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9. 18:22

[말씀의 시내에 뿌리내린 인생] 한 홍 목사 (시 1:1~6)

[말씀의 시내에 뿌리내린 인생] 한 홍 목사 (시 1:1~6)



말씀에 대한 태도가 인생을 결정짓는다.


‘복’의 의미

- 히브리어 ‘아스레이’: 더 이상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행복

- 헬라어 ‘마카리오스’: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다

- 두 의미가 일맥상통. 최고의 행복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 사람에게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자녀는 부모로부터, 사랑하는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한다. 이러한 욕구의 기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을 하지 말라. 함께 하는 사람들을 분별하라. 영향을 받기 때문에. 

- 악인들의 꾀: 악인의 생각과 뜻을 따른다.

- 죄인들의 길: 죄인의 길은 방향과 목적없이 세상을 따라, 악한 삶의 양식에 젖어드는 것

- 오만한 자들의 자리: 악한 자들의 보스가 된다. 교만하여 공개적으로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산다.


복 있는 사람 (v.악인들, 죄인들, 오만한 자들)

- 하나님 안에서 외로워져야 한다. 말씀 속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

- 영성의 바탕이 setting된다.

- 말씀을 즐거워하라. 

- 영성이 자라면서 말씀은 날마다 새롭게 깨어나게 한다. 

- 말씀으로 사랑과 능력을 공급받는다.


묵상: 라틴어 ‘메디시어’: ‘약’이라는 의미. meditation

- 말씀은 묵상을 통해서 내면의 영혼에 녹여서 말과 행동으로 베어나오게 해야 한다.

- 묵상은 히브리어 ‘짐승의 울부짖음’: 이 세상의 고통과 혼동과 악함 가운데에서 영혼의 아픔을 하나님께 쏟아내고 부르짖어야, 말씀을 통해서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다.


성경에서의 ‘나무’, 그 특별한 의미

- ‘심기운 나무’: transplanted tree라는 번역이 정확. 누군가 심은 나무다.

- ‘시냇가의 물’: 성령, 말씀. 

-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의 뿌리가 세상적인 가치에 박혀있던 것을 뽑아내어, 생수의 시냇가에 옮겨 심은 것. 뿌리로 성령의 은혜를 뽑아 올려라.

- 말이 아니라, 능력에 있다. Season(시즌)이 올 때, 열매를 맺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건강한 나무, 복 있는 사람.

- 열매: 인격의 변화 (화평 등); 사람(그 사람을 통해서 사람이 변화되고 예수님을 만난다.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

-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 항상 생명력이 있고, 활기가 있다. 미래를 향한 소망과 비전이 있다. 미래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결코 망하지 않는 희망이 있다. 

-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요셉의 예. 그 인생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감옥에 갇히고 고난을 당했던 요셉의 삶에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고 있었다.


악인

- 눈으로 보기에는 거대하고 커 보이지만, 하나님의 손짓으로 허무하게 붕괴되어 버린다. 최후까지 강한 악인은 없다. 

-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그것은 착각이었다.


:6 ’인정한다’: For the Lord watches over the way of the righteous 하나님이 파수를 봐주시고, 지켜주신다. 히브리어 ‘인정하다’ (야다): 부모감의 intimate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의미한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친밀하게 지켜주신다는 뜻. 


떼거지 문화(악인들, 죄인들, 오만한 자들)는 (세가 있어서) 겉으로 보기에는 든든해 보여도 (그래서 자기 자신들을 믿을만하다고 여겨도), 오직 의인의 삶만이 견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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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23. 01:13

눈물 메마른 시대에 우는 사람들 (나들목 교회/ 김형국 목사, Nov. 23, 2008)

 눈물 메마른 시대에 우는 사람들 (느헤미야 1장)


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1. 슬피우는 느헤미야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제국의 아닥사스다왕의 술관원이었다. 술관원은 황제의 경호와 안전에 대한 최종적 책임을 맡은 자로서 옥쇄 관리, 왕이 먹는 음식의 독을 확인하는 등의 황제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제국에서 정치적으로 황제다음으로, 제 2인자에 해당하는 지위이다.

그러한 정치적 지위는 술관원으로서의 생명의 위험, 정략과 술수가 난무하는 치열한 정치적 상황을 피할 수 없는 자리이고, 바로 이러한 상황에 처해있는 정치적 권력자가 140년전 자기 민족이 떠난 고향의 성이 무너진 것을 이유로 울고 있다. 


