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28 07:33

소망교회 새벽기도회 2014.9. 4th Week (고린도전서 8:7 - 10:22)

22일 Mon. 고린도전서 강해(25)



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악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9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로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교회 공동체 안에는 지식이 많은 사람과 지식이 적은 사람이 있다. 신앙이 성숙한 사람과 신앙이 미숙한 자,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있다. 오늘의 말씀은 신앙이 오래되고, 복음도 알고 신앙의 직분도 있는 사람에게 주고자 하는 교훈이다.



갈등

i. 갈등과 분쟁의 사회, 그러한 상황으로 몰고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갈등이 있어야, 내 몫을 보여주고, 자신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에. 

ii. 때로는 갈등이 필요하다. 옳고 그름의 분별을 위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필요., 그러한 과정을 통해 변화화와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의 주춧돌이 될 수 있다. 

iii. 그러나 갈등이 ‘분리’의 조장으로 흘러가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iv. 경제적으로 중산층보다 하위의 계층, ‘가난한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을 세워주는 사회가 좋은 사회. 그러나 그러한 계층의 증가의 문제로 인해 국부가 낮아지게 된다. 나보다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면, 지식이 많고, 신앙이 오래되었으며 교회 안에서 직분이 있는 사람은 공동체 내의 ‘연약한 사람’을 찾아서 세워주는 것, 그것이 바로 ‘가진 자’의 축복인 것. ‘없는 자’의 불평과 ‘있는 자’의 자랑이 표출되는 공동체는 문제가 있다는 증거다. 


공동체의 덕목

i.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자세.

ii. 8:7 ‘지식’: 말씀과 신앙에 관한 지식을 의미한다. 근본적인 지식을 알지 못하고 신앙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신앙입문자’를 뜻한다. 

iii. 신앙지식인들이 ‘신앙입문자들’을 얕보고 깔보는 행태로 인해 교회 공동체의 갈등이 증폭되었다. 

iv. 신앙입문자는 예수를 믿기는 하지만, 과거의 우상숭배의 습관, 나쁜 습관에 아직 젖어있다. 이러한 습관을 물리치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런 연약함을 이해해주고 돌봐주어야 한다. 

v. 우상숭배에 바쳐졌던 음식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의 문제에 대하여 교회가 분쟁에 빠지게 되었을 때, 믿는 자들의 올바른 태도는: ‘음식’은 구원론적인 의미가 없다. 음식은 입으로 들어가면 다 소화되어서 배설되는 것. 우리가 먹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거리끼지 말고 먹으라. 이 문제로 하나님 앞에 바로서는 문제가 결정되지 않는다. 그런 문제로 사람을 정죄하거나 비판하지 말라. 


신앙지식인이 ‘자유자’된 자로서 해야 할 일

i. ‘사랑하는 자유’다. 하나님만의 종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하나님 나라의 꿈을 새기며 섬기는 것. 가정, 교회 공동체에서 섬김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 

ii. 연약한 자에게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면, 네 자유를 유보할 수 있어야 진정한 자유자가 되는 것다. 예수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당신이 갖고 계셨던 모든 자유를 유보하셨다. 무한하신 분이 유한한 존재를 입으셨다. 33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 속에 당신의 자유를 유보하셨다. 단 한가지를 위해. 인간를 사랑하시기 위해, 인간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iii. 나만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살리는 자유

iv. 주님께서 그 연약한 자를 위하여 당신의 자유를 모두 포기하셨다면, 우리 이웃을 위해 자유를 유보할 줄 알아야 주님께서 보여주신 자유와 상응하는 것이다.

v. 하나님의 자유의 기쁨이 선물로 받은 것임을 깨닫는 것.

vi. 자유롭지 못한 사람을 아우룰 수 있는 자유. 다른 사람을 살리고 세워주는 자유다. 방종하는 자유가 아니다. 



무엇이 복음의 핵심인가? 예수님 말씀이고, 곧 예수님 그 분이시다. 예수님의 생애와 모습 속에 하나님이 우리는 사랑하시는 모든 자리에 있다. 생명을 위해,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자유를 유보하신 예수님. 가장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도 아내와 자녀를 위해 자신의 자유를 유보할 수 있어야 가정을 살릴 수 있는 것. 교회의 신앙있는 자는 연약한 자를 돌아볼 수 있는 자유자가 된다면, 예수를 닮아가는 것이다. 




