘맨발의 천사’, 최춘선 할아버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됩니다. 이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 바로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입니다. (예전에는 ‘버드나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그 다큐멘터리의 동영상을 접할 수 있었는데요, 지금은 더 이상 운영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최춘선 할아버지는 ‘남북통일’이 오는 그 날까지 신발을 신지 않으시기로 작정하시고, 맨발로 전도를 하시는 분인데요, 원래 목사님으로서 김포지역에서 고아와 노숙사를 섬기시던 분이었습니다.


김우현 감독은 어느 날,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나게 최춘선 할아버지를 따라 다니면서, 그 전도사역을 관찰하기도 하고, 대화를 통해 그 분의 신앙과 인생에 대해서 알아가게 됩니다. 짧은 대화들을 통해서, 그 분의 신앙의 깊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검색해보니, 유투브에 최춘선 할아버지 다큐멘터리 동영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래에 게시합니다.

팔복, 최춘선 할아버지

 


아직도 가야할 길 (M. 스캇 Peck)

‘아직도 가야할 길’이라는 책의 키워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고통’과 ‘사랑’. 이 책은 인생 가운데 경험하게 되는 고통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여, 그 고통을 직시하여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인생의 끊임없는 성장과 사랑의 성숙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의 북리뷰는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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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4 09:21

내려놓음: 그 의미와 실패의 이유

 

내려놓음 의미와 실패의 이유

 




1. 서론

 


내려놓음의 실패의 문제에 들어가기에 앞서, 잠시 내려놓음의 의미와 이용규 선교사님께서 '더 내려놓음'을 통해서 나누어주셨던 '자기의'와 '자기애'의 문제를 짚고 들어가고자 한다.



 

1) 내려놓음의 의미



 

내려놓음이란 단순히 무엇인가를 포기하거나 용납하는 것을 의미하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적극적으로, 전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다만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인정하기 위해 "나의 나에 대한 주인됨", 즉 나의 주권을 완전하게 비워서 포기하는 것이 선결조건으로 필요하다.


 

나의 주권의 행사는 일상의 삶 속에서 나의 마음의 문제, 삶과 현실 속에서 직면하게 되는 문제에 대하여 궁극적인 수준에서 나의 판단과 생각의 능력에 의지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열등감, 심리적 불안감, 두려움, 의심, 마음의 상함의 문제 뿐만 아니라 오늘 하루의 삶을 계획하고 운영하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나의 능력과 노력으로 풀어가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먼저, 그리고 오직 통치자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에 의지하는 태도가 바로 내려놓음이다.


 

예를 들어, 일상의 순간에 삶과 미래의 문제에 대한 근심과 걱정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이러한 근심과 걱정으로 인해 두려움과 초조함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 때가 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다른 수단과 방법을 통해 문제를 회피하거나 포기하는 과정을 택하면서 문제는 해결이 아니라 단순히 잊혀지거나 기억 속에 묻혀버리고 만다. 문제는 해결된 것이 아니라 비활성화된 기억으로 깊이 묻혔다가, 다시 동질의 상황에 처하게 되면 의식 속에서 다시 되살아나 마음과 감정을 붙들어 심리를 깊이 위축시키고 만다. 습관화된 문제 회피의식은 이러한 경로를 통해 심리, 태도 및 행동에 고착되는 것이다.

 


그와 같은 문제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에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나의 문제를 맡겨야 한다. 나의 생각을 멈추고 하나님의 영적인 권능이 그러한 두려움을 물리쳐주시도록 간구하는 것, 그것이 두려움에 대하여 내려놓는 것이다.

 


또 하나의 예로서, "나의 사랑"을 내려놓아야 한다. 여기서 "나의 사랑"이란 "나의 힘에 의한 사랑"을 의미한다. 나의 힘에 의지하는 사랑은 이내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마음의 열정의 소진, 질투, 상처 및 낙심으로 인해 나의 힘에 의존하는 사랑의 능력은 오래도록 동행하며 인내하며 품는 사랑이 되지 못한다. 때때로 이러한 노력에 의한 사랑은 나의 부족한 자존감을 채우는 방향으로 진행되며 결국에는 상대방에게 유익을 주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는 결과를 낳고만다.

 


나의 노력에 의한 사랑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의 능력에 의탁하는 것, 다시 말해서 내 안에 주님의 사랑의 능력이 온전히 임하여 그 주님의 사랑의 능력으로 사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에 대한 내려놓음이다.

