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04 21:50

소망교회 새벽기도회 2014. Oct. 1st Week (고린도전서 11:17 - 12:11)

소망교회 새벽기도회 2014년 10월



1일 Wed. 고린도전서 강해(33)




17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18 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19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20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21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고린도교회의 문제 중, 먹는 문제로 교회 내에 갈등과 분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 문제다. 믿음과 신앙이 약한 자를 위해 자유를 유보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공동체에 덕을 끼치도록 하라. 다시 먹는 것의 문제. 기독교 공동체는 ‘먹는 공동체’다. 예수께서 사람들과 함께 ‘먹는 공동체’, ‘식탁/밥상 공동체’, 예수 - ‘먹고 마시는 자’(조롱의 말이었으나 좋아하셨다.) 또 하나의 갈등은 예수님의 만찬에 믿음의 성도들이 참여하면서 발생하게 된 문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다’

i.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임이 하나님의 뜻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탐욕과 욕심을 보여주는 모임이면, 이런 모임이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 안에 형성될 수 있는가? 교회의 덕을 위하여 v. 인간의 탐욕, 교만과 자랑을 위하는 것은 공동체에 해로움이 된다. 

ii. 모든 모임의 원칙.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있는가? 말씀으로 서로 위로를 받고 있는가? 내분과 갈등이 있는가? 서로의 자기 자랑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가? 

iii. ‘자랑’은 조심스러운 것이다. 함께 자랑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품을 수 있는 공동체여야. 모이면서 축복이 되지 않고, 갈등이 발생하는 공동체가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이 될 수 있는가?


원인 (18)

i. 모임이 있는 곳에 분쟁이 발생한다. 분쟁이 사그러지는 것이 교회다. 자신의 것을 주장하면 분쟁이 발생한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 가정의 분쟁, 공동체 ‘우리의 것’을 추구해야. 교회도 마찬가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인이심을 인식하면, 자신의 지분을 주장하며 다투는 일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충성하는 것이지, 자신의 몫(목사, 장로, 권사 등)이 있다고 생각하는 공동체는 필연적으로 갈등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 공동체가 아니라, ’집단화’ 현상이다. 

ii. 분쟁 속의 교회의 긍정성: (19) 알곡과 가라지. 심판의 때를 차후로 정하심. 분파문제에 빠져있는 교회의 경우, 그 문제를 극복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믿음의 역사가 지속되는 과정.  분쟁과 갈등이 있어서, 그런 문제로 정금같이 빛날 사람들이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은 긍정성, 그러나 잘못된 문제를 고쳐가야. 파당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이 분별되는 역사가 나타난다. ‘고난’을 통해서도 그 때의 수준과 지난 날의 감사할 것(건강 등)을 깨닫게 되는 원리. 실패와 어려움을 통해서 겸손하게 된다. 문제들은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 

iii. 여기서 ‘파당’은 사회학적 파당, 경제적 파당이다. ‘소유가 많은 부자’ v. ’가난한 자’,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 v.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 - 사회와는 달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지위.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지위만 존재할 뿐. 


파당으로 인한 어려움(20-21)

i. 초대교회는 주님의 만찬을 예배드릴 때마다, 모일 때마다 행했다. 각자가 음식을 가져와서 모아서 식탁에서 함께 먹었다. 초대교회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함께 하면서,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이었던, 성레전적인 만찬을 함께 했다. Holy Communion. Agape Feast. 전통적으로 애찬과 만찬을 함께 하다가, 식사와 성찬을 따로하도록 변화되었다. 

ii. 문제: 여유있게 일찍오는 사람(부자)과 근로로 바빠서 늦게 오는 사람. (가난한 자)가 분리되어, 전자의 사람들이 음식을 먼저 먹어버리면서, 늦게 오는 사람의 몫이 남지 않게 되자, 불평과 갈등이 발생하였다. ‘있는 자’와 ‘없는 자’간의 충돌이 발생. 먼저 온 사람들이 늦게 오는 사람을 기다려서 함께 먹어야 공동체다. 

iii. (22) 교회 공동체로 모이고, 성찬예식을 하는 공동체로 모이는 데, 어찌하여 연약한 자를 배려하지 않는가? 사랑의 결핍이다. 빈궁한 자를 부끄럽게 하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 주님의 만찬을 개인주의적 만찬(‘자기의 만찬’)으로 바꾸고 있는가? 함께 더불어, 강한 자는 연약한 자를 배려, 연약한 자는 강한 자를 귀히 여겨야 공동체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교회란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가 되는 것

i. 지식은 그리스도에게 쓰임받는 것, 재물과 달란트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쓰임받는 것.

ii.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공동체를 위하여, 이웃의 연약함을 감싸주는 덕을 위하여 주어진 축복의 역사. 

iii. 나만 잘 믿는 신앙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잘 믿어서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교회 공동체의 축복이다. 

iv. 구역 모임 공동체의 연약한 자를 살펴서 기도하고 함께 세워줄 줄 아는 공동체. 