23일 Tue. 고린도전서 강해(26)



고린도전서 9장


1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3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발명할 것이 이것이니

4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7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8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도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종종 비난과 조롱을 받았다. ‘네가 정말 사도냐, 네가 정말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를 목격하였느냐, 네게 그만한 영적인 권위가 없지 않느냐, 네가 전하는 복음도 진실하지 않은 것 아니냐’. 그 수많은 비난에 대하여도 복음을 증거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복음이 참되게 증거되도록 하기 위함. 그 모든 비난을 감수할 수 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는 내가 너희에게 말씀을 가르친 자로서, 사도됨을 신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삶 속에서 미치는 영향력을 바르게 깨닫도록 하라.



‘자비량’

i.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천막을 치는 직업). 평일에는 천막치기로 생계유지. 

ii. 디모데와 같은 사역자가 동참할 때는 교회의 도움을 받았다. 

iii. 사역초기에 일부러 도움을 받지 않았던 이유는 복음을 증거함으로써 경제적인 이득을 얻고자 하는 가짜 사도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복음 전도자의 권리 (9:9-11)

i. 구약의 전통. 레위인과 제사장들에게는 교회의 십일조를 통해 경제적인 도움을 받은 것. 말씀을 제약없이 증거하도록 하기 위한 것. 모세의 율법에 따라, 곡식을 떠는 소에게 허락되었던 곡식 낱알. 포도 수확시에 땅에 떨어진 포도 낱알도 길 가는 나그네를 위하여. 

ii. 바울을 ‘자유자’, ‘사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목격한 자’로서 인정하지 않고 비난하고 적대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iii. 최소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느냐.

iv. 9:3-4 헌금으로 교회 운영, 목회자들에게 사례, 구제, 다음 세대 양육. 성도는 돈 내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 일하면서 돈을 받는 사람이 목회자. 성도들의 하나님께 충성된 마음을 귀하게 보시고 축복하실 것이다.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빚진 자다. 기도, 사랑, 물질(헌금)의 빚.


바울이 누리지 못했던 권리

v. 게바를 비롯하여 여러 사도들이 아내들과 동행하여 선교와 전도의 사명을 함께 감당했지만, 바울은 그러한 권리를 누리지 않았다. 

vi. 바울은 초대교회 시대의 중심인물이 아니었다. 게바, 야고보와 요한이었다. 바울은 그 당시에 인정받지 못했던 아픔과 고통이 있었다. 

vii. 바울이 다른 사도들과 달리, 일하면서 복음을 증거했을 때, 이를 사람들은 사도로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근거로 삼았다.



말씀을 바르게 증거하는 교역자들을 존중해주는 것은 축복이 된다. 교역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증거하는가, 바울과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가? 이것인 원칙. 돈과 명예욕심, 교회 사유화하는 못된 모습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귀한 종으로 교역자를 세우고, 하나님의 축복을 함께 나누는 사람으로 교회 공동체, 말씀을 증거하는 자, 말씀을 듣고 배우는 자가 모두 복을 받고 살아나는 공동체가 되어야. 말씀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내게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충성하는 것, 이러한 신앙을 통해 한국 교회가 풍성한 복을 누릴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고, 하나님의 종들을 위해 기도하고, 내게 주신 삶의 축복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고 신앙생활을 기쁨으로 감당하라. 




24일 Wed. 고린도전서 강해(27)




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맡았노라

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대표적인 믿음의 선배, 사도 바울의 열정 

i. 바울,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ii. 가슴에 뜨거운 열정이 있었다. 사랑의 열정이 있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랑할 때도 사랑의 열정이 있다는 것이 아름다운 것. 다만, 그 열정의 대상이 명백하지 않으면 가정의 파탄과 저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랑의 열정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바울의 열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향하여, 모든 사랑의 열정을 쏟아붇고 있다.

iii. ‘복음’이라는 문자가 아니라, 문장도 아니고, 교리도 아니었다. 사도 바울이 품었던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던,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 복음의 내용이었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향한 열정이었다.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을 끊임없이 평생 품고 살았다. 

iv. 이 열정은 무엇인가? 무엇에 대한 것? 나 자신의 욕망, 잘못된 사랑의 대상에 대한 것? 예수님에 대한 열정 때문에 가정과 직장, 교회, 주어진 삶의 모든 사명을 감당하는 충성이 있는가?

