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17 17:03

기독교에 관한 소론(小論) (1) - 신(神), 인간(人間), 그리고 죄(罪)



I. 들어가면서


한국에는 주류 종교로서 기독교 외에, 불교와 천주교가 있다. 나는 기독교인이나, 다른 종교에 대하여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열린 마음’이란 다른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생각과 인격을 그 사람의 인격적, 존재적 가치로 인정하여 존중하며, 무엇보다도 그 사람의 생각과 신념을 경청하여 들을 수 있는 마음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나와는 다른 종교적 신념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존중하여 경청하며, 그 생각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태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개혁 교회’(Reformed Church)를 의미하는 한국 기독교(Protestant)에 관한 성경적 논제에 관하여 간결하게 생각을 정리해보는 글이다. 이 글은 누군가를 설득하고자 하는 글은 아니다. 기독교의 성경적 진리와 가치에 대하여 마음(관심)과 생각의 편린은 있으나, 그에 관한 혼동과 편견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성경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한다. 다만 소론(小論)의 단계에 해당하는 글로서, 차후 완결될 글로 향하는 중간단계의 성격이 강하며, 의문과 질문을 제시하며, 그것에 대한 답을 구하되, 때로는 그 답이 완결되지 않거나, 새로운 질의로 나아갈 수 있다.


부족하고 완결성이 미약한 글이나, 내 자신의 신앙적 신념에 대한 겸손하고 솔직한 나눔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다.


II.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인간은 하나님께 구속과 제약을 받는 존재인가?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과정, 그 창조의 목적과 의미를 간결하게 요약하자면,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다. ‘자기 형상’, 즉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되, 당신의 손으로 친히 만지셔서 지으셨으며 당신의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생명이 있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땅 가운데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을 정복하고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다.


인간의 창조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습대로, 당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심으로써, (그리고 다른 존재를 통해서 지으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의 손길로 직접 지으시는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서 유일하게 하나님과 닮은 존재인 것이다.


과연, 하나님은 지배와 구속, 통제의 목적을 위하여 당신과 유일하게 닮고, 그 존재적, 생명적 특질(이미지 형상과 생명)을 공유하는 인간을 창조하셨을까? 하나님과 동질의 이미지와 생명력을 부여받은 존재의 생명이 살아가는 삶이, 그 하나님의 구속과 제약을 받으며 살아가는 삶이겠는가?


또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생육’, ‘번성’, ‘정복’, ‘통치’라는 존재의 목적을 부여해주셨다. 이러한 인간의  존재의 목적은 ‘자유자’로서의 존재가 아니면 누릴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단적으로 간결하게 요약하자면, 부모님과 자녀의 관계로 정리될 수 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른다. 그리고 자녀는 부모로부터 생명적 특질(이미지 형상과 생명)을 부여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동식물의 창조에 관하여 성경에는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라고 나온다. 그리고 창조된 동식물에게도 '생육'과 '번성'을 (정복과 통치는 아니다) 창조의 목적으로 부여하셨다.)


III. 죄론(罪論)


1. 죄의 의미에 관하여


죄(sin)의 원어적 의미는 ‘과녁에서 벗어남’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법’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대한 반항 또는 저항이라는 적극적 의미보다 상당히 포괄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죄는 ‘원죄’와 ‘실행죄’로 분류된다. 원죄는 선악과 사건에서 비롯된 아담과 하와의 범죄이며, 실행죄는 원죄에서 비롯된 죄성이 아담과 하와의 후손에 잔재하여 파생되는 인간의 모든 범죄를 의미한다. 원죄 사건인 선악과 사건은 하나님의 권위에 반항했던 사건이 아니라, 뱀으로 인한 죄의 유혹에 빠지게 된 사건이다. 실행죄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형인 가인이 동생인 아벨을 살해한 죄이다. 한 인간이 자신의 분노로 추동되어 무죄한 다른 인간(그것도 혈육)을 살해한 사건이다.


2. 죄의식에 관하여: 인간의 원죄로 인하여 인간은 하나님의 저주와 분노의 대상이 되어, 하나님의 정죄와 죄의식 아래에 놓이며, 인간은 죄의식으로 고통받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는가?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아담은 선악과를 먹고 난 후, 하나님을 대면하기 이전에, 이미 수치심을 느끼며 하나님을 “두려워” (창세기 3:10 아담의 고백)하며,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로” 숨었다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숨어있던 현장에서 하나님께 발각되었다. ’수치심’과 ‘두려움’은 죄의식의 심리적 현상이다. 아담이 하나님을 대면하기 이전에 이미 죄의식이 발생하여, 이로부터 비롯된 심리와 행동의 특성이 나타나고 있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림으로써 범한 죄로 인한 수치심과 두려움은 이미 인간의 내면에 형성되어 있던 인격적인 반응이었다.


원죄로 인한 결과로서, “하나님은 인간을 저주하셨고, 에덴 동산에서 인간을 쫓아 내셨다.” 사실은 아니다. 이 내용은 그 절반만이 진실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노동의 수고와  임신과 출산의 짐을 부여하셨으며 에덴 동산에서 인간을 쫓아 내셨던 것은 맞다. 그런데, 창세기 3장에는 원죄 사건을 배경으로 하여 ‘저주’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원죄로 인하여 ‘저주’(“curse”)를 받은 것은 인간이 아니라, 죄의 유혹을 꾀했던 ’뱀’과 선악과가 심겨 있었던 ‘땅’ 뿐이었다. 인간은 저주의 대상으로 지명되지 않았다. 또한, 하나님의 존재의 특질 (당신의 이미지 형상과 생명)을 박탈하지도 않으셨다. 단지, 삶의 환경과 조건이 변경되었을 뿐이다.


지나치기 쉽지만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가지는 한 가지 사건이 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고 나서 자신들의 벌거벗음을 부끄럽게 여겨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자신들의 신체를 가렸다. 하나님은 원죄를 범한 이들이었지만, 그들에게 무화과나무 잎 대신에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고 보호하셨다. 이 작은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은 인간의 상한 마음을 이해하셨고, 그 마음을 품어 보호해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를 지었으므로, 그 대가로서 당연히 죄의식의 고통을 짊어지고 고통받아야 한다’고 하는 정죄자가 아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하여 인간을 저주하고 버리시는 분이 아니다. 



3. 구원에 관하여


죄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이 기독교 구원론의 핵심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자’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나, 또한 그 존재성은 성령과 함께 성부 하나님의 본체이시다 (삼위일체).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죄의 구원의 문제를 위하여 당신 스스로의 희생을 치루셨던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의 문제의 해결과 구원을 얻는다. 죄의 문제와 구원에 대하여 하나님의 해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한 가지 빠지기 쉬운 편견은 인생에서의 고난과 사고, 그리고 때로는 그로 인한 죽음이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와 저주의 표출 또는 심판이라는 생각이다. 이는 기독교의 핵심적 교리, 즉 기독교 구원론에서 벗어나는 생각이다. 인간의 죄의 문제와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방안 또는 해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은 죽었다.”


하늘의 보좌로부터 이 땅에 내려오신 신은 죽었다. 오직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죽음의 희생 이외에, 그 이상의 대체할 수 있는 해답, 그보다 귀한 대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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