2. 느헤미야가 울고 있는 이유: 이스라엘 민족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 하나님께서 받으셨야 했던 불명예에 대한 통분

1) 느헤미야의 믿음과 기대: 하나님의 시각을 가진 자

1:2에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형편을 묻는다. 이는 '눈에 보이는 역사' 속에는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서 무관심한 듯 보인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중에"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고 있었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예루살렘의 형편을 물었던 것이다.

2) 느헤미야의 통분

스룹바벨과 에스라에 이은 이스라엘 민족의 귀환을 통해 이루어던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 재건이 중단되고 말았고, 이스라엘 백성은 능욕(업신여김, disgrace)를 받게되고 있는 상황을 알게된 느헤미야.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영광을 이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민족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성벽은 무너지고, 이스라엘 백성은 능욕을 당하며 결국, 하나님이 당하게 되시는 불명예에 대해서 통분하는 심정을 가지게 되었다.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고 해서 통문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느헤미야의 눈물은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당하시는 불명에 대한 통분에서 흘리게 된 눈물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문제에 매여 내가 아닌 자를 위해 눈물을 흘려줄 여지가 없으나, 여기에 하나님을 위해 눈물 흘리는 한 사람이 느헤미야이다.


3. 어떻게 하면 이 세대에 눈물을 흘리는 자가 될 수 있는가

1) 주어진 환경을 수용한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 있다면" 이라는 가정법 상황에 대한 바램을 가지고 산다. 그와 같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욕심을 가지게 되면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며 상대적 박탈감을 깊어만 갈 뿐이다.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을 '나의 것'으로 수용하고 책임감있게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느헤미야도 마찬가지였고, 요셉도 또한 주어진 상황들을 수용했던 예들이 있다.

한 목사님의 사모님은 미국인이었는데, 과거에 수원에서 사역을 목사님과 함께 섬기고 계셨다. 한국보다는 문명의 혜택을 더 받은 미국 사회를 떠나오셨지만, 수원에서의 섬김을 성실하게 잘 감당하셨다. 이 사모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네가 심기운 곳에서 꽃피워라"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수용할 수 있는 태도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주어진 상황을 해석할 때 얻어질 수 있다. 어떠한 상황이든지, 나의 고통과 실수까지도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2)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한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는 마음은 이전에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기억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역사를 기대하는 자를 사용하신다.

이러한 기대가 있다면, 작은 일부터, 자기몫을 찾아서 일하기 시작해야 한다. 눈물과 땀을 흘리며 움직이고 행하자는 자에게 변화가 있다. 행하지 않는 자에게는 변화가 없다.

작은몫부터 시작하여 행하라. 큰 일을 찾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땀만으로는 되지 않고, 눈물을 흘려야 한다.

눈물을 흘리는 자는 영적깊이가 있는 자이다. 깊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과 눈물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나들목 교회를 향하여, 한국교회를 향하여 눈물을 흘리는 자가 되라.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는 이 세대의 느헤미야로 삼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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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22. 19:15

김지철 목사 고린도후서 강해 (9) ~ (11)

 

6 Thu. 고린도후서 강해 (9)

 

 

고린도후서 4

 

1 그러므로 우리가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중에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되신 것과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바울이 씨름하는 가지 문제: 하나님과의 관계, 받은 사명을 증거하면서, 고린도교회와의 관계를 운용하는 . 인간관계는 항상 유동적이다. 좋을 때가 있고, 좋지 않을 때가 있다. 부부관계, 친구관계도 마찬가지다. 삶을 인간관계로만 규정하고자 하면, 삶의 기초가 제대로 서지 않는다. 다른 사람 뿐만 아니라, 자신도 유동적이며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 사도 바울은 우선적으로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워가는 문제에 집중.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실존을 바로 세운다. 사람들과의 관계성이 새롭게 열린다. 사랑하고, 담대하며, 주의하며 사람들을 만난다.

하나님께 받은 것이 무엇인가를 항상 마음에 품고 산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르심과 맡겨주신 직분과 사명을 인식. 사명을 깨닫게 되면, 인생을 포기하지 않게 된다. 생명을 받은 이유, 사는 이유, 생의 목표가 있으면 인생이 다이나믹하게 변화하게 된다. 고난을 극복할 있게 된다.

