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29 03:46

소망교회 주일예배 2014.9.28. (고린도전서 9:9 - 13)

잔치를 베푸는 사람 : 마태 - 예수님의 제자들 10 -



마태복음 9장


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대한예수교장로회 99회 총회가 소망교회 예배당. ‘그리스도인, 복음으로 사는 사람’이라는 주제. 한국교회를 위한 잔치를 베푼 것. 잔치는 내가 준비하고 받은 축복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고 나의 사랑을 베푸는 뜻을 담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밥 한끼 대접하는 기회가 얼마나 많은가? 


베푸는 사람

i. 다른 사람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 특히 진심으로 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복을 받은 사람이다. 

ii. 예수님의 인생을 보면, 그 분은 베푸는 분, 당신이 갖고 계신 복을 이 땅에서 나누신 분. 제자 2명씩 세상을 향하여 파송하면서 하신 말씀, 마태복음10:7-8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생명과 사랑, 축복, 무엇보다도 복음의 축복을 우리 이웃에게 거저 주라. 

iii. 남에게 주는 것 쉽지 않다. 

iv. ‘내가 받은 것, 거저받은 선물이다. 따라서 남에게도 거저주라’는 태도.

v. 자기연민과 열등감이 있으면 베풀기 쉽지 않다. 자기 자신에 대한 탄식과 끊이지 않는 분노가 있으면, 베풀 수 있는 자리로 나갈 수가 없다. 받는 것은 쉽지만, 베푸는 것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

vi. 잠깐 베풀 수 있을지는 모르나, 지속적으로 베풀고자 하면, 마태 9:13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긍휼한 마음이다. 

vii. 마태 9:13 ‘의인’, ‘많이 가진 자’, ‘높은 자’의 곁에 있기를 원하기 쉽다.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러나 예수님은 낮은 자, 연약한 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 들을 택하시고 만나기를 즐거워 하셨다. 


마태가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

i. 세리였다. 유대인의 적대국이었던 로마제국을 위한 세금을 추출해서 바치는 세무공무원이었다. 자기 동족에게 크게 미움을 받았고, 인간취급을 받지 못했다. 동족의 돈을 수탈하는 자로 여겨짐. 

ii. 유대인은 세리를 창녀와 동급으로 취급. 부정한 사람, 매국노, 약탈꾼, 수전노라는 칭호를 붙였다. 

iii. 세리장 삭개오를 만나신 예수님. ‘자신은 도둑놈’이라는 자각이 있었기에 눅 19:8의 고백, ‘강탈한 것이 있다면 네 갑절로 갚겠다’. 양심이 있었다. ‘돈’은 인생의 불안정 속에서 의지할 만한 것. 힘과 영향력이 있고, 권력과도 같다. 사람들은 돈을 마치 우상처럼 높이고 추구한다. 

iv. 마태의 관심은 돈이었다. 그래서 수고했다. 일중독에 빠져있던 인물. 

v. ‘돈’이란 인간이 휴대할 수 있는 권력이다. 지갑에 돈이 있으면 마음이 놓인다. 돈이 없으면 사람 만나는 것도 꺼리게 되고 소극적이 된다. 돈이 없으면 무력함을 경험한 적이 많다. 자본주의 사회, 시장경제 사회이기에 모든 것은 돈의 숫자로 계산된다. 모든 국가가 경제전쟁을 하고 있다. 돈의 전쟁이다. ‘돈의 전쟁’을 “쩐”의 전쟁이라고도 하는 영화. 사도 바울은 ‘돈을 사랑하는 것인 만악의 근원이다’라고 함. 형제지간의 유산상속 다툼. 돈이 인간관계를 깨뜨리고 있다. 이혼하는 부부의 위자료 다툼. ‘돈’이 있어야 염려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태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vi. 예수님, 제자들, 친구들을 위해서 잔치를 베풀면서 돈을 내놓는 마태. 여러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과거의 마태’가 변화한 것. 

