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15 05:17

그리스도인과 이념논쟁, 복음이냐 이념이냐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말씀시리즈     설교_김형국 목사

06월 21일_그리스도인과 이념논쟁, 복음이냐 이념이냐
06월 28일_그리스도인의 현실인식.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07월 05일_세상 속에서 새 여행을 시작한 사람들- 세례식



그리스도인과 이념논쟁, 복음이냐 이념이냐


서론


목사님들과의 회동에서 듣게된 두 가지 일화. 어느 한 교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한 영향력에 대해서 설교 내용 중에 잠시 다루었을 때에, 예배 중에 몇 분이 그 자리에서 일어서서 걸어나 나가셨던 사건도 있었고, 또 한 교회에서는 서거가 있었던 그 주와 그 다음 주의 설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었는데, 어떤 형제가 헌금봉투에 '한국사회에 이렇게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교회에서 이에 대하여 한 말씀도 없어서 저는 교회를 떠납니다'라는 메모를 넣어서 목사님이 우연히 읽으시고 놀랐던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나들목교회에서도 서거 사건에 대해서 설교 시간에 다룬 적이 있었다. 교회에서는 이러한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서 다루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좌'나 '우'로 속할 것을 강요하고 그러한 딱지를 붙이는 데에 익숙하다. 한국 교회는 사실 이러한 이념논쟁의 한 가운데에 있다. 여전히 냉전이데올로기는 현대사회 한반도에 남아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한국 기독교인들은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한국 기독교와 이데올로기와의 역사적 관계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이데올로기와 한국 교회

가) 해방 전

● 1919년 3.1 운동 - 일본 제국주의 하에서 생존의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 가운데 한국 기독교는 희망이었다. 한국 기독교는 반제국주의 및 민족주의를 신앙적 차원에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였다. 독립운동 참여자들 중에 기독교인은 주도적 역할.

● 탈정치적 선교사 -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탄압이 교회에 영향을 미치게 되자, 미국 선교사들은 민족주의 이념의 영향을 배제하고자 탈정치화 추구. 청년 기독교인이 고민하다가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사회주의로 흘러가게 되었다. 이동휘(교회 전도사)와 여운형(신학 공부를 하였음)은 조선 사회주의를 이끌던 사람들이었다. 

● 1925년 조선 공산당 결성 - 조선 공산당은 기독교가 반민족주의라는 이유로 기독교를 반대하기 시작. 이로 인하여 갈등이 촉발되기 시작. 기독교인들을 '일본 앞잡이'라고 하며 살해 및 탄압. 보수 기독인이 이에 반발하여 길선주와 같은 분은 공산주의자들을 '말세의 징조', '사탄'이라고 비난하였다.

이러한 기독인 박해로 인해 1932년도 (한반도 기독교 대표단체) 조선 예수 연합공의회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공식적으로 반대. 하나님의 뜻에 맞지않는 다는 이유로.


나) 해방 후와 6.25 전쟁 전후

● 김일성 정권 출현 - 친일세력의 청산과 농지개혁을 통해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려고 하였다. 기독교 60%가 북쪽에 거주. 토지개혁을 이유로 토지를 박탈하고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기 시작하여 윤하영, 한경직 목사님을 중심으로 기독교 사회민주당을 결성하여 정치적으로 저항하려고 했으나 와해되고 말았다. 해방 후 3년동안 신앙으로 인한 박해, 계속적인 저항으로 박해를 받다가 기독교인들이 대거 월남하게 됨.

● 기독교인 대거 월남
북쪽 지역의 20여만 명의 신자 중에 7~10만명이 월남하게 된다. 북쪽에서 토지가 박탈되고, 투옥과 죽음을 경험한 상태에서 월남을 하게 된 것이다. 북한의 공산주의가 유물론을 기초로 하며, 종교는 아편이라는 무신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으면서 박해를 가했기 때문에 월남 기독교인들 눈에는 북한 공산당은 사탄으로 이해될 수 밖에 없었다.  

● 반공 친미의 이승만 정권
남쪽에서는 신탁문제가 있었다. 남과 북이 각자 정부를 세울 것이냐의 논의도 있었다. 중도 우파 또는 중도 좌파들은 좌우합작 정부를 세우려고 했지만, 남쪽의 기독인들은 그들이 공산주의의 실제를 알지못하는 무지 속에 있다고 여겨서 이러한 움직임을 배제하고 남한만의 이승만 정권을 설립.

● 6.25 전쟁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손양원 목사님 순교. 공산주의에 의하여 거의 박멸되다시피 되었다.  한국교회의 반공주의는 철학적 사유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역사이다. 

오늘날까지도 북한 공산주의는 '악마', '사탄'으로 이해되고 있다.

● 전쟁 후 미국의 막대한 원조 물자
1950~1954년간 미국 장로회선교회, 감리교를 통해 막대한 원조 물자가 한국에 공급되었다. 이로 인해 남한의 기독교인들은 북한 공산주의로부터는 생명의 위협을 경험한 반면에, 미국으로부터 한국사회의 재건에 필요한 큰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미국을 매우 우호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


다) 군사독재 시절부터 현재

● 군사독재 시절 -  군사독재를 한국 기독교가 용인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군사독재가 공산주의보다는 낫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공산주의, 빨갱이를 막는 군사독재를 지원하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조찬기도회를 통해 군사정권을 축복했다.