 

(4:1) ’낙심하지 아니한다’: 속에는 낙심하는 마음이 생겨지고 있는 . ‘기뻐하겠다라는 결심 이면에 기쁨을 상실하고 있는 상황이 발생 . 바울의 결단이 내포되어 있다. 직분과 사명을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것은 은혜(mercy). 사명과 직분을 감당하다가 고난을 받고, 낙심이 임하게 되더라도 하나님의 긍휼을 기억하며 좌절하지 않겠다는 결단.

(4:2) 사람들의 비난: 과거의 부끄러움(바울이 과거에 제자들을 핍박),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욕망과 자신만의 생각을 섞어서 혼잡하게 한다. 이에 대한 바울의 항변. 이러한 사람들의 오해와 비난에 대하여 아픈 마음이 있었으나 좌절하지 않았다.

(4:3) ‘망하는 자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다. 구원받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 복음의 효력: 구원의 효력 + 심판의 효력 - 사람들이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꺼려한다. 소크라테스, 공자, 석가는 사람들이 꺼려하지 않는다. 복음은 결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도전을 받게 된다. 수용하던지 거부해야 하는 결단을 요구받는다. 실존 전체를 복음에 투여하게 밖에 없다.

(4:4) ‘세상의 ’: 사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굳게 닫혀있게 한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적으로 임재하실 때에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광, 형상이자 본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묵상으로 깨닫게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으로 다가오셨을 . 성령의 역사에 감동을 받게 . 하나님의 번의 창조: ( 1) + 개별적인 성도들에게 창조의 역사를 부어주신다 + 하늘과 땅을 통한 온전한 역사 ( 21)

(4:6) 번째의 창조: 빛의 창조의 역사와 같이, 우리의 마음이 어둠 속에 잠겨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볼 ,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 지혜의 빛이 마음에 하나님께서 비춰주셨다. 창조의 빛이 임하시는 .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오늘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는 삶이 하나님의 창조의 삶이다. 

(4:5) 예수님만을 전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땅에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종의 모습으로 겸손하게 섬겼던 바울. 직분과 사명을 받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살리며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 그러한 사명을 위해 믿는 자의 삶이 쓰임을 받는 .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모습이다.

 

 

7 Fri. 고린도후서 강해 (10)

 

 

고린도후서 4

 

7 우리가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13 기록한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14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인생의 고난과 슬픔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는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박해를 당하며, 거꾸러 뜨림을 당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다시 일어설 힘으로 일어나게 것이다. ‘오뚜기 다시 일어설 있는 이유는 무게 중심이 가장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중심의 위치에 따라 일어설 수도 있고, 무너질 수도 있다. 인생에서 무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 나의 마음의 중심을 예수의 생명에 두고 있는가? 죽음과 고난, 고통, 낙심과 실수가 넘어 뜨리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이 다시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 있다.

 

신앙이란, 변증법적 이해다. 신앙이란, 역설적인 삶이다.

i.      예수님께서도 마음이 깊이 아프고 당혹스러울 때가 있었다. 우겨쌈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거꾸러 뜨림을 당하면서 심연의 구렁텅이에 빠질 때가 있었지만, 굴하지 않을 있었던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이 내면에 임재했기 때문이다.

ii.     심장의 생명력이 온전하면 연약한 부분은 극복될 있다.

iii.   살아있는 복음이 생명의 중심에 있다.

 

질그릇’: 영원한 세계와 현재 실존의 연약함, 그러나 실존은 영원한 생명과 연결되어 있다.

i.      속성이 흙으로 만든 . 그릇의 형태로 되어 있는데, ‘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인생 속의 무능함을 상징. 스쳐도 아픈 존재. ‘감기같은 사소한 질병으로도 고통을 크게 받는다.

ii.     그러나 질그릇 안에 자랑스러운 예수가 계신다. 예수가 계시지 않으면, 질그릇을 포장하기 시작한다. 금도금 또는 은도금을 함으로써, 금으로 위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기가 오면 약한 질그릇은 깨어지고 만다. 깨어지면서,  안에 숨겨진 탐욕, 정욕, 이기심, 모든 부끄러운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예수 믿는 자들은 질그릇임을 인정. 외모로 정체성을 삼지 않고, 소유한 돈으로 정체성을 삼지 않으며, 세상에서 나가는 직분으로 정체성을 삼지 않는다. 세상에서 되거나, 되지 않거나, 정체성의 근거를 내면에 존재하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에 둔다.