 


두려움과 사랑의 문제에서 살펴보았듯이, 인간은 자기 중심적인 죄의 습성상 스스로의 노력이나 외적인 수단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는 태도나 행동을 취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사실 그 문제를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해결하고자 할 때, 인간의 마음은 더욱 그 문제에 매이게 되며 실질적으로 이것은 "죄로 인한 부자유" 상태에 구속되게 되는 것이다.

 


이미 나의 모든 필요를 알고 계시며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신뢰가 자신의 느낌이나 경험으로 체험되지 않을지라도 믿음으로 주님께 나를 맡기며 나의 열등감 (자존감의 부족), 불안, 의심, 두려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능이 오직 주께 있음을 인정하고 그 문제의 해결을 주께 구하는 태도, 그것이 바로 내려놓음이다.

 


내려놓음의 문제는 또한 "우선순위의 원칙"을 통해서 명확하게 이해되어야 한다. 내려놓음은 믿는 자의 노력과 수고가 모두 헛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의 정성과 믿음의 순종을 통해 영광을 받기를 원하시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믿는 자의 노력과 수고 이전에 하나님의 주권을 우선적으로 용납하고 나의 마음과 동기의 가장 높은 자리를 주님께 맡겨드렸는가의 문제, 즉 우선 순위의 문제로 구체화 될 수 있는 것이다. 내려놓음은 나의 노력과 수고를 모두 헛되고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하려는 관점을 취하는 것이 아님을 유의해야 한다.

 

 

2) "더 내려놓음"의 의미

 


이용규 선교사님께서 '더 내려놓음'을 통해서 나누고 계시는 '자기의'와 '자기애'의 문제를 신학적으로 잠시 짚어보고자 한다. 참고서적은 열린교회 담임목사이신 김남준 목사님의 거룩한 신학 시리즈 1의 〔자기 깨어짐〕(생명의 말씀사, 2006) 이다.


 

구원을 통해 거듭난 신앙인은 비록 죄의 종노릇 하였던 신분으로부터는 자유롭게 되었으나 여전히 죄의 본성이 남아있는 존재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옛 사람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욕심이 육신의 존재성을 통해서 남아있는 존재이다.) 이러한 "옛 본성"은 구체적으로 "자기의"와 "자기애"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거듭난 자에게 성령께서 이루시는 거룩한 성품과 갈등과 투쟁, 다시 말해서 내적인 전투 및 갈등 상황을 일으키는 가장 뿌리깊은 원인이다.


 

(1) 자기애

 


자기애는 한 마디로 "죄에 대한 사랑" (자기깨어짐, 35p.)이다. 자기의 욕심을 소중히 보호하고 사랑하고 그것에서 만족을 구하는 죄로 인한 경향성이다. 그 소중한 욕심을 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그 욕심과 배치가 되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원칙적인 차원에서부터) 용납할 수 없게 된다. ‘죄와의 타협’은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2) 자기의 (자기깨어짐, 88p.~90p.)


 

자기의는 자신을 의롭다고 믿는 정신이다. '자신을 의롭다고 믿는 정신' (self-righteous spirit)은 마땅히 생각해야 할 그 이상으로 자신을 높게 생각하는 경향성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한 가치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보호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고, 이로 인해 열등감으로부터는 자기보호, 교만과 자신감 고양을 향한 (이기적 차원의) 자아실현에 몰두하게 된다.


 

'자기의'라는 죄의 경향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죄를 가볍게 여긴다. 자기 자신을 마땅한 분량보다 높이는 사람은 그 만큼 죄를 가볍게 여긴다. 신자의 경우에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총체적인 고백으로는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자신의 내면과 실제의 삶 속에서 역사하는 죄는 인식하지 못한다. 이는 영적인 어두움 가운데 죄에 대해 무감각해진 결과로 비롯된 것이다.


 

둘째, 자신을 합리화한다. 신앙인의 경우에 자신이 그리스도의 구원을 필요로 하는 죄인이기는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것과 같이 철저히 부패하고 무능한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판단과 생각을 따라 적당한 합리화를 허용하는 신앙생활을 선택하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3) "더 내려놓음"의 신학적 의미 - 자기 깨어짐 (De Paenitentia, 24p.~25p.)


 

김남준 목사님게서 소개하시는 자기 깨어짐에서 '자기'는 신앙인 안에 남아 있는 '자기의'와 '자기애'와 같은 죄된 옛 본성을 일컫는 것이고, '깨어짐'은 '생명이나 기능, 혹은 작용을 잃어버리도록 파괴되는 것'을 의미한다.