2일 Thu. 고린도전서 강해(34)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30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34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성례전의 의미

i.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한다. 요한복음 1장: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사건이다. 예수의 인격, 그의 삶 자체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ii. 카톨릭 교회는 ‘보이는 말씀’인 성례전에 집중. 예수님의 몸에 참여하는 것.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보이는 말씀’에 집중. 말씀 선포보다는 성례전에 중심을 두고 있다. 

iii. 개신교 전통은 ‘들리는 말씀’에 집중. 말씀의 선포가 예배의 중심. 보이는 것은 제한이 되어 있고, 보이는 행위에 멈쳐설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면서 ‘들리는 말씀’에 집중. 

iv. 내 몸 전체가 보여지는 하나님의 말씀이니, 성찬 예식을 통해서 나를 기억하라. ‘보이는 말씀’의 한 요소.

v. (33) 먹기 위하여 모일 때에 혼자만 먹지 말고, 함께 먹을 수 있도록 기다리라. 함께 먹는 공동체의 축복을 놓치지 말라. 가정도 마찬가지. 사랑의 공동체의 모습. ’함께 먹는 것’이 사랑의 교제의 축복. 기다려서 함께 먹는 여유와 배려가 있어야. 공동체 지향적. 한 사람의 뛰어남으로, 그 사람만 돗보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돗보여야. 


성찬에 관하여 지켜야 할 것

i. (23) 성찬예식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역사적 근거. 기독교 신앙이 역사를 중요시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고, 시간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영원의 세계 속에서 현실의 시간과 공간, 이 모든 것들이 소중한 것. 그리스도의 신앙은 역사적  맥락/원천을 끊임없이 찾는다: 구약 - 출애굽, 신약 -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만찬에 참여하는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 

ii. 우리의 시간과 공간을 하나님의 것으로 새롭게 깨닫는 것이 신앙, 영성, 지혜적 사고이다. 

iii. 기독교 신앙의 특징: 전승의 종교. 내가 받고 다시 전하는 것. 부모가 받고 자녀에게, 내가 받고 이웃에게 증거하는 것이다. 자녀가 신앙생활을 잘 하지 못하는 이유는 부모가 신앙을 적절하게 전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앙의 시작, 말씀 권유와 나눔 등을 통해서 전승이 가능하다. ‘받은 신앙’. 신앙의 전승이 깨어지면, 순식간에 무너진다. 다음 세대에게 말씀을 전승해야 하는 이유. 한 세대가 없어지고,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 교회 공동체의 신앙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내가 받은 것을 전하여 준다’ - 전성의 축복


몸과 피에 참여하는 것 (24-25)

i.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 성찬 예식의 중심. 먹고 마실 때에 그리스도에 참여하는 것이기에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각자의 달란트대로 다양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있다. 외모, 환경, 삶의 질이 모두 다른 사람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여 하나가 되는 정체성. 

ii. 예수님을 기념하라. ‘기억하라’라는 뜻. 예수님이 죽으심, 예수님 주인되심,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을 기억하는 것. 

iii. ‘신앙/영적인 치매기’:  언제 눈물 흘리며 진실되게 기도하고 찬양했는가를 잊어버린다. 나 잘난 것으로 살아가는 신앙. 

iv. 모든 사랑에는 ‘기억’이 있다. 남편, 아내, 자녀, 친구, 민족과 나라, 인류에 대한 사랑, 이 모든 것에 ‘기억력’이 필요하다. 

v. (26)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것’ 자체가 선포다, 전도다. 우리를 위하여 예수의 죽으심을 만천하에 전하고 증거하는 것. 



만찬에 참여할 때 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 나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고, 내가 주님께 속해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주님 앞에 감사함으로 나아가라. 



3일 Fri. 고린도전서 강해(35)



고린도전서 12장


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바울은 ‘about’(~에 대하여) 그 동안 몸, 육체에 관한 주제. 기독교 신앙은 육체와 영혼을 분리하지 아니하고 하나의 인격으로 이해하고 있다. 육체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복된 육체이다. 육체로 하나님의 거룩함에 이르는 길에 참여할 것인가의 문제. 간음, 결혼, 먹고 마시는 문제들을 다루었다. 새로운 주제는 신령한 것. 영의 문제.



육체와 영의 문제에 관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 영이 어떻게 내게 와서 역사하는가를 기억해야. 

