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12 04:24

소망교회 새벽기도회 2014. Oct. 2nd Week [2] (고린도전서 13:4-14;19)

9 Thu. 고린도전서 강해(40)

 

 

고린도전서 13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의 정의,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에 관한 본문. 삶이란 사랑의 역사라고 있다. 사랑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고, 삶을 인도하는 지침. 허무한 것이나 가치없는 것을 사랑하느라 인생을 낭비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정말 사랑할 것을 사랑하는가? 속에 사랑이 얼마나 요동치고 있었는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다는 위대한 복음의 역사. 나의 사랑은 일시적이고 한계가 있는 사랑,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에 접붙임을 받아야 진정한 사랑의 사람이 있다.

 

아가페라는 사랑

i.      하나님께서 먼저 시작한 사랑. 사랑을 통해서 본질을 깨닫게 되는 사랑.

ii.    사람이란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났다. 사랑을 받으면서 인생이 시작되었고, 그리고 나서 사랑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iii.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을 시작하셨고, 사랑에 감복하여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사랑이 신앙의 핵심.

i.      하나님이 주신 삶과 은사에 관한 모든 것을 해석할 있고, 사랑은 믿음의 역사를 진행할 있는 강력한 원동력이 된다.

ii.    사랑의 주체는 하나님, 성령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iii.  바르트: 13장의 사랑은 살아 움직이는 인격체와 같다. ‘사랑이나 인격체라는 말을 예수 그리스도교체해도 의미가 진실되게 통한다. ( 13:4)

iv.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에 없다. (고전 2:2)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인격과 사랑에 잠겨있어야.

v.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인격,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다.

vi.   예수님께서 안에 오셔서 사랑의 역사를 만들어 주시옵소서라는 고백이 축복된 고백.

 

사랑에 관한 15개의 정의: 7 Positives (온유, 오래참음…) + 8 Negatives (~ 하지 아니하다)

i.      사랑은 naive 것이다’, ‘사랑에 무슨 강력한 힘이 있겠는가라는 편견이 있다. ‘사랑은 그냥 참는 것이다’. 사랑을 소극적인 개념으로 이해.

ii.    바울: 사랑에는 강력한 힘이 있다.  예와 아니오를 명백하게 있어야 사랑의 사람이 된다. 계속 시기하면, 온유하지 않고 교만하면 사랑의 사람이 없고, 분별력이 있어야 하고, 예와 아니오를 있어야 진정한 사랑의 사람이 나타날 있다. 기독교의 사랑은 흐리멍텅한 , naive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력한 지혜와 분별력을 갖고, 예와 아니오를 있어야 진정한 사랑의 사람이 있는 것이다.

iii.  바울: 긍정으로 시작하고 긍정으로 마무리 하되, 가운데에는 부정이 있다. 부모가 자녀를 훈계할 ,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느끼고 있어야 야단을 쳐야 야단이 통한다. 그러한 느낌이 없다면, 그러한 야단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랑은 항상 긍정적인 것으로 앞과 뒤를 포괄하는 . 그리고 나서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것이다. 사랑의 본성.

iv.   사랑의 15개의 정의가 모두 동사 되어있다. 명사가 아니다. 실천적인 . 손과 발이 움직여야 사랑이다. 그러한 동사 현재형이다. 사랑은 현재적인 . 부부간의 사랑, 부모-자녀의 사랑, 우정,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 어제까지의 차고 넘쳤던 사랑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고 멈춰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지금도, 그리고 숨이 멈출 때까지 지속하겠다는 현재적 사랑이 안에 있다는 것이 사랑의 핵심.

v.     사랑은 인격, 동사, 현재형,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이 있고, 긍정적인 것으로 포용하고 배려할 있어야.