옛 세대들이 '빨갱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그냥 가볍게만 여길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민주화 운동은 용공적이라고 정부가 탄압하였다. 수많은 간첩단 사건이 있었지만, 그 중에 적지 않은 사건들은 조작된 것이었다. 이 시기에 반공주의는 거의 신앙의 수준으로 내재화되기 시작한다. 진보진영이 반공주의를 극복해보고자 하였으나 한국 교회에서 소수였기 때문에 한계에 부딪힘.


● 민주화 시절 

그러나  더 큰 혼란이 있었다. 90년대 공산주의 몰락후 냉전 이데올로기는 해체되고 있었으며 민족주의가 부활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에 남북대화 및 화해분위기가 조성되었으나 반공주의에 물들어있던 한국 기독교는 이러한 현실을 수용하기 힘들었다. 이 상황을 공산주의가 다시 적화통일을 꾀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강인철 "반공주의가 사회 전체적으로 해체되는 수순을 밟고 있었으나 오히려 이 시기에 개신교 반공주의가 더 강화됨."

"한국 보수 기독교는 평화통일 보다는 멸공통일에 더 익숙하고, 평화 공존보다는 흡수 통일을 더 선호하며, 화해 협력보다는 고립 붕괴를 무의식적으로 희망하는 경향을 갖는 전투적 유신론에 입각한 기독교적 승리주의, 힘에 의한 통일론, 혹은 증오의 영성에 더 깊이 고착되어 있다." (이문식, 한국교회의 평화의 영성에 대하여, 5)


● 2000년 이후 정치세력의 움직임

극보수적인 지도자들이 한국사회가 좌파에 의하여 적화통일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조성하면서 교회를 좌우의 이념갈등에 아주 적절한 일꾼으로, 전략적 그룹으로 여기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인물은 조갑제. 

조갑제 (극우 보수 언론인) "그래도 한국에는 잘 조직된 거대한 반공 보루가 있습니다. 전인구의 30%나 되는 개신교 세력과 약 70만명을 헤아리는 군대가 있다" (2000, 자신의 홈피)

조갑제는 기독교 궐기론을 주장, 2003년 나라와 민족을 위한 평화기도회의 주요 인물로 등장, 3.1절 친북반미좌파 종식국민대회 등을 중심으로 보수 기독교인들을 결집. 

2000년도에는 보수 기독교인들을 정치적으로 선동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그 반대편에서는 진보주의자들이 "예수는 사회주의자였다"라는 단순논리를 들고 나왔다. 이들의 영향은 크지는 않았다. 

이러한 대립이 바로 현재 한국사회의 자화상이다. 성조기와 태극기를 들고 시청 앞에 모여 '반북,친미'를 외치고 있는 한국교회의 슬픈 모습이 위와 같은 연원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떤 대통령이 '좌파 대통령이다'라고 하면 교회는 더 이상의 고민없이 자연스럽게 그를 '악마'로 이해한다. '공산주의자다', '사회주의자다', '좌파다' 라고 하면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한다.



2. 이데올로기의 성격


가) '이데올로기'의 어원 - 계몽주의 시대에 출현
1789 프랑스 혁명

나) '이데올로기'의 뜻
이데올로기는 '철학'과 같은 뜻이 아니다. 철학은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와 의미 등을 사유하는 것이다. 반면에 이데올로기는 비판적 사유를 넘어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그것에 헌신하고 행동하는 것을 요구한다.

다) '이데올로기'의 성격

이데올로기 자체가 종교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우트바르트(Gooudzwaard), 현대 우상 이데올로기 (Idols of ou Time), IVP, 26-28
(1) 세워 놓은 목표가 비상한 중요성을 갖는다. - 고상하고 선명한 목표 "이렇게 하면 잘 살게 된다"
(2) 수단이 전혀 제약 없이 활동한다. - 목적을 위한 모든 수단이 정당화된다
(3) 목적이 참된 가치 기준과 규범을 왜곡시킨다. - 목적의 중요성 앞에 선한 규범이 목적을 중심으로 재편성된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기본적 권리들이 재해석 된다.
(4) 목적은 새로운 수단들이 제시하는 법률에 적응할 것을 요구한다.
(5) 목적이 자체의 거짓원수를 만들어낸다. (윗책, 26~27) - 이 목적에 따라오지 않는 자는 '적'일 뿐이다. 반동분자를 창출. 여기서 증오의 태도가 나온다. 그러한 반동자를 타도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는 종교의 대체물이며, 그 시작부터 마귀적인 것이다" (윗책, 20) - 이데올로기를 통해 세상을 보게된다. 하나님이 할 일을 이데올로기가 대신하게 된다. 한국 교회는 본래 하나님만을 섬기는 교회였는데, 이데올로기가 들어오면서 우파나 좌파이든 이데올로기가 하나님처럼 여겨지게 되고 증오 감정이 나타나게 되었다. 