기독교 신앙의 전통: 3위 일치의 고백. 


성령의 역사(1)  - 내 입으로, 내 영과 더불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가장 기초적인 신앙고백을 하도록 인도하는 것. 

i. 마태복음 16장,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것은 네 입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것이다’. 신앙 고백은 내 입으로 하지만, 성령의 역사 속에서 감동되어서 하는 고백. 

ii. ‘자기 주도성’의 의미: 세상 사람 - 자기 힘으로 자기 주도적이 되는 것. 능동적 자기 주도성/ 그리스도인 -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자기 주도적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iii. 수동적 자기 주도성.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것, 하나님의 역사에 내가 붙들림을 받았지만, 자기 주도성을 기독교 신앙은 놓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내게 본래 주셨던 자기 주도성이 살아 나는 것이다. 내 영으로 자발적으로 신앙고백을 하는 자기 주도성이 생기는 것. 

iv. 내 힘과 능력만으로 자기 주도성을 갖는 사람 v. 하나님의 영과 지혜를 받으면서 자기 주도성을 갖는 사람 - 삶의 행태는 크게 다르다. ‘자기 주도성’ - 삶을 적극적으로 부딪혀 나간다’라는 뜻. 기도할 때, 멈출 때, 금식할 때, 침묵할 때, 일어날 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임을 분별하는 것이 모두 자기 주도성 속에서 발생하게 되는 것. 주님의 성령과 함께 나타나는 것. 자기 주도성의 성령의 역사가 입을 통해서 신앙고백을 이루게 되는 것. 

v. (3) ‘예수를 저주할 자’ -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율법의 저주를 받은 자’, ‘자기 죄 때문에 죽는 자’라고 말할 수 있는 성령의 역사가 없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주(큐리어스: 절대 순종, 절대 복종)로 고백할 수 있는 것. 

vi. 이러한 고백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늦게 믿을 수록 엄청난 결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혁명적 사건이 내적으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판단과 결정에 있어서 ‘내’가 주인이었는데,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 ‘혁명’은 나라의 주인이 바뀌는 것, 권력이 바뀌는 것. 영적/정신적 혁명. 과거의 주도성은 내가 주인 v. 새로운 주도적 인생은 예수님이 주인이신 주도적 인생. 역사 속에서 혁명을 일으킨 사람은 생명을 걸고 이룬 것.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그러한 고백을 통해서 내 삶의 주도권을 내려놓을 수 있겠는가. 롬 8:16 성령이 친히 우리와 더불어 - 성령의 역사. 하나님을 아버지라 고백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됨을 확인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나의 삶에 깊이 참여하실 것을 뜻하는 것. 이러한 고백은 성령님이 이루시는 가장 중요한 역사. 

vii. (2) 과거에는 말 못하는 우상이 네 삶을 끌고가지 않았는가? 기독교 신앙은 말하는 종교다. 말씀하시는 하나님, 말씀하시는 예수님, 말씀하시는 성령님. 하나님은 말씀의 하나님. 인간도 말하는 인간이다. 기적치료자 v. 예수: 차이는 예수님의 기적의 풍성함. 말씀을 통해서 기적을 행하심. 기적치료자는 보이는 행위에만 관심이 있었으나 예수님은 기적이 전체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셨음. 



은사

i. 사역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 방언, 통역, 치유의 은사등. 

ii. 은사 - 수직적 은사(계시적 은사) & 수평적 은사(지혜적 은사: 생각과 판단)

iii. 수직적 은사: 교회사역을 위한 은사. 예언, 치유, 방언, 통역. 성령의 열매와 함께 동반되지 않으면 은사 때문에 망가지게 된다. 은사 몇 가지로 자랑과 교만에 빠지게 될 때. 공동체를 위하여 주어진 것이므로 감사하고 겸손하게 은사를 사용해야. 수직적 은사는 구원의 은사. 하나님의 구원의 영의 역사.

iv. 수평적 은사: 하나님의 창조의 영의 역사. 하나님이 비추시는 빛, 내리시는 빛은 누구에게나 내리시는 것. 생각, 손과 발이 움직이는 것, 삶의 처세술, 성격적인 부지런함. 기독교인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 이 은사에 적용되는 원리는 ‘심는대로 거둔다’는 것이다. 



열매





하나님이 내 아버지, 내 영이 하나님의 영과 더불어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삶.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기 주도적이고, 하나님과 함께 수동적 자기 주도성을 가지고 있고, 이는 말씀, 성령, 은혜를 통해서 끊임없이 받아야 한다. 


내가 성령의 사람. 하나님의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신다. 성령께서 나의 육체, 세포 하나하나에도 생명의 은혜와 축복을 허락하시기를 선포하고 고백하라. 