 

 

 

 10 Fri. 고린도전서 강해(41)

 

 

고린도전서 13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같이 희미하나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축복받은 교회이나 문제가 너무나도 많은 교회, 고린도교회’. 문제가 많은 것은 축복이 이웃과 공동체를 위하여 쓰여지지 않고, 자기 자랑과 교만을 위하여 쓰임을 받아서 분파와 자기자랑, 공동체가 하나님이 아니라 개인의 영광을 세우는 것으로 말미암은 . 그리고, 영적인 열광주의에 빠지게 되면, 신앙인이면서도 독단적이고, 오만한 아집쟁이가 된다. 하나님과 이웃도 사라진다.

 

영적 교만

i.      영적 은사를 받은 사람 뿐만 아니라, 신앙 생활을 오랫동안 사람. 부모님을 통해서 신앙을 몸으로 체득한 사람들 중에 발생할 있다. 오래된 신앙의 전승을 자기 자랑으로 삼아서. 영적 교만으로 다른 사람을 아우르지 못하고 독선적이 되는 .

ii.    교리적인 신앙에만 집착하는 사람. 삼위일체, 기독론, 은사론 등의 교리에 의해서 정체성을 형성한 사람은 다른 교리를 수용하거나 인내할 없게된다. 정죄하게 된다.

iii.  영적 교만의 밑바탕: 사랑의 결핍. 공동체 회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 사랑이야 말로 은사를 진정한 은사, 오랜 신앙의 전승이 복된 것이 되고, 교리가 신앙을 바로 세우는 축복이 되게 하는 것이다. 사랑이 결핍된 교리우선주의, 영적 경험의 우선주의, 오랜 신앙의 전통의 우선주의는 실상은 공동체를 파괴하고 위기를 가져오며, 하나님 보다는 자기 영광, 교만, 체면을 위하는 다툼과 분쟁을 낳는다.

 

사랑

i.      근본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신 내리 사랑이다.

ii.    공동체의 충만한 믿음의, 생명의 역사의 근원. 4:8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궁극적 진리)

iii.  사랑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아니다.) 천박한 생각이 있다. 단지 낭만적 기대. 로맨틱한 이상주의. ‘내가 사랑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역사다’ - 하나님을 사랑이라는 것에 축소시키는 . 매우 비판과 판단의 요소가 있는 naive 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축소.

 

은사의 한계성

i.      (13:8) 종말론적 관점에서 예언을 하는 것이나 받는 것에 매우 주의를 해야. 그러한 주의가 부족하면 예언자체가 하나님의 것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언은 부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식도 부분적인 것이다. 부분적인 것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하나의 은사로 하나님과 동일시 있는 오만한 자리에 오를 있다.

ii.    (13:9-10) 하나님의 전체세계에 관하여 아는 것은, 태평양 바다 한복판에서 정도 밖에 알지 못하면서 모든 것을 아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예언, 방언, 지식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은 부분적인 것이다.

iii.  완벽한 하나님의 역사가 등장하게 되면 부분적인 모든 것은 2차적이 된다. 신앙의 가장 것은 사랑 때문에 겸손해지는 , 자유를 유보, 지식의 한계를 깨닫는 , 부분적인 인식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백해야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있다.

iv.   모든 것의 한계성 (13:11): 말하고 생각하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다. 한시적, 성숙하지 않다, childish (미숙하고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 지속성과 분별력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장성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는 . 어른의 신앙: 성숙, 분별력, 지속성, 하나를 보면 전체를 이해할 있다. 통전적 사고와 통전적 지식.

v.     어린아이와 같은 미숙성은 하나님 앞에서 고백해야. 한계적 지식과 한계적 예언임을 고백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성숙할 있다.

vi.   온전하게 주님 앞에 서게 날에, 지식과 예언의 한계를 하나님께서 보완/보충해주실 것이다.