 

인간의 자부심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i.      외모? 얼짱과 몸짱? 자부심이 있기는 있다. 외양은 가꾸는 것에 있기는 있으나,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소유하고 있는 돈과 지식, 인생의 경륜에도 자부심을 가질 있다. 그러나 진정한 자부심은 어디에? 나가던 사람, 돈과 인기에 자부심의 근거를 두면, 유한한 속성을 가진 그러한 근거들이 사라지는 순간에, 삶이 무의미 해지고, 죽음을 향대 달려갈 있는 .

ii.     바울도 외적인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자부심은 내면의 보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생명에 있었다. 질그릇이나 내면에 금이 존재.

iii.   외적인 자부심으로부터 내면의 자부심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도 성숙하지 못한다. 성숙이라는 것은 내면의 세계에 풍성함이 채워져야 한다. 내면의 예수 그리스도가 자부심이요 정체성이 되기 때문에, 세상을 이길 있었다. 지식을 지식으로, 돈을 돈으로, 권력을 권력으로 대항하면 이길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승리의 결정 요인.

iv.   (7) 능력이 하나님께 있기에, 질그릇의 자부심이 하나님께 있어야.

v.     (8-9) 바울의 생애.

vi.   (10) 예수님과 같이 고난에 동참.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다. 죽음을 경험하면서 생명을 경험한다. 바울의 신앙의 변증법이다. 무너지는 해도 무너지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하나님께서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시는 ,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 길이 없는 듯해도 하나님의 평안으로 힘을 얻어 탈출할 있는 . 그의 신앙의 변증법으로 인하여 담대해질 있었다. 이겨낼 있는 힘을 얻게 했다. ‘질그릇이라는 존재성을 인정했기에 겸손할 있었다.

vii.  (11-12) ‘받은 고난이 여러분을 살리는 축복이 것이다’. 그런 고난을 경험한 사람을 통해 공동체가 회복된다. 축복받은 가정에는 반드시 기도하고 헌신하는 분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어머니. 누군가의 아픔과 고난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

viii.(14-15)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비결. 감사할 아는 . 10, 20년이 넘게 신앙생활을 해도, 감사할 모르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없다. 질그릇 안에 담겨진 귀한 보화를 감사하라. 자부심과 정체성의 근거다.

 

 

 

8 Sat. 고린도후서 강해 (11)

 

 

고린도후서 4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4장에서 낙심하지 아니한다라는 말을 반복. 4:1, 8, 16.

 

낙심: 정신적인 고난.

i.      이사야 53: 앞으로 오실 메시아는 연약한 고난의 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의 슬픔과 절망의 질고를 대신 짊어지시기 위하여 당신이 슬퍼하시고 아파하셨다.  인간의 죄악의 질고를 대신 짊어지시기 위하여 인간의 모든 죄악으로 인한 고난을 대신 짊어지셨다.

ii.     예수님의 생애: (1) 병든 자를 궁휼히 여기시고, 분들을 생각하고, 만나고, 고쳐주셨다. (2) 죄에 억눌려 있었던 사람들을 위하여, 정죄의 능력을 파하시고, 죄에 대한 용서의 은총을 내려주셨다. (3)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절망 속에 빠져서 꿈과 비전을 상실했을 ,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 여성들,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자긍심과 자존심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찾아오셔서, ‘너는 하나님의 자녀’, ‘소중한 존재’, ‘엑스트라가 아니라,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셔서 인간에게 낙심을 쇄파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자긍심과 자존심을 회복시켜주셨다. 인간의 연약함과 열등감, 마음의 부스러기, 찌꺼기 등을 속아내어주셨다. 자존감의 훼손은 문제. 자존감의 연원은 내면으로부터 말미암는다.

 

낙심하지 아니한다’: 현장의 상태 뿐만 아니라, 결심/결단을 의미한다.

i.      문제 상황과 환난 속에 들어와 있으나, 환경과 여건을 인식하며서도 그것들을 뛰어넘을 있는 새로운 힘이 내면에 있다.

ii.     결단의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 질그릇 같은 존재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역사가 임하고 있다. 겉사람은 낡아지만, 속사람은 새로워 진다.

iii.   낡아지는 겉사람은 생명의 종말을 암시하지만, 새로워 지는 속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 정신, 믿음은 계속 새로워진다.

iv.   바울이 당한 고난과 낙심, 심연의 구렁텅이에 빠져도 낙심하지 않을 있는 이유. 정신 세계는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기독교: 자유, 진리, 새로움, 생명, 영원한 등의 귀한 가치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붙들고 있다.

