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23 01:13

눈물 메마른 시대에 우는 사람들 (나들목 교회/ 김형국 목사, Nov. 23, 2008)

 눈물 메마른 시대에 우는 사람들 (느헤미야 1장)


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1. 슬피우는 느헤미야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제국의 아닥사스다왕의 술관원이었다. 술관원은 황제의 경호와 안전에 대한 최종적 책임을 맡은 자로서 옥쇄 관리, 왕이 먹는 음식의 독을 확인하는 등의 황제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제국에서 정치적으로 황제다음으로, 제 2인자에 해당하는 지위이다.

그러한 정치적 지위는 술관원으로서의 생명의 위험, 정략과 술수가 난무하는 치열한 정치적 상황을 피할 수 없는 자리이고, 바로 이러한 상황에 처해있는 정치적 권력자가 140년전 자기 민족이 떠난 고향의 성이 무너진 것을 이유로 울고 있다. 


2. 느헤미야가 울고 있는 이유: 이스라엘 민족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 하나님께서 받으셨야 했던 불명예에 대한 통분

1) 느헤미야의 믿음과 기대: 하나님의 시각을 가진 자

1:2에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형편을 묻는다. 이는 '눈에 보이는 역사' 속에는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서 무관심한 듯 보인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중에"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고 있었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예루살렘의 형편을 물었던 것이다.

2) 느헤미야의 통분

스룹바벨과 에스라에 이은 이스라엘 민족의 귀환을 통해 이루어던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 재건이 중단되고 말았고, 이스라엘 백성은 능욕(업신여김, disgrace)를 받게되고 있는 상황을 알게된 느헤미야.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영광을 이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민족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성벽은 무너지고, 이스라엘 백성은 능욕을 당하며 결국, 하나님이 당하게 되시는 불명예에 대해서 통분하는 심정을 가지게 되었다.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고 해서 통문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느헤미야의 눈물은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당하시는 불명에 대한 통분에서 흘리게 된 눈물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문제에 매여 내가 아닌 자를 위해 눈물을 흘려줄 여지가 없으나, 여기에 하나님을 위해 눈물 흘리는 한 사람이 느헤미야이다.


3. 어떻게 하면 이 세대에 눈물을 흘리는 자가 될 수 있는가

1) 주어진 환경을 수용한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 있다면" 이라는 가정법 상황에 대한 바램을 가지고 산다. 그와 같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욕심을 가지게 되면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며 상대적 박탈감을 깊어만 갈 뿐이다.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을 '나의 것'으로 수용하고 책임감있게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느헤미야도 마찬가지였고, 요셉도 또한 주어진 상황들을 수용했던 예들이 있다.

한 목사님의 사모님은 미국인이었는데, 과거에 수원에서 사역을 목사님과 함께 섬기고 계셨다. 한국보다는 문명의 혜택을 더 받은 미국 사회를 떠나오셨지만, 수원에서의 섬김을 성실하게 잘 감당하셨다. 이 사모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네가 심기운 곳에서 꽃피워라"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수용할 수 있는 태도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주어진 상황을 해석할 때 얻어질 수 있다. 어떠한 상황이든지, 나의 고통과 실수까지도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2)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한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는 마음은 이전에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기억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역사를 기대하는 자를 사용하신다.

이러한 기대가 있다면, 작은 일부터, 자기몫을 찾아서 일하기 시작해야 한다. 눈물과 땀을 흘리며 움직이고 행하자는 자에게 변화가 있다. 행하지 않는 자에게는 변화가 없다.

작은몫부터 시작하여 행하라. 큰 일을 찾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땀만으로는 되지 않고, 눈물을 흘려야 한다.

눈물을 흘리는 자는 영적깊이가 있는 자이다. 깊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과 눈물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나들목 교회를 향하여, 한국교회를 향하여 눈물을 흘리는 자가 되라.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는 이 세대의 느헤미야로 삼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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