 

회개가 죄에 대하여 죽어가고 의에 대해서 살아나는 과정이라면, 자기 깨어짐은 바로 죄에 대한 죽음의 실행 과정이다. "더 내려놓음"은 이와 같이 "죄의 깨어짐의 실천"을 의미하는 것이다.


 

"내려놓음"은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태도를 방해하는 나의 주권성을 내려놓는 것이다. 또한 ‘내려놓음’은 바로 나의 주인됨을 사랑하고 합리화하려는 '자기의'와 '자기애'의 죄된 본성을 깨뜨리기 위한 실천의 시작인 것이며 회개의 시작이다.


 

그러나 내려놓음의 의미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어도 실제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은 그리 쉬운 과제가 아니다. 이것 또한 죄로 인한 도전을 넘어서야 하는 것인데, 내려놓음의 실패의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막연한 두려움, 둘째,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의 상함 또는 상처이다.


 

 

2. 막연한 두려움

 

 

1) 막연한 패배의식: 내려놓음 이후의 상황에 대한 두려움


 

내려놓음의 결단은 우리가 기도를 시작함에 있어 주변의 상황과 현실에 대한 육신의 눈을 닫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 자신만의 고요한 순간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그러한 선택은 이제까지 육신의 눈에 의지하여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해왔던 습관을 포기시키는 것이므로 익숙함으로부터 멀어지는 막연한 두려움이 따르기 쉽다. 눈을 감으면 주변의 상황에 대하여 인식할 수 없으므로 어떠한 위험이 존재하는 지 분별하지도 못한다. 그러한 잠재적 위험에 대하여 직접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들어감에 따라 이로 인해 두려움이 수반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막연한 두려움에 붙들려 있으면 결코 내려놓음의 결단을 할 수 없다. (내려놓음을 “포기”하는 것은 차라리 안심이 되지만, 그러한 상태는 여전히 두려움에 붙들려 있는 것이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단절을 극복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두려움에 붙들린 자가 내려놓음에 실패하게 되는 두 가지 오해가 있다.


 

첫째, 눈을 감았을 때 굳이 움직이지 않으면 쓸데없는 위험에 노출될 위험도 없고, 익숙하지 않은 상태 자체는 문제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성급한 마음으로 인해 무엇인가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불안하고 두려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둘째, 내려놓지 않는 자는 느낄 수 없지만, 이미 우리 안의 아버지의 영, 곧 성령님은 바로 그 내려놓음의 순간을 가장 소망하고 계시며, 한계가 있는 육신의 눈 대신에 우리의 영적인 눈이 되어주시기를 원하신 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가만히 있어 주가 주 되심을 바라보라. 주가 주 되심을 진정으로 인정하라.


 

진정 아버지께서 나의 주가 되셔서 나의 눈이 되어주시면, 그 때부터 행동을 시작하면 된다. 그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길을 보여주실 것이다. 서두를 필요가 없는데, 성급한 마음이 앞서면 결코 내려놓음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낼 수 없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3:5~6)

  

 

2) Self-Image가 부정적: 스스로에게 익숙했던 기존의 자신의 모습이 변화되는 것이 싫다.

 

 

자존감, 셀프 이미지 (Self-Image)라는 것이 있다. 이것들은 모두 나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서 가지는 긍정적 또는 부정적 감정과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규정하고 한계를 정하고 있는 생각과 관련이 있다.

 


셀프 이미지가 부정적인 경우, 익숙하지 않은 부담감이 따르는 '변화' 또는 '도전적 상황'에 대해서 자신이 대처해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기 힘들다. 변화를 회피하고 스스로에 대한 보호의식이 강하며 이러한 의식은 때때로 (스스로의 보호를 위해) 외부에 대한 공격적 성향으로도 표출된다. 그러한 보호의식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다면 더더욱 자기통제권에 대한 집착이 강할 수 밖에 없다.


 

이와 같은 부정적 셀프 이미지로 인해서 야기되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 상실의 위험으로 인한 두려움이 발생한다. (두려움)



둘째, 기존의 자신의 익숙한 모습과 상황에 안주하고 만다. 변화로 인한 두려움을 택하기 보다는 현재의 모습 속에서 안주하는 선택이 위험이 적기 때문에 이에 만족할 수 있으므로 더 이상 문제될 것이 없다고 결론짓는다. 또는 자기와 비슷한 동류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그룹 속에서 자기 위안과 합리화를 구한다. (자기연민에의 구속, 자기 중심적 안주와 만족)


 

 

2.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의 상함 (상처): 하나님의 주권을 용납하고 싶지 않다.