 

새로움’, ‘ 대한 소망이 있다.

i.      브랜드, 물건 등에 대해서도 있듯이.

ii.     전도서 1: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아래에서는 새로운 것이 없나니’ (일장춘몽). 아래는 것이 없으나, 위에는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삶이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순간 새로워지는 순간이다. ‘사랑 있어야 새로워진다.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는 가정, 교회, 국가, 자녀, 이웃이 있다. 사랑이 우리를 새롭게 하는데, 영원한 사랑이 존재한다.

iii.   (17) 영원한 영광의 길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셨다. ‘잠깐이요, 그리고 가벼운 ’: 임시적이고 감당할 만한 것이다.

iv.   (18) 주목해서 보려고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 환경과 요동치는 속에서, 그것들을 넘어서서 영원한 생명에 다가설 있다.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보이지 않는 것은 믿음으로 붙드는 .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온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으로부터. 하나님의 약속을 인생의 축복과 진리로 받게 되는 .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약속의 복을 주신다’. 환경을 뛰어넘는 시각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의 임재를 깨달으면서 인생의 새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시간과 공간, 사람들 모두 새롭다. 오뚜기 같은 신앙.

v.     낙심하지 아니한다’: 우리의 결단이 되어야 한다. 육체의 질병, 암이 나쁜 이유는 육체의 질서를 무시하기 때문. 치매: ‘내가 누구인지 대한 기억을 상실. 정신적인 질병은 낙심하고 절망하는 . 키에르케고르, ‘죽음에 이르는 질병이 바로 절망’.

vi.   바울: 절망 속에 들어가 있으나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는 결단.

vii.  우리의 삶이 흔들리고, 낙심할 밖에 없는 상황들이 에워싸고 있으나,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서 계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다시 일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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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10. 16:18

김지철 목사 고린도후서 강해 (5) ~ (8)

1 Sat. 고린도후서 강해 (5(고린도후서 2:5 - 3:18)

 

고린도후서 2

 

5 근심하게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모두를 근심하게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6 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받는 것이 마땅하도다

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8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9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10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것이니

11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사도 바울을 근심케한 고린도교회 교인들: 분열하고, 성적으로 타락, 바울을 비난하고 조롱. ‘올바른 믿음의 자리에 서라’. 하나님 앞에서 무너지는 성도들, 하나님을 사랑하다가 세상을 사랑하게 성도들, 사랑하는 마음이 미움과 분노로 바뀐 성도들: 하나님을 적대하는 사탄의 전략. 사탄의 계략에 넘어가지 말라.

 

교회 공동체에서의 징계와 회개한 자에 대한 용서

(11) 하나님의 뜻을 적대하는 존재, 사탄. 사탄에게 속지 말라. 분별력이 필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또한 분별력을 의미. 사람이 주인이 아니고, 예수님이 삶의 주인이다. 공동체의 주인이 예수님이다.

 

사탄: 교활한 사기꾼.

i.      감히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교묘. ‘사탄’: 적대자, 고발하는 , 거짓 증언자. 인간을 자신의 소유물로 전락시키려고 . 부모에게 자녀가, 남편에게 아내, 아내에게 남편이 소유물이 아니다. 소유물로 삼으면, ‘Manipulation동기가 발생. 최초의 타락 때에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켜서 속였다.

ii.     하나님을 믿는 것과 사탄에게 속는 : 사탄에게 속으면, 두려움과 불안, 자유의 상실, 사탄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방해하는 세력.

iii.   사탄의 일은 속이는 일로 시작된다. 사탄은 인간에게 공갈, 협박하며 두렵게 한다. 후회와 실망, 낙담하게 한다. 자신의 종으로 삼기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종이 아니라, 아들과 딸로 삼고자 하는 . 하나님의 자녀 v. 사탄의 노예.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유와 기쁨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iv.   징계, 교회 공동체로부터의 축출 조치를 받게 되어 회개한 자에 대하여: 17: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경고하고, 회개하면 용서하라. (1) 징계: 고후2:6 (2) 사랑과 용서: 고후2:7-8. 징계로 인하여 낙담한 자에게 사탄이 접근해온다.

