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19 21:42

소망교회 새벽기도회 2014. Oct. 3rd Week [2] (고린도전서 15:3-15:28)

16 Thu. 고린도전서 강해(46)

 

 

고린도전서 15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전승되는 것이다. 신앙인은 전승자이면서 매개자다. ‘복음의 증거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맡겨진 사명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님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이다라는 것을 입으로, 몸으로, 삶으로, 인격으로 전달하는 것이 믿음의 성도들의 축복이다. 신앙의 전승이 끊어지지 않는 중요. 항상 끊임없이 가르치고, 배우고, 읽고 듣는 신앙의 전승이 중요.

 

복음의 핵심은 무엇인가?

i.      (3-5) 요리문답: 예수님의 생애를 축약하여 압축된 문장으로 만든 .

ii.     기독교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역사적인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기독교에는 역사관’, ‘시간관 있다. 시간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이시고, 예수님께서 시간의 중심 속으로 오신 . 하나님은 하늘, , 그리고 시간을 창조하셨고, 역사 속에 참여하시고,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가는 다이나믹한 속의 종교. 기독교는 끊임없이 역사의 현장에 들어간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복음의 역사적 현실성

i.      (3-4)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장사지낸 되셨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문장에서는 주어 동사 가장 중요한데, 헬라어 동사에는 아오리스트라고 하는 단순과거 시제가 있다. ‘단순과거라는 것은 과거에 일회적으로 완결되었음을 의미하는 . ‘죽으셨다’, ‘장사지냈다 단순과거형인데, ‘다시 살아나셨다 완료형으로 되어 있다. ‘완료형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효력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 ‘단순과거형 일회적이다. ‘완료형 부활의 역사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기독교는 역사 속에서 지속되고, 오늘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살아있는 신앙이다.

ii.     게바와 제자에게 보이셨다부분까지 복음의 핵심에 해당.

iii.   복음에 관하여 확인할 것은 예수님이 복음이다는 .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역사를 이루신 .

iv.   성경대로’: 반복해서 등장. (3-4). 예수님의 죽으심이 구약에서 예언되었던 . 예수님 사건은 무작정 발생하게 것이 아니라, 구약에 기초하여, 구약과의 관계 속에서 지속되다가 하나님께서 결정적인 카이로스의 시간에 예수님의 사건을 만드신 . 예수님께서 땅에서 함께 하도록 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게 것은 하나님의 예정, 구약의 예언을 따라 성취하신 .

v.     구약과 신약 모두 하나님의 말씀. 구약은 끊임없이 예언을 가지고 메시야를 향하여 가는 반면에, 신약은 예언의 성취를 통하여 궁극적인 종말을 향하여 나가는 신앙의 모습. 기독교는 전승의 신앙과 전승의 종교이다.

vi.   복음은 형이상학적인 것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적 현장에서 수고하고 피와 땀을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 우리 삶의 역사 속에서 예수님의 사건을 우리 것으로 삼을 있는, 현실적, 다이나믹한 변화를 가져오는 신앙이 바로 기독교인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현장을 목도한 사람들. (5-6)

i.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 20 정도가 지났다. 게바, 제자, 오백여 형제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보이셨다.

ii.     (7) 야고보(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동생: 예수님 생애 시기에는 예수님을 모르다가, 부활 후에 제자들 그룹에 참여. 베드로가 수장역할을 했었는데, 말씀 증거를 위해 각지로 돌아다닐 , 예루살렘 교회를 지도할 있는 인물이 필요했는데, 야고보가 역할을 맡게 되었다. 초대교회의 지도자는 게바와 야고보.) 믿음의 선배가 중요. 선배가 바르게 믿어야, 후배가 바르게 믿는다. 이단은 선배가  그릇된 신앙을 가지고, 후배도 그릇된 신앙을 갖게 되는 . 바른 신앙, 역사에 기초한 신앙,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깨닫는 신앙이 믿음의 핵심.