v. 바울의 열정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 그 사랑하는 예수를 닮아가는 마음이 있었다. 부부가 닮아가는 이유는 함께하는 ‘사랑의 정’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를 닮아가는 이유는 ‘우리가 예수 안에, 예수가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회심 이전의 바울을 ‘칼 같은 사람’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들을 핍박했었던 바울은 진리에 대한 열정, 자신의 삶에 대한 명백한 구획이 있던 사람, 진리와 공의의 사람인 것처럼 보였지만, 차디찬 냉기가 마음에 흐르는 사람이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자신과 같이 완악하고 차디찬 자신에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으로 부터 깨닫게 되었고, 그 성품이 남을 용납할 줄 알고, 함께 어울릴 줄 알며, 율법으로 정죄하던 삶으로부터 복음으로 연약한 자를 가슴을 품을 수 있는, ‘사랑의 사람’이 되었다. 

vi. 바리새인 중의 바래새인, 율법에 흠이 없는 자. 이 율법의 기준에 따라서 옳고 그름을 재단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었지만, 자유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위해서 모두 그 자유를 유보하신 것과 같이,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자유를 유보하겠다. 복음의 바른 증거가 내게 축복이다. 나 자신의 권리보다는 고린도교회가 복음 안에서 복 받는 것을 기뻐했던 바울. 

vii. 이러한 바울의 변화는 일회성 과시가 아니라, 그의 삶에서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이틀, 한 달, 일년, 그 평생에 지속되었던 것은 ‘사나 죽으나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교회 공동체가 살아나면 내 생명이 아깝지 않다’는 바울의 고백. 

viii. 입으로, 손으로만 편지를 쓴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서 희생할 준비가 되었던 헌신된 자, 바울.


바울의 자비량 선교

i. 복음을 증거하는 자로서, 교회를 섬기는 자로서 재정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받을 권리가 있으나 재물에 대한 탐심에 관한 오해를 받게 될까 우려하여 받지 않았다. 이 진정한 마음을 이해해주어야 한다. 이것으로 책잡아 비난하지 말라. 

ii. 바울의 자비량 선교가 실라와 디모데가 그 소식을 듣고 찾아왔고, 빌립보 교회가 바울의 자비량 수고와 전도 소식을 듣고 후원을 하게 되었다. 

iii. 빌 4:14-16 빌립보 교회가 재정적 후원을 하게 된다. 그로 인해 바울이 자비량 선교를 중단. 


복음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

i. 곡식을 떠는 소,  

ii. 제사장과 레위인은 자신의 분깃이 없이 성전의 헌물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 하나님의 제단을 바르게 섬기는 가에만 헌신하는 사람들. 

iii. 복음을 전하는 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두 사람씩 파송할 때, 전대와 음식을 가지고 가지 말라. 빈손으로 가되, 환영하는 자의 집에 거하라. 받아들이지 않으면 축복하고 다른 집으로 가라. 

iv. “빈 손으로 가라”: 너는 오직 먹고 마실 것을 근심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관심 가지면, 하나님께서 먹고 마실 것을 제공하실 것이다. 

v. 김지철 목사님: 작은 아버지께 대학 졸업하게 될 시기에 신학을 한다고 고백. ‘직접 신학을 하기 보다는 네 자신의 달란트를 가지고 교회를 섬기는 길이 얼마든지 있다’. 김지철 목사님은 복음을 알게 되자, 신학을 통해서 복음을 증거하고자 결단하게 됨. 작은 아버지의 말씀, ’꼭 기억할 것은 네가 돈을 벌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네가 복음을 위해서 살면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다’.

vi. 복음을 증거하는 자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직 복음에만 전념하고, 거기에 네 인생을 걸어라.

vii. 목회자와 교역자의 올바른 삶의 태도: 먹을 것을 먼저 생각하면 아무것도 안된다. 복음에 전념하면 성도들을 통해서 채워주실 것이다. 

viii. 15-16 오해와 상처를 피하기 위해서 / 내 자랑하는 것 헛된 데로 돌리지 않도록 / 복음 증거는 내게 주신 사명이다. 

ix. 값없이 전하는 복음, 전심으로 복음을 위해서 살라.



교역자와 사역자들을 귀히 여기고 존중해야, 그 분들이 말씀에 모든 것을 걸 수 있도록 기도. 복음을 증거하는 사역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만이 인생의 첫 번째, 마지막 관심이요, 모든 생명을 걸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그 교회 공동체가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역사가 그 공동체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 바울의 열정과 헌신은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25일 Thu. 고린도전서 강해(28)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바울은 소중한 신앙의 선배. 가슴에 열정이 항상 있었다. 복음 때문에 가지고 있었던 열정. 