vii. 마태: 자신에게 대하여 질문하기를 두려워했다. 사람들이 자기를 미워하고 저주했던 사실을 인식하고 아파했다. 그럴수록 돈을 더 차지하여 방패로 삼고자 했다. 돈이 자기를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에 예수님을 만난 것이었다. 

viii. 다른 사람은 인간대접 하지 않았으나, 예수님은 마태를 사람대접하였다. 예수님은 세상에 인간대접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서 ‘너도 하나님의 사람’, ‘네게도 소망이 있다’.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네 인생을 주인공처럼 살 수 있다. 나병환자는 ‘나는 부정하다’라고 외쳐야 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의 상처를 친히 만져주심. 소경거지 바디메오가 예수께로 다가가려 하자, 제자들이 가로막았다. 그러나 예수께서 불러 소원을 들어주심.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유대인이 돌로 죽이려고 했을 때, 그 여인의 변호자가 되어, 용서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받은 귄한 존재로 삼으심. 마태가 감동을 받음. 내가 조롱받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는 존재인 것이 기쁘고 감사했던 것. 

ix. 사람이 죽음 앞에 서면 기억하는 것. 지금까지 살았던 인생의 의미, ‘나의 존재로써 이 세상이 축복을 받았나’를 묻고 싶어한다. 이 질문에 스스로 대답할 수 있어야, ‘내가 직장인, 아버지, 어머니, 남편, 아내, 자녀로서 그 존재로서 유의미한 인생이었는가? 개와 돼지는 질문하지 않지만, 인간은 이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x. 마태는 존재의 이유를 깨달았다. 나를 인정하는 하나님, 예수님이 계시고, 나를 통해서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 



마태가 예수를 만나서 얻은 두 가지의 변화


변화 (1): 자기 주도성

i. (9) 일어나 따르니라: 굉장한 결단이며, 용기. 자신의 직업을 내려놓았다. 예수를 믿으면 ‘자기 주도적’이되는가? 예수를 믿으면 수동적인 인물이 된다고 오해하지만, 칼 맑스가 이러한 생각에 대하여 분노하였다. 예수 믿으면 자기 주도적인 사람이 된다. 마태는 사람들의 냉소의 시선이 마음에 꺼려져서 사람을 피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나서 자기 주도적으로 변화되었다. 

ii. 마태는 본래 인생을 미적미적 거리며 마지못해서 살았다. 어쩔 수 없이 살았던 인생. 예수의 calling을 받았을 때, 예수님과 함께 새 인생을 열어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인생의 주도권을 찾게 되었던 것. 삶의 목표가 생겨졌다. ‘네 인생은 네가 주인공이다’, ‘나와 함께 이제 새롭게 인생을 시작해야 한다’, 주님과 함께 인생의 새로운 가치관과 목표를 향해 사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 이러한 가치관과 목표를 얻지 못하면, 예수께 모든 것을 맡긴다고 하면서 무기력한 삶을 살게 된다.


변화(2) 축제의 인생으로 변모: 예수님을 초대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i. 움켜진 것들을 풀어헤쳐 열어, 예수 그리스도, 제자, 그리고 친구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베풀어 기뻐 즐거워 하는 삶

ii. (10) 나만의 생각에서 공동체의 생각으로, 공동체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셨다.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을 위해서 나의 시간, 돈, 달란트가 쓰임을 받을 때에 축복이 된다. 

iii. 내가 움켜잡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돈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 네 일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 업적보다. 그것은 네 자신이다’를 깨우치게 하심. 

iv. 마틴 루터: 세 종류의 회심이 필요하다. (Three conversions are necessary): 마음의 회심, 생각의 회심, 그리고 돈지갑의 회심이다. (heart, mind and the purse) ‘네 돈, 일이 너를 다스리게 하지 말라’, ‘네가 돈과 직업을 다스리라’. 우울하고 얼굴을  살면 안된다. 네가 가장 소중하니까 네가 소유한 달란트, 일, 돈을 하나님 앞에서 사용하라. 

v. 예수 믿는 것은 수동적으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도적으로 내 인생을 새롭게 열어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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