v.     용서: 쉽지 않다. 무조건적으로 면죄부를 주는 아니다. 잘못한 죄를 정당화 하는 것도 아니다. 죄지은 자가 회개를 하기 이전에 먼저 용서가 선행되어야 한다. 과거의 사건이 끊임없이 내면에서 미움과 분노를 생산하게 된다. 과거의 얾매임의 문제가 지속된다. 다만, 공동체의 문제에 관하여는 징계하라. 회개하면 회복할 있도록 용서하고 공동체로 초청하라.

vi.   (9-10) 공동체 안에서의 용서. 사탄이 기뻐하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위하여. 징계와 용서할 때의 구분과 분별이 어려우나, 선택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3 Mon. 고린도후서 강해 (6)

 

 

고린도후서 2

 

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 내가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일을 감당하리요

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바울이 3 전도 여행 . 드로아: 터키 지방(갈라디아) 마케도니아 반도에 위치한 항구 도시.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환상을 주시기를, 마케도니아로 복음 전파. 아시아 전도 여행 계획을 취소하게 되었다. 드로아에서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 있었다. 그러나 가지 근심이 있었다. (1) 고린도교회에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던 : 고린도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바르게 있는가. (2) 아들과 같은 동역자인 디도를 통해 편지를 보냈다. 편지 전달 , 디도는 드로아로 돌아와서 고린도교회에 관한 소식을 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디도가 드로아에 돌아오지 않아서, 그의 사정에 관한 염려가 생겼다. 이에 바울이 마게도냐로 가게 되었다.

 

(12-13) 드로아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마게도냐로 가게 장면.

 

바울의 감사

i.      (14) 영문으로는 내가 하나님께 감사한다 문장이 시작된다. 나의 인생의 스토리가 하나님께 대한 감사 속에서 만들어 지고, 재이해되는 것이 나의 신앙이다. 삼위일체, 교회론 등에 대한 교리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서 멈쳐서는 안된다. 그러면 바리새인. 자기 인생의 스토리를 하나님 중심적으로, 하나님과 함께 형성되지 않았다. 그들의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만 채워진 신앙이었다.

ii.     핵심은 감사. 바울이 경험했던 고난과 멸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의 순전함이 있었다. 감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속에서 감사가 끊어지면, 영혼이 메말라간다. 메마르기 때문에 단풍이 쭈그러들고, 나무에 붙들어 있을만한 힘이 없다. 감사가 없으면 영혼의 즐거움이 사라진다.

iii.   감사가 있는 사람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나타난다. 성품, 인격의 체취가 있다. 사람들에게 친밀감을 주는 인격과 성품의 체취를 내는 사람이 있다.

iv.   (15-16) ‘냄새’(fragrance), ’향기(aroma): 예수를 믿는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향기다. 나의 욕심과 정욕, 어리석음이 드러나게 되어 있으나, 그것은 덮여지고, 믿는 자에게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난다.

v.     (17) 말씀을 증거한다고 하나,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순전함’: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나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도록 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했다. 다음과 같은 가지 요건을 따라.

vi.   하나님께 받은 같이: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

vii.  하나님 앞에서’(고람데오): 사람들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viii.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

ix.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 사랑, 능력, 생명, 진리, 풍성함.. 모든 것들을 땅에, 가정으로부터, 직장으로부터 펼쳐나가는 신앙.

 

 

 

4 Tue. 고린도후서 강해 (7)

 

 

고린도후서 3

 

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필요가 있느냐

2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것이며 판에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 판에 것이라

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느니라

6 그가 또한 우리를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 영광되었던 것이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사도 바울은 자신을 적대하는 사람들과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 대하여

 

적대하는 사람들

i.      자기 자랑과 뽐냄, 자기 업적을 치장하고 있다고 비판.

ii.     야고보나 요한과 같은 사도들에게 추천서를 받지 못한 가짜 사도라고 비판. 고린도교회에 자기 자신에 디모데나 디도를 보낼 , 추천장을 보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추천장없이 고린도교회에 갔던 .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추천장 사도들에게 받을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직접 주셨다.