열정의 조건과 원칙

i. 23 그의 모든 것은 복음을 위한 것. 사나 죽으나 풍요롭거나 결핍되었거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때문에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었다. 

ii. 참된 지혜

iii. 절제할 수 있는 능력

iv. 열정은 용기있는 사람이 가지는 것. 직장, 사업, 연애와 사랑, 그 모든 일에 용기가 있어야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v. 그러나 열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지혜가 부족하면 열정이 왜곡되고 지속성이 깨어질 수 있다. 열정의 명백한 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지혜를 필요로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자유

i. 율법 아래에 있는 유대인: 율법을 다 지켜야, 예수 믿음을 조건으로 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 율법 아래에 있지 않던 이방인: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ii. 바울의 선포: 율법보다 더 큰 것이 예수 그리스도이고 복음이다. 율법을 행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예수 그리스도이고 복음이다. 자유의 복음을 선포. 예수를 믿는 것 안에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가 있다. 구약의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도. 할례,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하는 율법준수에 관한 정체성을 뛰어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다. 놀라운 자유의 선언. 사탄, 율법의 정죄, 세상의 억압 등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 

iii. 그러나 유보될 수 있는 자유이다. 예수와 복음을 위해서. 19 - 20

iv.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하나님의 자녀됨의 축복을 위해서 네 자유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바울의 원칙 - 참된 지혜 (1) 

i. 참된 지혜는 자기 자신의 자유를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세우는 하나님의 마음을 갖는 것. 22

ii. 본질 훼손에 의한 변질이 아니라, 복음 때문에 변화가 된 것이다. 할례를 받은 것 & 받지 않은 것은 모두 아무 것도 아닌 것. 근본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용서와 은혜의 역사를 깨달음으로써 구원을 받는 것이므로 다른 것들은 부수적인 것이다. 논쟁 필요하다. 기독교는 논쟁의 종교. 예수께서 이 땅에서 갈등을 일으키셨다. 갈등이 없으면 평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해결해야 평화를 성취하는 것. 때로는 부딪혀야 한다. 문제는 주변적인 것으로 싸움을 해서 본질을 상실하는 것. 본질을 붙들고 주변적인 것을 양보하고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iii. 세상 사람들이 논쟁하는 주변적인 것들에 관하여는 연약함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움을 받고 한 생명이 살아나는 것을 주께서 원하시는 것이다. 교회 내의 갈등도 본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과 한 생명이 살아나는 것)을 벗어나서 주변적인 것에 원인을 두고 있는 것이 문제다. 

iv.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 유보, 약한 자와 고생하는 자들을 끌어안아 품으신 것은 ‘너도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것을 알게 하신 것. 바리새인들은 ‘나만 잘났고, 너희는 모두 저주받을 사람이다, 내가 최고의 선택권을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v. 초대교회 협약: 각자 부름을 받은 대로 바울은 이방인 전도, 베드로는 유대인 전도. 이것은 하나의 구원사적인 구분이고, 실제로는 베드로도 이방인을, 바울도 유대인에게 복음을 증거했다. 핵심은 서로 한 사람이라도 구원의 자리로 초청하는, ‘복음 증거’가 그들의 근본적 생각. 공동체 또는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은 실제로 연결되어 있었기에 함께 복음 중거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바울의 원칙 - 절제 (2) 

i. 용기와 열정이 한 가지를 놓치면 스스로 파괴된다. 그것은 절제다. Self-control 

ii. 절제가 없으면 열정이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용기는 만용에 불과할 뿐이다. 

iii. 하나님이 쓰실만한 온전한 사람으로 세움을 받을 수 있다. 

iv. 24 - 25 절제는 삶을 풍성하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 공부와 사업 

v. 용기와 열정이 많은 사람이 중도에 무너지는 이유는 자기 통제 및 절제가 되지 않아서 과잉으로 인해서 축복을 놓치게 되는 것.

vi. 26 달음질 하는 자들 & 다투는 자들: 목표가 있어야 절제할 수 있다. 목표가 없으면 절제가 불가능하다. 인간의 내면의 정욕으로 인해, 절제가 되지 않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목표가 있어야 절제할 수 있다. ‘썩지 아니할 면류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목표다. 

vii. 목표는 방향을 설정한다는 뜻이다. 