 

바울의 고백

i.      (8-9) 사도로서의 종결이 중요한 . 사도적 계열에 있어서, 게바에게 나타난 예수님, 야고보에게 나타난 예수님 사건을 따라, 바울에게도 나타난 예수님. 따라서 예수의 사도적 복음을 받는 면에 있어서 바울은 게바와 야고보와 같은 계열에 속한 것이고, 차별이 없는 것이다.

ii.     너는 예수님을 만나 적이 없지 않느냐라는 사람들의 비판, 다매색 도상에서 만난 예수님을 얘기하지만, 사람들은 신앙을 믿지 않고 의심하였다. (15) 바울을 파송한 안디옥 교회와 게바와 야고보를 중심으로 하는 예루살렘 교회가 갈등을 겪었다. 교회의 만남을 통해, 예루살렘 교회는 모교회요, 안디옥 교회는 모교회로부터 나온 선교적 교회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iii.   사도권의 역사는 바울의 시대에 끝나게 된다. ‘신사도 운동 위험한 부분이 있다. 영적인 신비주의를 수용해서, 말씀을 빨리 벗어나서 영적인 경험을 지나치게 흡수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사도의 후예자로서 말씀을 받아서 이를 증언하는 사람이다.

iv.   (10-11) 바울은 자신이 가장 작은 ’. 자신의 사도권을 지나치게 의심하지 않기를 권면. ‘나의 나된 ’: (1) 그대로의 모습 (2) 바울이 사도된 . 만삭되지 못하여 같은 자신을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복음을 맡겨주시고 사도가 되게 하신 것이 모두 은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의 자기 고백. 나의 나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 가슴에 복음을 받은 , 신앙의 깨달음, 오늘 살아있는 속에서 해야 일이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고백해야.

 

 

17 Fri. 고린도전서 강해(47)

 

 

고린도전서 15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최후의 소망, 최고의 소망, 부활.

i.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부활은 인류 최후의 소망. 최고의 소망. 인간이 땅에서 살면서 생명의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경험하게 된다. 상처도 나고 죽으면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인생의 한계성으로 인해, 최후, 최고의 소망은 하나님의 부활에 참여하는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는 .

ii.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함께 산다는 .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의 자리에 들어선다는 소망. 인생에서 소망을 품고 산다는 것은 힘을 준다. 결혼에 대한 소망, 직장에 대한 소망, 근로자, 사업가, 주부, 모든 사람의 삶에는 소망이 필요하다. 삶을 활력있게 만든다. 소망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 소망이 있을 때에 사명감이 생긴다. 소망이 없으면 관심이 끊어진다. 최고의 소망, 최후의 소망이 바로 부활인 것이다.

iii.   부활은 인생의 긴장감을 가져다 준다. 연애할 , 장작불같이 사랑이 활활 타오르다가 결혼 후에는 서서히 꺼져가는데, 모두 꺼져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부부 생활이 매우 힘들어진다. 부부가 사랑하는 삶이 함께 살아가며, 함께 늙어간다는 마음의 소망이 있으면, 따뜻한 사랑이 유지될 있다.

iv.   소망은 자녀가 공부하는 중요한 동기가 된다. 자녀가 소망을 품도록 가르쳐야 한다.

v.     부활의 소망이 없으면 삶은 철저하게 현실주의자가 된다. 현실적인 축복만을 바라게 된다. 그러면 작은 고난과 실패에도 크게 상심하게 되고, 하나님이 사라진 같게 된다. 원칙이 사라지게 되며, 현실 속에 모든 소망을 걸게되면 위험하게 된다. 현실적인 이득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악행과 사기를 행할 있다. 하나님이 수단이 된다.

vi.   현실적 가능성에 대한 생각없이 오직 미래적인 부활의 소망만을 붙들게 되면, 기독교 신앙이 마치 아편처럼, 맑스, 레닌의 기독교 박해과 비판: 현실개혁과 변화를 구하지 않고, 미래의 부활의 소망만을 붙들고 현실도피주의적이라는 비판. 그러나 기독교는 철저한 현실주의, 그러면서도 미래의 약속을 바라보고 있는 . 여기에는 긴장관계가 존재한다.