4일 Sat. 고린도전서 강해(36)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성령의 역사. 성령의 사람의 모습. 모든 기본이며 출발점. 성령의,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 땅에서 교회에서 살 수 있는 복을 내려주시는 데, 그것이 은사이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은사라는 사역의 선물을 주시는 것. 


사역의 선물

i. 수직적 은사(계시적 은사): 지혜와 지식, 예언, 치유, 방언, 통역의 은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은사를 받은 사람을 통해서 이 땅에서 이루어가도록 하기 위한 것. 구원신학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의 생명과 구원을 성취하는 것.

ii. 수평적 은사(지혜적 은사) (롬12): 성실과 근면, 잔잔한 마음의 기쁨. 배려할 줄 아는 넉넉한 마음. 목소리의 달란트, 삶의 여러가지 재능들. 창조신학적 은사. 모든 인간에게 열어놓으신 은사. 이 은사의 중심에는 ‘심은대로 거둔다’라는 원칙이 있다. 수고와 땀흘림의 법치.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밥먹지 말라’는 명령. 이 땅에 창조된 사람으로서, 공부할 사람은 공부에 전념을, 직장과 가정에서 역할을 성실하게 이행해야 그 공동체가 축복을 받는다. 게으른 자에게는 그러한 복이 없다.

iii. 믿는 자와 세상 사람들과의 차이: 세상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요, 은사임을 알지 못하고, 그것의 유무에 따라 방자하거나 교만, 열등감/자기연민 속에서 무너지게 된다. 믿는 자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고,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것인지를 고민, 감사할 줄 알면서 활용. 


수직적 은사

i.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예수님으로부터, 성령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점이 핵심. 

ii. 다양성: 인간의 다양한 측면, 인간의 적성과 달란트에 맞게 은사를 배분하셨다. 그리하여 은사가 다양하다. 

iii. 다양성 중의 통일성: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 성령으로 받았다는 것. 다른 은사를 어떻게 주님을 위하여 사용할 것인가

iv. 고린도교회의 특별한 은사는 방언의 은사. 이 방언의 은사를 최고의 것으로 여기고 자랑하였다. 바울은 은사는 자랑할 것이 아니다. 교회의 덕을 위하여 있는 것인데, 방언은 그에 해당하지 않는다. 방언은 하나님의 은사이지만, 개인적 은사이다. 그 내용을 자기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알 수 없는 것. 자기만의 덕을 위한 은사. 남에게 강요하거나 자랑하기 위하여 사용하면 교회 공동체에 분란을 일으킨다. 


은사의 큰 틀

i. 교회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은사인가? 방언은 가장 마지막에 오는 것. 방언은 개인에게 속한 것이기에. 가장 귀하고 축복해야 하는 은사는 그 은사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공동체에서 깨닫게 하는 것. 지혜의 말씀, 지혜의 말씀을 받는 것이 은사의 시작이고, 은사의 중심이다. 방언은 개인의 신앙을 확실성을 갖게 하는 은사. 조용히 혼자 하라. 통변하는 자가 옆에 있을 때에 공동체에서 행하라. 

ii.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어떠한 은사이든지 서로 비교하면서 교회 공동체의 덕을 깨뜨려서는 안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iii. (4-6) ‘성령은 같고’, ‘주는 같으며’, ‘하나님은 같으니’ 

iv. 방언의 은사, 지혜와 지식의 은사를 행할 때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겸손하라. 

v. 그리스도의 한 몸된 공동체에서 ‘내 눈이 이 손가락 하나를 멸시할 수 있느냐’ 모든 것이 합하여 하나로 가야하지 않겠는가? 그리스도, 하나님, 성령님을 향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vi. 바울은 은사는 인정(특별함, 보편적 선물, 눈으로 명백하게 보는 것, 어렵고 힘든 사람을 생각하며 가슴이 뜨거워 지는 것, 이 모두가 은사다 ),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 지음을 받았음을 알고, 서로의 은사를 귀히 여기라.

vii. (7) 유익, 공동의 선(for the common good)을 위하여 주신 것.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덕을 이루는 공동체가 될 것을 위하여 은사가 쓰여져야 한다.

viii. (8-10) 은사들. 가장 중요한 것들로부터 가장 나중에 오는 것. 은사들이 서로 보합되고 상생하여 공동체를 살리는 은사.

ix. (11) 한 성령이 행하시는 것. 성령의 뜻대로. 그 근거와 원천이 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기에 겸손해야 하고, 공동체와 하나님을 위한 것. 직업도 은사다. 잘하는 것. 전문적인 지식인, 직업인이 되는 것도 은사. 생명과 치유, 회복의 역사를 이루며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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