 

 

1) 하나님에 대한 불만과 실망이 있다


 

신앙인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신앙생활과 경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과의 인격적 단절을 깊이 경험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한 가지 주된 이유는 그러한 오랫동안의 신앙생활 가운데에 부지불식간에 내면에 축적된 하나님에 대한 불만과 실망감이다.


 

하나님에 대한 불만을 갖게되는 것에는 그 마음가짐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이제까지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고 허락하신 기회들과 선물들에 대해서는 감사할 줄을 잊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삶에 대하여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에 바로 지금 자신이 붙들고 있는 사소한 일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하나님에게 실망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인간의 생각과 지혜로는 결코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용납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사소한 것 한 가지를 이루어주지 않으시는 하나님께는 더 높고 귀한 뜻이 있을 수 있다.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지혜의 한계와 무지로 인해 마음이 닫혀버리는 것이다. 단지 내가 알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항상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로 인한 귀한 뜻은 영원히 어느 순간에도 나를 떠나지 않는다.

 

 

2)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기대감과 신뢰도가 낮고, 더 이상 감동이 없다 - 믿음과 신뢰 회복의 문제

 


신앙의 열정은 어느 새 식어버리고 뜨거운 감동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을 때, 이미 알지도 못하는 순간에 추락해버린 자신의 신앙을 어떻게 추수려서 건져올릴 수 있는 지 고민하게 될 때가 있다.


 

시간에 무작정 맡기자니 초조해지고, 해결방법을 고민하자니 이미 침전된 마음에는 열성적인 동기부여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식어버린 신앙의 열정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오직 기도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묵상하고 말씀 속에 잠기며 내 안의 성령의 음성에 마음을 귀울이는 것만이 그 신앙을 구출해 낼 수 있다.


 

이미 식어버린 신앙, 그것은 나만의 주관적인 감정과 행위에 의지해온 신앙, 자기 만족과 안이함 속에서 추구해온 신앙이 기름이 고갈되어 심지가 말라가고 있는 등잔과 다름이 없다. 그러한 신앙을 위한 응급처치는 오직 성령의 은혜이다. 그리고 먼저 내려놓지 않는 신앙은 성령의 은혜가 차지할 자리를 온전하게 내어드리지 못하는 신앙인 것이다. 내려놓음의 실패의 결과이다.


 

문제는 이렇게 침전된 신앙이 성령의 은혜보다는 다른 무엇인가 새로운 계기나 경험 (선교, 기도원, 수련회 등등) 을 의지해서 '신속한 해결책'에 골몰하기 쉬운 경향이 있다. 이 시점부터 사실, 자신의 신앙의 진정한 문제는 덮여지고 예전의 감동과 경험을 다시 체험하고 이에 의지하고 싶어하게 된다.


 

그러나 항상 잊기 쉬운 진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이요, 진리요, 그리고 길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신앙 뿐만 아니라 인생이 안겨다 주는 모든 문제와 도전과제를 마주하여 ‘신속한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헛되이 길을 돌아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해야 (두드리고 찾아야) 한다.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 앞에 무릎을 꿇고 나의 전심과 속사람을 다 드려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채우심이 있다.

 

 

 

3. 결론 - ‘나’라는 무거운 짐 (또는 족쇄) 으로부터의 자유

 


지나간 과거는 나에게 물리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지만, 나의 경험과 감정, 생각 속에서 언제든지 다시 활성화되어 눈 앞의 현실과 장래에 관한 인식과 태도에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난 날의 해결되지 못한 문제는 자신의 연약함과 불안, 두려움을 들추어 내어 생각, 심리 그리고 감정을 위축시키고 스스로에 대한 불만족과 자괴감 등의 부정적 산물을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나는 “지난 날의 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자유는 새롭게 된 생명이 누리는 본성이다. 기쁨과 평안, 그리고 환희로 충만하여 뛰노는 생명의 생명됨이 바로 자유이다. 새롭게 된 생명은 성령의 은혜의 부으심을 받아, 그 은혜의 능력있는 치유와 회복, 새 소망이 넘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마음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나의 길’을 내려놓고, 오직 참된 길이요, 진리이며 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자는 새 생명과 자유라는 하늘의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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