 

Already v. Not Yet 긴장관계

i.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면서 부활과 생명을 맛보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온전한 부활이 오기 때문에, 이러한 긴장 속에서 살게 되는 . 속에 활력소를 가져오는 중심이다.

ii.     사계절의 변화 속에서 추운 겨울의 시기에는 싹트고 꽃피는 아름다운 봄의 계절을 미리 맛보고, 겨울 속에서 봄을 기다린다. 봄에는 여름을, 이후에는 가을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한 기대가 하루 하루의 삶에 활력을 가져오는 . 하나님의 부활이 승리로 말미암아 현재의 고난의 때에 좌절하여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서게 되는 .

iii.   부활은 (1) 궁극적 부활 (2) 현재적 부활: 삶에 부활한 예수가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생명을 얻게 된다플라톤, 헬라 철학자는 사후에 육체와 영이 분리된다고 믿었고, 신비주의(영적 열광주의자) 미래보다는 현실을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몸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몸이 것이다. 몸과 영에 대한 가치판단을 분리하지 않고, 소중하며, 하나님 앞에 거룩해야 한다. 기독교는 몸의 부활 소망한다.

iv.   부활을 놓치면, 삶의 모든 것을 놓치게 된다. 부활은 예수를 믿으면 막연히 받게 무엇이 아니라, 부활의 능력을 오늘 경험할 뿐만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며 영원한 부활을 소망하며, 오늘 맛보기로 주신 부활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부활의 핵심적 요소이다.

 

예수의 부활을 바르게 믿지 않으면 신앙이 헛것이 된다.

i.      (12-13)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간의 부활에 대한 하나님의 예표적 행위였다.

ii.     (14-15) 만약, 예수의 부활이 없었다면, 전파하는 것이 것이다. 거짓 증인. 인간의 부활의 폐기처분이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고, 믿었으며, 따라서 우리도 부활의 자리에 참여하게 것이다.

iii.   (16-17) 부활을 믿지 않으면 믿음이 헛된 .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믿어야, 믿는 자들도 부활할 있고, 죄악에 대하여 승리할 있다. (예수의 십자가 승리)

iv.   (18-19)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믿는 자의 인생에 의미가 없다. 부활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다. 열심히 신앙을 믿다보면 부활을 받을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약속해주신 표징이다. 부활을 바라보는 ,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후패해지는 육체 안에 부활의 경험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죽음을 향해서 가는 삶이 아니라, 오늘의 넘치는 부활의 생명을 누림으로써, 생명을 향해서 가는 부활의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라.

 

 

 

18 Sat. 고린도전서 강해(48)

 

 

고린도전서 15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그가 모든 원수를 아래에 때까지 반드시 노릇 하시리니

26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7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신앙인이 항상 부딪히게 되는 문제: 나가고 축복을 받을 때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같다가, 힘들고 어려운 때에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십니까? 악을 방치하십니까? 선하십니까? 생명의 주님이십니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

i.      고통의 현장에 있었던 욥은 하나님 이러한 고난과 아픔이 다가옵니까?’라는 질문을 , 하나님께서 폭풍치는 장엄한 우주의 현장에서 욥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 ‘네가 인생의 비밀을 모두 아느냐? 우주의 비밀을 아느냐? 네가 어찌하여 함부로 하나님께 분노하며 탄식하느냐?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신다.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이시다.’

ii.     욥이 하나님이 고난의 순간들 속에 자신을 지켜보고 계셨고, 하나님이 생명의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게 , 하나님은 진정 의로우신가라는 질문을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내가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귀로만 하나님을 듣는 것이 아니라, 친히 보게 되었나이다. 나의 죄를 고백하나이다라고 하며 재를 뒤집어쓰며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었다.