iii.   자신이 가르친 복음으로 고린도교회가 세워졌기에, 교회 성도들이, 살아있는 고린도교회가 바로 추천장이다. 말씀과 복음을 통하여 맺어진 관계가 기초. (1-2)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추천장이다.

iv.   ’, ‘편지’ (언어): 생각의 수단. ‘생각의 ’, ‘인격의 ’.  사람의 인격을 반영하는 : 언어의 선택, 언어가 무엇에 관한 메세지인가, 언어를 사용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언어 속에 사람의 인격의 전부가 담겨있다. 하나님께서 언어로 땅을 창조하셨다. 인간에게 가장 먼저 가르쳐주신 것도 언어.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 말씀이신 복음을 받아들이는 신앙/종교. 말을 문자로만 이해하느냐, 말이 담겨져 있는 살아있는 말의 의미와 영적인 뜻을 파악하느냐에 따라서, 글과 말을 이해할 , 의미를 통해서 살아날 있다.

 

구약과 신약의 대비

i.      (3) v. / 돌판 v. 육의 마음 : 유대인의 율법주의 비판. 구약의 십계명과 바울 자신의 서신을 비교. 영으로 , 마음 판에 것이 귀하다. 모세가 받은 십계명은 사라질 영광이나, 바울이 증거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영원한 영광이고 영광이다. 모세보다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 고린도교회 성도가 종말의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실 존재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바울도 귀하고,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귀하다.

ii.     (4-5)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확신. ‘만족’: 능력, 경쟁력(competence).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 축복에 관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iii.   (6) 구약의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 언약 v. 언약. 구약은 율법: 문자로 쓰여져서 고정된 . 언약은 성령으로 쓰여진 . 율법은 죄에 관한 규정과 정죄. 성령의 역사는 죄인됨을 깨닫게 , 죄의 고백과 회개, 하나님의 자녀됨이 회복되는 생명의 역사가 이루어져 사람을 세우는 것이다.

iv.   (7-8) 모세가 십계명을 받을 받았던 영광보다 영광.

v.     (9-11) 구약과 신약이 비교할 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넘치는 영광이다. 구약의 사람들보다 우리는 사랑을 받았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나타나신 하나님의 역사를 보라.

 

새벽이 밝아 떠오른 태양은 시간의 아름다운 달보다 빛이 뛰어나고 아름답다.

영광스러운 복음의 후예자로서 마음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소중히 여기며 세상을 향해 나가라.

 

 

 

5 Wed. 고린도후서 강해 (8)

 

 

고린도후서 3

 

12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13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얼굴에 같이 아니하노라

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수건이 벗겨지리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 우리가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서 주신 영이 우리 안에 내재할 얼마나 복된 존재가 되는 지를 전하고 있다.

 

자유

i.      (17) ‘’: 예수 그리스도. 인류 역사의 여정은 자유를 향한 것이었다. ‘자유’: 일반적으로 뜻대로 하는 . 넓은 의미의 자유: 내가 싫은 , 옳지 않은 , 부정적인 , 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자유의 시작. ‘억압’: 가난, 무지, 두려움과 공포. 확장된 차원의 자유는 공동체의 자유.

ii.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은 존재로서 억압을 싫어하고 자유를 소망한다. ‘억압 제한된 관계성을 낳고, 옳은 관계로 형성되지 못한다. Liberty v. Freedom: freedom 보편적인 의미의 자유, liberty 사회적 맥락에서 사용. ‘해방’: 이미지가 내표. ‘자유’: 개인적 자유, 공동체의 자유, 사회적 자유를 모두 포괄. 기독교적 자유는 해방과 자유를 내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적 세력의 억압, 죄의 노예로부터의 해방, 죽음의 공포와 위협으로부터의 해방의 의미도 포함. 미움으로부터, 분노로부터, 무절제로부터, 무지로부터의 해방. 인간의 전인적인 자유를 의미.

iii.   자유의 방향성: 이제는 생명으로, 지혜를 향하여, 진리와 의를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iv.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된 자유, 사랑, 기쁨, 지혜, 생명, , 절제, 온유, 모든 것들이 있다.

v.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선 땅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 공의와 평화를 이루어야 책임과 사명이 있는 . 불의, 악과 거짓, 비진리, 미움과 갈등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사명이 축복이다.