viii. 링 위에서 다투는 사람은 자신과 다투는 자의 모션, 움지임을 정확히 파악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ix. 자녀에게 권면: 네 인생의 목표, 공부하는 이유, 공부의 유익/ 사업, 교육자, 법, 의사 등의 모든 전문가들이 인생의 목표를 설정해야 자기 통제가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x. 방향이 정해지면, 이제 속도가 중요하다. 각자 다르다. 걸어가는 사람, 뛰어가는 사람 등. 각자의 삶의 성품과 자율에 따라 정해지는 것. 다양해도, 인생의 목표와 목적을 잊지않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xi. 27 ‘내 속의 악’, ‘절제되지 않은 정욕’을 인식했기에, 자기를 쳐서 복종할 줄 알아야, 이 길이 승리의 길, 축복의 길이 된다.

  


어떠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열정이 있는가? 이 열정을 어떻게 표출할 것인가? 지혜와 절제가 있는가? 새벽에 일어나서 시작한 하루, 이제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26일 Fri. 고린도전서 강해(29)



고린도전서 10장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모두가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모두가 같은 신령한 음료를 뒤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니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이러한 일은 우리들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9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여러 문제들, 분파, 음행, 서로 자랑하며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영적 열광주의에 빠져서 악을 합리화/정당화 하였다. 믿음의 삶이 지속되고 하나님께서 영광받지 아니하면 그것은 가짜 믿음이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예배, 기도, 찬양, 헌금도 드리는, 그런 모습이 예수 믿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우상 숭배를 하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훼손하는 그런 잘못된 행위를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시험하면 하나님께서 네게 주신 구원을 철회하실 것이다. 구약과 신약 모두 마찬가지의 교훈이다. 



10:5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하셨던 약속을 기억하시고 고통 중에 부르짖는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를 들으셔서 ‘출애굽’과 ‘가나안 땅으로의 여정’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의 사건. 그러나 하나님을 망각하고, 애굽을 떠올렸다. 우상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우상 숭배에 빠지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몇 번의 회개의 기회를 주셨다. 그러나 죄의 반복에서 떠나지 않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그들을 선택하시고 그들의 약속을 이행하시고,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슬프게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 악

i. 우상숭배: 모세가 잠시 하나님의 계명을 받으러 떠난 사이에, 인내하지 못하고, ‘모세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자’. 7

ii. 음행: 하나님께서 선택하고 거룩하게 하셨는데, 음욕을 품고 이방 여자들과 음행을 행함. 8

iii.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나님을 존중하고 사랑하라. 그리하여 멸망의 길로 들어가지 말라. 9

iv. 원망: 감사하지 않고, 내게 주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지 못하고 끊임없이 불평하고 원망. 잠시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양하다가, 어려운 순간이 오면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평. 우리의 삶에 넘어짐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반복되고 즐겨하며, 양심의 꺼리낌을 상실하는 죄. 이 시대의 교회와 영적 지도자의 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상실하는 것. 악을 행해도 방자해지며, 못된 행위를 해도, 남이 보지 않으면 악을 즐겨한다. 넘어짐이 없을 수는 없으나, 우리가 넘어질 때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다. 시험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 악을 즐기고, 하나님을 이용하고 도용하며, 악을 행하는데 빙자한다. ‘점을 보는 사람들 대부분이 크리스찬이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왜 가는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꿋꿋하게 나아가지 않고, 점을 보면 하나님은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 ‘오늘의 운세’ 등을 보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주실 축복을 기대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얼마나 우상 숭배가 많은가? 이미 이 시대에는 음란한 시대가 도래했다.


시험과 위기

i. 인생에서 피할 수 없다.

ii. 하나님을 바라보고 위기를 이겨나가라.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주시고, 도전할 힘, 위기를 넘어갈 자리를 주신다.

iii. 넘어지면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일어나라. 넘어질까 조심하면서 하나님의 길을 가라.

iv. 신앙이란 용기이자 결단이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절연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포기하지 않겠다’.


축복은 철회될 수 있다

i. 홍해를 건널 때 세례를 받은 것이었고, 하나님께서 만나와 반석의 물 (신령한 음식과 음료)을 베푸셨다. 따라서,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은 성만찬에 참여하는 세례교인이었다. 

ii.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길을 끊으셨다. 가나안에는 모세의 제자 중, 갈렙과 여호수와, 그리고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인가?

i. 신앙은 아주 쉬우면서도 가장 어렵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쉬우나,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 결단, 인내, 용기가 필요하고 때로는 내 삶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한 가지만 생각하라.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막 11:10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기뻐하시면서 확증하신 말씀, ‘내 아들이요 내가 너를 기뻐한다’. 하나님의 자녀된 자가 명백한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이것의 삶의 목표요 방향인 것이다. 

ii. 시편 147: 10 여호와는 말이 힘이 세다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신다.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기뻐하신다. 요 8:29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혼자 두지 않으신다. 삼상 2:30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iii.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반복되고 즐기고 습관이 되며, 거기에 멈춰서는 신앙이 되어서는 안된다. 

iv. 내 안의 죄악을 털어내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녀가 되기를. 