 

신정론: 하나님께서 이렇게 악과 불의를 그대로 내버려두시는가?

i.      기독교는 그에 대한 마지막 답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명의 사건으로 부활하겠다고 하는 약속이 있다.

ii.     질병은 참으로 괴로운 . 상처도 아프다. 때로는 깊은 중병으로 인해 수술을 앞두고 있을 , 얼마나 마음이 불안한가? 마지막에 모든 아픔 끝에 다시 치유를 받을 것에 대한 분명한 확증이 있으면 조금 고난받는 것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아픔의 시기에 나의 인생이 종결되고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것은 아닌가하는 두려움이 고통이 된다.

iii.   에수님께서 주신 약속: 인생의 모든 것은 사라진다. 인생이 때로는 힘들고, 눈물을 흘리며, 애통할 때도 있고, 아플 때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예수를 부활시키신 것처럼, 잠자는 자들과 죽은 자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약속을 믿고 인생을 살라.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을 오늘 누리며 오늘 이렇게 살다가 인생이 끝나더라도 영원한 세계의 하나님께서 생명을 덧입혀주실 것을 믿고 살라. 두려움으로 인생을 살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기대하며 살라.

iv.   신정론에 관한 질문을 종결하는 것이 표증으로 보인 것이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이요, 마지막으로 죽은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회복되고 생명을 얻게 마지막 잔치가 모든 신정론에 대한 대답이다. 인생이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모든 수많은 고난, 아픔과 탄식이 있었으나,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생명의 사건, 부활의 사건을 믿으며 생명을 지금 누리며 살라. 죽은 자의 부활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예표로 삼으신 것이 예수의 부활이다. 최후의 소망, 최고의 소망이다.

v.     건강하던지, 아프던지, 나가던지, 풍요하던지 없든지, 마지막 소망을 품고, 좋은 때에는 생의 종결을 인식하여 겸손하며, 고난의 때에는 하나님의 달란트에 대한 꿈과 비전을 품고 도전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조금 어렵다고 좌절하지 말고, 하나님이 갖고 계시는 나의 인생의 스토리를 하나님 앞에서 펼쳐나가라.

 

부활의 열매와 소망

i.      (20-21) ‘ 열매’: 이제는 번째, 번째 열매를 있다. 번째 꽃이 피고, 열매가 맺으면 이후에도 결실이 있을 있다. 예수님이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신 번째 열매이기에, 우리가 부활의 소망을 품고 있다.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고, 예수를 통해서 생명이 오는 . 죽은 같으나 자로서 땅에서 사는 복을 하나님께서 주신 . (22-24) 마지막에는 통치, 권세, 능력, 모든 것을 멸하시고 하나님께서 온전히 친히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주권자이신 나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이다.

ii.     (25-26) 마지막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 사망이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왔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을 내치시고 영원한 생명의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이다.

iii.   (27) 만물을 예수님의 아래에 두어서 예수님이 왕이 되셔서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실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어느 지혜자나 선생이 아니라, 세상을 다스리는 , 왕으로서 만물의 주인이 되실 것이다.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신 분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그렇다.

iv.   (28) 하나님은 만유의 주인. 모든 권세와 권위를 예수님께 맡기시고, 죽은 자와 잠자는 자들을 다시 회복하여 생명의 자리로 초대하신다.

 

죽음과 부활의 생명

i.      죽음이라는 것과 같이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게 하는 것이 없다. 죽음이 있기에, 생명의 소중함을 경험하게 되는 . 죽음은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하나님께서 주신 . 인간의 악을 통하여깨닫게 하시는 , 하나니을 떠나면 인간이 죽게 된다는 , 생명의 하나님과 함께 있기에 생명의 사람이 있다는 . 예수님은 당신을 , 진리, 생명이다라고 하셨다. 예수님을 안에 포용해야 생명을 얻고, 진리를 깨닫게 되며, 인생의 방향을 얻게 된다.

ii.     그러므로 예수님이 누구신가? 감사, 능력, , 선물, 은혜, 용기, 담대함, 지혜, 총명예수님이 부활과 생명이시고, 친히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셨기에 우리에게 약속을 보여주신 .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다. 영원한 부활에 들어갈테니 땅에서 생명을 누리며 힘차게 살아라. 이것이 예수의 부활을 받아들이는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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