 

내가 자유자인가’: 모든 얽어매는 것으로부터. 사람의 시선과 조롱, 자기 연민, 사회적 맥락 속에서 부딪히게 되는 구조적인 요인으로부터.

i.      이런 상황 가운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 사명.

ii.     (12) 자유자에게는 소망이 있다. 궁극적 지향점인 하나님 나라를 향한 소망이 있기에, 담대함이 있게 된다. 소망이 없고 절망이 있으면 비겁하고 회피하게 되어 있다.

iii.   (13-14) 구약 시대의 모세가 십계명을 받아 시내산에서 내려왔을 , 그의 얼굴에는 영광의 빛이 있었으나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받은 영광은 영원한 .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지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안에 진리, 생명, 감사, 축복, 자유가 모두 존재한다.

iv.   (15-16)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면, 구약에 대한 이해의 한계가 극복되어 바른 깨달음을 얻게 된다. 바울이 자신의 과거의 부자유 상태와 정죄하는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

v.     (17-18) 자유의 결론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러므로 소망을 품고 담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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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7. 05:42

소망교회 새벽기도회 2014 Oct. 5th Week (고린도후서 1:15-2:4)

30 Thu. 고린도후서 강해(58)

 

 

고린도후서 1

 

15 내가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16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

17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

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말은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19 우리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고린도교회를 방문할 계획이 있었던 바울에게 발생한 곤란한 사정. 방문 계획의 취소를 이유로 바울을 비난하는 사람들. 바울은 자신이 함부로 약속을 남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는 양해를 구함.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i.      만남이 은혜다. 만남이 은혜가 되기 위해서는 연결 고리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연결 고리’. 그리스도 안에서 상대방을 존중하고 만나면, 자체가 은혜가 된다

ii.     (15-16) 바울의 이동계획: 에베소(터키, 갈라디아 지방) - 고린도교회 - 마게도냐, 빌립보 데살로니가 - 다시, 고린도교회로, 도움을 받아 -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을 전달. 그러나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음

iii.   (17) 경솔한 계획이 아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은혜 가운데에서 만날 있기를 소망했다.

iv.   (18) ‘미쁘다’: 신실하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따라 의미하는 .

 

아니오

i.      5:37 ‘ 아니라’: 나무 조각이 강에 떨어지면, 강을 따라 떠다니며 바다에 이를 밖에 없다. 반면에, 민물고기는 빠른 유속의 속에서도 자기 자리를 지킬 있다. 속에서 살고, 물과 함께 더불어 살며, 물을 따라 흘러갈 때도 있다. ‘ 아니라 결정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ii.     그래서 인생 사는 것이 어렵다. 막대기 나무조각처럼 그냥 흐름을 따라 사는 : 사람의 아니고, 치열하게 사는 삶도 아니며, 도전하는 삶도 아니다. 수없이 아니오라는 결정을 해야한다. 그러한 결정을 위해 필요한 것이 지혜와 분별력.

iii.   용기가 필요하다. 담대함도 필요. 사랑과 신뢰가 항상 갖춰져있으면 용이할 수도 있지만, 세상은 항상 그렇지 않다.

iv.   성품과 인격.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인격을 좇아야.

v.     (18-19)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yes).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no. 예수님의 아멘’() 하나님의 약속,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성취되고 완성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신실하신 것처럼, 예수님도 신실하며, 예수를 따르는 크리스찬도 신실해야 한다.

vi.   (20)  하나님의 약속과 예수 그리스도를 받을 , 아멘으로 받으라. ‘아멘’: ‘yes. 진실로’, ‘참으로’. 아멘으로 받는 것이 자신의 진실된 고백임을 인정하는 .

 

예수 그리스도를 아멘으로 받는 자에게 주신 . 성령

i.      (21) 기름을 부으셨다. 구약에서는 왕과 제사장, 선지자들에게 부어주셨던 . 그리스도는 메시아’, ‘기름부음을 받은 ’.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믿은 자도 기름부음을 받는 자가 되었다.

ii.     (22) ‘인치셨다’: ‘너는 것이다라는 도장. 하나님의 소유됨을 확인시키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셨다. 성령을 통해서 아바 아버지 고백할 있다.

 

 

 

31 Fri. 고린도후서 강해(59)

 

 

고린도후서 1 - 2

 

23 내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24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1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2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한다면 내가 근심하게 자밖에 나를 기쁘게 자가 누구냐

3 내가 이같이 것은 내가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너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