하나님과 이데올로기를 겸하여 섬기는 한국교회. 문화 속에 스며든 이데올로기를 자기 사유과정 속에서 무조건적으로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


3. 무엇이 '우리'를 규정짓는가?

갈 3:26 여러분은 모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27 여러분은 모두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28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가) 1세기 교회의 문제와 우리의 문제

(1) 1세기 교회의 문제는 유대인과 나머지 사람들간의 관계가 주된 문제였다. 

롬 9~11장 유대인 예수와 헬라인이 수용되어 교회로 들어오는 것을 유대인들은 용납할 수 없었다. 민족문제.

고대 경제를 지탱하던 노예제도였는데, 이렇나 계급문제, 남녀차별의 문제가 있었다. 그 시대는 그러한 차별문제가 인식되지도 않을 정도로 남자 중심주의였다. 고대 사회는 여자를 인간의 레벨로 올려놓지 않았다.


(2) 오늘날 우리의 문제
① 다민족사회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준비 안 된 한국 교회 
② 노예제도는 없지만 경제적 양극화와 그로 인한 대물림. 
③ 양성평등 문제 
④ 좌와 우의 이념갈등


나) 복음의 우월성 

바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다"
좌파이든, 우파이든, 경제적 지위가 어떠하든 자기를 규정하는 우월적 기준이 복음이 되어야 한다. 바로 예수 안에 있는 것이다. 

▶ 우리를 규정하는 세가지
(1) 우리는 죄인이었고 지금도 죄성(자기 중심주의)를 가지고 있다.
(2)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심을  믿어 그리스도께 속한다. 세례를 받는 의미. 그리스도와 하나된다는 의미
(3) 이제는 그리스도를 닮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리스도로 옷입게 되었다. 우리의 추잡한 것이 덮혀졌다.


따라서 복음은 무엇보다도 우월하다. 복음주의자는 이제 이데올로기를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다) "복음을 가진 자의 삶을 위한 7가지 가이드 라인"

(1) 상대방이 거짓 원수/ 적이라는 속임수에서 벗어난다.
내 속에서 적개심과 분노가 일어날 때 빨간불이 켜져야 한다. 이를 경계하라. 옳으니까 의분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전혀 관계없는 문제에서 비롯된 분노가 이슈 한 가지를 통해서 표출되는 경우일 수 있다. 적개심을 경계하라.

(2) 상대방을 형제로서 이해한다.
우리가 아무리 달라도 형제이다. 
나는 남자이지만 여자를 이해하려고 하고, 자유인은 종을, 우파는 좌파를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나 우리나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결국 그는 내 형제이기 때문이다.

(3) 하늘가족을 이해하는 것을 통하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사상과 자세의 부족함을 보완한다.
세상은 복잡하다. 나의 이해는 제한적이고 파편적이다. 따라서 겸손함과 자기부인이 필요하다. 자기오류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에 해당한다. 토론하는 사람 중에서 기본적인 준비와 공부를 하지 않고 토론하는 경우가 있는데, 옳지 않다.

(4) 하늘가족과 대화하는 것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좀 더 바르게 이해한다.
세상은 좌우로 분리해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 언론의 경우, 좌나 우로 편향된 기사를 다루는 언론들이 있다. 세상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잘못하면 이러한 언론에 의하여 집단적으로 조작될 수 있다.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에 의하여 조작되는 것을 용납해서야 되겠는가. 따라서 세상에 대해서 공부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를 나는 반대해, 나는 찬성해"라고만 하면, 여러분은 초등학생인가? 대안은 고민하지 않는가? 정답을 당장 찾지는 못하겠지만 좀 더 공부해야 한다.

서로간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보완해야 한다. 그것이 교회의 강점이다.

(5) 이러한 모든 과정을 통해, 오늘날 깨어진 세상 속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더욱 온전히 발견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고민과 이 시대 속에서 어떻게 일하시는 지를 분별해야 한다.

(6) 완전히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의 자유와 판단을 인정하고 존중한다.

소수자의 의사표현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침묵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나와 의견이 다르거나 심지어 잘못된 내용의 의견이라고 하더라도 

(7) 하나님의 뜻으로 분별된 일일 경우, 교회 공동체에서 합의되지 않았다면, 각 개인이나 작은 그룹이 믿음으로 행동하고 교회 공동체는 이를 존중한다. 다양한 목소리와 그룹이 존재하는 곳이 교회이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념에 대한 우월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결론: 우리 한국 교회 업그레이드!

복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 교회는 슬픈 아픔이 있다. 반공주의라는 이념이 논리적이지 않으나 정서적으로 박혀있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머리 껍데기가 벗겨지고 탄압받았기 때문에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다는 것은 이해해야 한다.

뼈속 깊이 남아있는 슬픔과 고통이 있지만, 그 아픔은 이해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치유하여야 한다. 그 이데올로기보다 훨씬 크신 우리를 붙들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행동해야 한다.

나들목 교인들이 수많은 이슈들과 문제들 앞에서 사람들을 포용하고 중심을 잃지 않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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