27일 Sat. 고린도전서 강해(30)



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15 나는 지혜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18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19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22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우상숭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권면.


판단의 위임

i.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세움 받기를 원한다. 

ii. ‘지혜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네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여 내 말이 옳은 말인지 판단해보라. 

iii. 판단할 수 있도록 위임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의 말이 절대적으로 수용될 수 있다. / 중고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너 이렇게 하라’라는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이미 독자성이 형성되어 있기에. 

iv. ‘음행을 피하라’: 우상 숭배의 문제와 같이 피해야 한다.


피해야 하는 이유

i.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넘어서고자 하는 교만함이 있는 것. 하나님을 노하게 하시는 것 = 하나님이 시기하시게 하는 것. 피조물로 만든 썩어 사라질 것에 정성을 쏟는 것이 옳은 것이냐.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는 것이며, 인간의 인간됨의 자랑스러움을 빼앗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질투/시기가 유발된다. 

ii. ‘질투’: 좋은 점이 있다. ‘내가 부족하고 연약하며 위기 속에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상대적인 결핍를 인지하고 분발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기하는 상대방을 파괴하는 쪽으로, 멸망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시기심의 핵심이다. 그러한 위험성이 있다. 나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올바른 시기짐의 전개이다. 

iii. 하나님의 시기심은 우리를 살리고, 바르게 되고, 참다운 인간성의 자유를 누리도록 축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질투’하신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배를 드리며, 존중을 드려야 하나님을 믿는 자도 존중을 받는 것이다. 

iv.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이유: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함 자리로 이르도록 하기위한 거룩한 역사. 하나님이 질투하지 않으시면, 우리가 멸망의 길을 가도, 잘못된 길로 가면 우리는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끊어내시는 것. 하나님께 불순종할 때, 징계를 내리셔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 자녀가 부모의 올바른 뜻에서 벗어날 때의 부모님의 질투와 같다.  


우상

i. 과거 - 보이는 피조물의 형상/ 현대 - 사상, 이데올로기, 사람, 습관, 아이돌 = 하나님 이외의 것으로 인생의 만족을 구하는 것. 대중문화 자체를 즐기는 것에는 잘못이 없으나, 모든 세대가 대중문화 속에 빠져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놓치는 것.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온전한 만족감을 놓치는 것, 낙심하며 실망하며 자신의 삶을 상실하는 것이 문제. 

ii. 북한은 사람의 우상, 주체사상의 우상 속에 빠져있다. 북한의 온 백성이 고통을 받고 있다. 예수 믿는 것이 자유인 이유. 하나님만 섬기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한 기쁨을 누릴 수 있고, 하나님 앞에 두려워 하므로 절제하고 인생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살 수 있는 것.  

iii. 하나님을 대체하여 세상 속에서 만족감을 얻고자 하는 것이 우상 v.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얻는 것이 신앙.하나님을 사랑하며, 남편, 아내, 자녀, 직업에 만족하는 것은 정상. 하나님을 잊고 세상 속에서 만족을 얻고자 하는 것이 우상. 예수 믿는 것은 산 속에서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확대해가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역사이다. 

iv. 우상숭배 문제의 핵심은 먹고 마시는 것. 우상숭배의 제사상 앞에서 먹고 마시며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서 만찬을 하고 식사를 하는 것은 에수님과 교제하는 것. 그리스도의 이름이 없이 세상의 제물로 바쳤던 음식으로 먹고 마시는 것은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다. 


예수님과의 교제와 귀신과의 교제가 상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i. 19 - 21

ii. 예수의 이름을 세상으로 확장해야, 세상에 의하여 변화가 되면 안된다. 세상을 변화시킬 자인 것이다. 

iii. ‘내가 믿음의 주인공이다’ 늘 인식.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확인. 나에 의하여 내가 속한 공동체가 변화되고, 하나님 나라의 자리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 사명이요 자랑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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