 

사랑의 우위

i.      (12) ‘거울’: 청동거울과 같아서, 대강의 모양은 있어도 자세히는 없다. 지금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반면에 앎이 부족하고 한계가 있지만, 후에 하나님을 친히 만나뵐 , 믿음이 앎의 자리로 확대되는 . 주님의 얼굴을 친히 , 속의 눈물, 탄식과 의심들이 모두 순간 풀려지게 된다. 그러한 소망이 앎의 자리에서 풍성한 사랑으로 변화된다. 오늘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고, 날에도 영원히 주님의 사랑과 함께 하는 사람으로 서게될 것이다. 믿음과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이나, 사랑은 영원한 것이다.

ii.    예수 그리스도께서 끊임없이 보여주셨던 것이 십자가의 사랑,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내어놓으신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 사랑의 하나님 앞에 내가 서는 . 나의 지식, 나의 방언, 나의 예언 - 완전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은 . 그래서 축복이 되는 .

iii.  방언에만 치우쳐서 자랑하던 고린도교회에게 사랑을 통해서 은사가 진정한 은사가 되는 길을 설명하고 있는 .

 

 

우리의 은사가 사랑에 기초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공동체를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며 은사를 사모하면서 무엇보다 사랑에 기초하여 은사를 주님 앞에서 마음껏 활용하고 사용하시길.

 

 

 

11 Sat. 고린도전서 강해(42)

 

 

고린도전서 14

 

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5 나는 너희가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7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때에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8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예비하리요

9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10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없는 소리는 없나니

11 그러므로 내가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12 그러면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린도교회가 영적인 열광주의 속에서 많은 은사를 받았다. 방언의 은사에 매몰되어 있었던 은사주의자들이 있었는데,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은사를 자랑하였다. 방언은 성령님이 주신 은사로서, 하나님의 선물. 은사의 목록 중에서 방언은 목록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은사임을 말하고 있다. ‘ 은사를 사모하라’: 말씀과 관련된 은사를 사랑하여, 깨달음을 공동체에 전파하여 덕을 세우라. 사랑을 기초로 하여 은사를 세워야 공동체가 살아난다. 방언의 은사와 예언의 은사 비교.

 

 

방언

i.      통변하는 은사도 함께 사모해야. 통변의 은사가 없는 경우, 자기 자신에게는 귀한 은사이지만, 공동체에는 덕을 끼치지 못한다. 방언은 하나님과의 개인적 대화를 통해 누리되, 함께 모이는 공동체에서는 방언보다는 알아듣는 언어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19)

ii.    대화와 소통이 되지 않는 사회’: 지도자-국민, 여당-야당, 부모-자녀, 교사-학생, 기업의 조직문화, 공무원 세계. ‘말이 통한다는 중요.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 하나님은 천지창조와 인간창조도 말씀으로 이루셨고, 인간과 대화를 나누셨다. 말씀을 함께 나누는 소통의 종교.

iii.  소통부재의 원인: 듣기를 거부하는 심리. ‘상대방을 내가 파괴시키겠다 적대적 심리. 십자가의 고난의 원인도 그러한 거부심리와 파괴적 적대심리. 소통에는 이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감성적인 동의가 필요하다.

iv.   (1-2) 방언이나 예언은 비밀을 말하는 . 방언은 방언하는 조차도 의미를 이해할 없다. 하나님만 아신다. 하나님-나의 소통이

v.     (3-4) 방언은 성령의 역사를 받았다는, 자기 자신에게 믿음의 확신을 주게 되나, 예언은 공동체의 덕을 위하게 된다. (5-6) 예언, 지식, 가르침이 아니라, 방언으로 했다면, 듣는 자가 이해할 없으니 공동체의 덕을 세울 없을 것이다.

vi.   (7-8) 방언-예언 = 음이 분별되는 피리, 거문고와 소리가 분명하지 않은 나팔- 음이 분별되는 피리와 거문고, 소리가 분명한 나팔

vii. (9-10) ‘알아듣는 하라.

viii.        (11-12) 영과 마음이 함께 기도하고 찬송해야 축복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아멘하면서 함께 참여할 없다.

ix.   (16-17) 공동체를 항상 기억하라. 공동체를 위하지 않으면 은사들은 축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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